* 삽화 선성경
나주에서 3년간의 귀양이 해제가 되고 고향 영주로 돌아왔지만 사는 형편은 오히려 나주에서 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경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귀양이라서 고향 영주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아! 아! 벌써 몇 년째인가?”

세상은 극도로 어지러웠습니다. 헤아려보니 나주를 떠나온 지도 벌써 5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고향 영주의 삼각산 아래로 이주를 해서 삼봉재 에서 후학을 양성한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못된 놈들 같으니라고....”

잠시 아랫마을을 다녀온 동안에 정도전을 미워한 고향 출신 재상이 삼봉재를 헐어버리는 사
건이 일어났습니다.

“나라가 망하려니 이제 조정의 벼슬아치가 백성의 집을 허는 일이 생기는구나.”
분노를 삭이지 못한 정도전이 재상을 찾아가 따지니 재상은 오히려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죄인이 아직 귀양이 풀리지 않았는데 웬 행패인가?”

벼슬아치의 행패를 자신이 직접 당하고 보니 참으로 치가 떨렸습니다. 그러나 정도전이 고향의 거평부사에게 부탁하여 겨우 지은 작은 초막조차 자신의 별장을 짓는다며 쓸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이곳이 고향땅이지만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으로 김포로 이사를 갔습니다.

5년에 세 번이나 집을 옮겼는데
금년에 또 이사를 하게 되는구나
들은 넓은데 띠 집은 보잘것없이 초라하고
산은 길게 뻗었는데 고목은 쓸쓸하구나
밭가는 사람에게 서로 성 물어보고
옛 친구는 편지조차 끊어버리네
천지가 능히 나를 받아 주려니
표표히 가는대로 맡길 수밖에

정도전은 이인임 일파의 끊임없는 탄압을 받으면서 집을 세 번이나 이사하는 심정을 ‘이가’라는 제목의 시에 담아 읊었습니다.

“당신의 동기 들은 진즉 귀양이 풀려 다 들 벼슬길에 올랐는데 이것이 웬일이랍니까?”
김포에서도 벼슬아치들의 행패는 더 심했습니다. 쌀 몇 됫박의 세금을 못 낸다고 온 집안을 들쑤시고 가는 횡포 앞에 아내가 땅을 치고 울었습니다.

“가슴속에는 천하를 품고 있는데도 몰라주고 핍박을 하는 참으로 야속한 세상이로구나.”
정도전은 아내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먼 하늘만 바라보는데 참으로 기막힌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내 한 몸 나주에 있을 때는 아쉬울 것이 없었건만 이곳이 바로 생지옥이구나.”
귀양이 끝난 후 떠나온 지 5년 동안 두 어 번 다녀왔던 나주 땅이고 나주 사람들이었습니다.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었던 나주 사람들이 오늘 같은 날은 참으로 그리웠습니다.

“많이 그립고 보고 싶구나.”

그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서로 나누며 격려해주던 나주 사람들로 인해 마음 놓고 쓴 책도 여러 권이었습니다. 또 무엇보다도 앞으로 백성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게 해 준 이들이었습니다.

“정도전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개경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흉흉했습니다. 정도전은 이인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정치는 물론 다시는 개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주를 다시 한 번 다녀오고 싶다.”

지난 가을에 다녀온 나주는 지금도 그 훈훈한 정을 잊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주보다 함길도에 있는 이성계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 나주는 다음에 가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이성계를 만나 보자.”

드디어 함길도 함주에 있는 이성계를 찾아갈 결심을 굳혔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청승맞게 내리는 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빈 들판을 달리는 그의 울분과 복잡한 심정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습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세상이다. 갈아엎자. 갈아엎어야 돼.”
정도전은 나주에서 3년, 고향과 김해에서 6년의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세상을 두루 다니며 고려의 많은 인물들을 살폈습니다. 여러 인물 중 최영장군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장수로 백성들이 신망이 두터워 정도전은 한때 그를 눈 여겨 보기도 했습니다.

“최영? 그는 딸을 우왕에게 시집보냈고 백성들의 아픔을 아는 인물은 아니다. 또 한 존경받는 장수는 될 수 있어도 한나라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아니다.”
정도전은 고려의 많은 인물들에게 기대를 해보기도 하다가 이내 실망을 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멀리 함주의 동북면도지휘사로 있는 이성계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얼른 봐도 함경도 동북면의 이성계의 군대는 엄정하고 군기가 잘 잡혀있는 것아 보였습니다.

“전 성균관 박사 정도전이 왔다고 말해주시오.”

“선생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그때 기골이 장대한 소년이 어디선가 달려와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다섯째 아들 방원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고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공손히 안내하여 이성계의 군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런... 이런... 고려 최고의 학자가 이 누추한 곳에 오셨습니다, 그려. ”
이성계가 정도전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송구하지만 천하를 유랑하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장군께 의탁하러 왔습니다.”
“이 분은 고려의 최고 실권자 이인임과 맞서 싸운 분이시다. 잘 모셔라. 무장들은 문인들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정중히 잘 모시고 배워야 한다.”

이성계의 군대는 군율이 삼엄하고 충성심이 대단했습니다. 모든 군사를 가족같이 따뜻이 대하면서도 상벌이 엄격했기 때문에 군사들의 사기도 높았습니다.
“군대를 이렇게 이끌면 나라도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군대를 잘 훈련시키고 있는데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날이 갈수록 이성계의 인품이 참으로 덕스럽고 훌륭하다는데 안도했습니다. 최영을 비롯한 고려의 그 어떤 명망가보다도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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