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 Codonopsis ussuriensis (Rupr. et Maxim.) Hemsl&쌍떡잎식물 초롱꽃목 초롱꽃과 더덕속의 다년초.

 

김진수 회장/전남들꽃연구회
『소경불알』의 속명 코도놉시스(Codonopsis)는 그리스어 코돈(codon, 매달린 종)과 옵시스(opsis, 닮았다)의 합성어로 화형이 종(鐘)모양과 비슷하다는 의미이며, 종소명 우수리엔시스(ussuriensis)는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烏蘇里) 지역을 뜻한다.

소경불알을 ‘오소리당삼(烏蘇里黨參)’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중국 흑룡강성과 러시아 연해지방과의 경계를 이루는 우수리강변에서 발견된 식물임을 표시한 것으로 본다.

‘당삼’이란 중국의 산서(山西)의 상당(上黨)에서 산출되고 뿌리모양이 인삼(人蔘)을 닮아 당삼(黨參)이다. 더덕 속(屬)은 전 세계에 약 40종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소경불알을 포함하여 더덕, 만삼, 애기더덕, 푸른더덕 등 다섯 종류가 자생한다.

비교하면 더덕은 식물체에 털이 없으며 종형의 화관 안에 자색 반점이 빼곡하다. 만삼은 꽃에 붉은 색이 없어 전체적으로 희며 잎에 털이 있다. 애기더덕은 제주도에만 분포하며 개체가 작고 부드러운 털이 있다.

푸른더덕은 화관 안에 반점이 없다. 소경불알은 발아하는 첫해에 솜털이 밀생하여 갓난아기처럼 보송보송하며 줄기는 다소 가늘지만 무엇보다 뿌리가 구형이라는 점에서 나머지 넷과 확연히 구별된다.

흔히 소경불알 이름이 ‘소경이 더듬듯 만져보아야 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필자는‘소경이 더듬어도 알 수 있는 뿌리’로 이해한다.

▲소경불알 꽃

밭가에서 흔히 보는 큰개불알풀의 작은 씨는 하트풍선 모양으로‘개의 불알’을 닮았다. 산중의 개불알꽃(복주머니란으로 개명됨)은 꽃의 순판이 요강처럼 생겼으며, 소경불알은 뿌리가 아무 돌멩이처럼 동글동글하다.

디테일이 필요하다면 큰개불알풀은 만질만질하고 개불알꽃은 쪼글쪼글하며 소경불알은 울퉁불퉁하다. 더덕 속 식구들은 서로 너무 비슷하여 단박 제 이름으로 불러주기 쉽지 않다.

특히 더덕과 소경불알이 어렵다. 둘 다 화관이 종형이고 젖혀진 꽃잎 끝에 짙게 바른 립스틱 하며 안쪽으로 반점이 많은 것 등이 공통점인데, 곰곰이 살피자면 더덕에 비해 소경불알 꽃이 조금 작고, 소경불알의 반점이 띠를 두른 듯 선명해서 경계가 흐린 더덕과 구별된다는 점을 꼽을까말까.

그러니 파 보고서야 항, 웃게 되는 바로 그 돼지감자 같은 뿌리에 누구나 집중하게 되어 있다. 익살스러울지언정 불경스럽지는 않은데 정 바꾸고 싶다면 차제에 ‘알더덕’ 또는 ‘알만삼’의 이명을 개명의 후보명단에 올려도 좋지 않을까 싶다.

소경불알의 다른 이름에 또 까치더덕이 있다. 까치더덕의 접두사 ‘까치’는 우리말 ‘아치(아찬)’가 변한 말로 ‘작다, 버금’의 뜻이 담겨 있다.

▲소경불알 뿌리
그러므로 까치더덕은 ‘작은 더덕’, ‘버금 더덕’의 의미. 또 아찬의 말뿌리는 아저씨· 아주머니에 그 잔재가 남아 있다. 부모와 같은 항렬의 남자형제를 지금도 더러 아재나 아재비로 부르는 것처럼 ‘만삼아재비’도 만삼에 버금간다는 뜻이다.

소경불알의 새봄이 초롱초롱하다/지난겨울, 만 가슴 내려 한 바탕 둥글게 앉았으니/종탑 아래 칠흑의 어둠이 일제히 고개를 치어든다/보라 샛별이 청호반새의 귀깃을 스치고/먼 장터며 황무지를 달려온 고단한 바람은/아침노을을 따라 가만가만 미루나무가지를 흔드는데/헝클어진 우리들 의식의 푸른 연기여/뒤엉킨 채 저물어가는 남루의 고향이여/나는 문득 소낙비 그치고/너도 누리의 허물이 알몸으로 풀려난 날/헌데 시울마다 맺히는 이슬/저 보석처럼 맑은 풀잎의 득안(得眼)!/오, 살아 있음으로 서로 산 것들의 마음을 알아/눈을 감고도 우리는/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 졸시, 《소경불알》 전문

요것이 더덕인지 만삼 뿌리인지는 눈감고 더듬어보아도 알 것이므로 소경불알이다. 식물들은 눈 없이도 곁에 누가 앉아있고 저만치 누가 서 있는지를 안다.
더욱이 덩굴손을 내밀어 더듬더듬 누군가를 붙잡고 일어서야 하는 식물들은 스치는 한줌 바람의 방위와 낮은 냄새의 연유를 알고, 그림자 한 오리의 실체와 풀벌레의 언어를 알아차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듯 망설임 없이 제 갈 길을 찾아 나선다.
사람도 만일 마음눈을 가슴츠레 뜨고 덩굴 풀을 열심히 따라가면 정말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새 세상이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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