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회군

 ▲김노금
/ 국제펜클럽회원·동화작가
얼마 후 정도전은 이성계의 강력한 천거로 전의부령이라는 벼슬을 얻었고 정몽주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광활한 요동 땅을 보았습니다.

“이곳은 그 옛날 고려와 발해가 다스렸던 우리의 땅이 아닌가? 천년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부국강병 하여 요동을 되찾아야 한다.”

정도전은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요동을 달리는 생각을 하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원나라를 반대하는 정책으로 이인임의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간지 9년만의 일이고 어느새 그 의 나이도 43세가 되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되찾아야 할 땅 이로다.”
그는 요동정벌과 조선개국을 위한 원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일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이성계에게는 군사력이라는 힘이, 정도전에게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지략이 있었습니다. 10세에 즉위한 우왕의 폭정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권문세족들의 만행 또한 점점 더해가 백성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우왕은 임금이 아니다”
정도전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정에 명나라의 사신이 도착해서 개원일대의 땅과 백성들을 명나라에 귀속시키라는 황제의 명을 전했습니다. 고려 조정은 명나라의 명령에 발칵 뒤집혔습니다.

“드디어 최영이 군사를 일으키자고 하겠구나.”

우왕의 장인이기도 한 최영은 이미 장안에 나도는 이 씨가 왕이 된다는 소문을 들어서 이성계를 제거하기 위한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최영은 현제 고려의 군사력으로는 명나라를 이기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요동정벌을 명했습니다. 이성계를 잡기 위한 명분이었습니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지금의 국력으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최영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삽화 선성경

정도전은 무모한 싸움에 이성계를 죽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은밀히 이성계를 찾았습니다.
“장군! 지금의 명나라는 당해 낼 수 없는 상대입니다.”
“나도 그리 생각 하고 있소.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오.”

“승산 없는 전쟁에서 귀한 군사들을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왕이 미쳤습니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서라도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셔야 합니다.”

“옳은 말씀이오. 이렇게 명쾌한 이야기를 삼봉께서 해 주시는구려.”
이성계는 정도전의 말이 백번 옳다며 다음날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위화도로 향했습니다.
개경을 떠나고 다음날부터 장마가 시작이 되어서인지 무섭게 비가 내리기 시작 했습니다.
“참으로 미친 임금에 정신 나간 신하들이로다.”

위화도에 도착하자 전쟁도 해보기도 전에 섬이 물이 잠길 지경이었습니다. 벌써 놀라 도망가는 군사가 생기고 5만 명이나 되는 군사들은 여름인데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어야 했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폭우를 무릅쓰고 진군하느라 지쳐 사기가 뚝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갑옷은 천근처럼 무거우며 군사와 말이 모두 피곤합니다. 이를 몰아 명나라의 견고한 성으로 간다는 것은 싸워도 승리를 기약할 수 없는데 군량미까지 보급이 안 되는 상황이니 회군하게 해 주소서.”

이성계는 몇 번이나 조정에 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이성계가 싸움에서 죽던지 아니면 살아와도 패배를 물어 죄를 주기 위함으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임금의 뜻이 이런 것이었구나, 무조건 회군해야 한다는 정도전은 참으로 지략가이다.”
이성계는 드디어 군사들을 모아놓고 회군 명령을 내렸습니다.
“전군은 회군한다. 회군하라!”

물에 빠져 죽을 날 만 기다리던 군사들은 회군 명령이 내리자 뛸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살았다. 살았다. 우리 장군님 덕분에 살았다.”
“어서가자. 고향으로...”

이성계는 평양을 지나 파죽지세로 개경까지 순식간에 밀어 닥쳤습니다. 개경에서 최영과 우왕은 이성계의 회군 소식에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까운 산에서 큰 나팔 소리가 울러 퍼졌습니다.

“부우우웅”
“와! 이성계 장군이시다”
“어멈아! 우리 아들이 이제 살아서 돌아오게 되었구나.”
“만세 만만세...”

성안의 백성들이 모두 나와 술과 음식을 가지고 이성계와 군사들을 대접했습니다. 그 들 백성들도 이번의 전쟁은 백번을 싸워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군한 이성계의 군사가 최영의 군사를 압도한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성계는 과연 걸출한 인물이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한 손에 틀어쥐는 것을 보며 탄복을 했습니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최영과 우왕을 각각 귀양을 보내고 우왕의 아들 창으로 왕을 삼았습니다. 이때 창왕의 나이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정도전도 47세의 나이로 이성계의 강력한 천거로 밀직부사로 벼슬이 높아졌습니다.
“나라가 안정 되려면 백성의 삶이 안정 되어야 합니다. 백성의 삶은 토지와 직결이 되어 있습니다. 고로 전제를 개혁 하려는 것은 나라의 제정을 튼튼히 하려는 것이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정도전은 지난날 나주 땅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에 품었던 토지개혁 문제를 들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지금 대신들 가운데에도 백성들의 토지를 착복한자들이 눈에 선명하게 보입니다. 토지 개혁에 반대하는 자들을 처단 하소서”
정도전의 목소리는 단호하였습니다. 조정 대신 누구하나 감히 대꾸를 못하였습니다.
그해 8월 정도전은 이성계의 천거로 다시 성균과 대사성(3품)의 벼슬로 이제 누구도 넘보지 못할 고려의 실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땅은 농사짓는 백성들이 소유해야 한다.”
토지개혁은 정도전에게 한 치도 양보 할 수 없는 사안 이었습니다. 개혁이 시작이 되면서 많은 반발도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다시 창왕이 폐위가 되고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고려를 이끌던 권문세족들의 대부분 몰락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백성들이 행복한 요순의 태평성대이다.”

정도전은 귀양살이 하던 나주에서 마음먹었던 그 간절한 이상을 펼치고 싶은 마음 외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었습니다.

임금은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들은 밭을 일구어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사는 세상에서 살게 하고 전쟁도 없고 가난도 없는 세상, 봄이면 들꽃이 만발하고 햇살은 따스한 그런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남자들은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아낙네들은 길쌈하며 즐겁게 노래하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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