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귀양 온 나주 땅

  ▲김노금
/ 국제펜클럽회원·동화작가
잠시 정도전이 꿈꾸는 세상이 오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개혁 정책은 많은 권문세족들의 저항을 받았고 스승 이색도 반대를 했습니다.

“그대가 추진하는 전제개혁은 옳지 않다. 어찌 개인의 재산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인가? 옛 법을 경솔하게 고치는 것은 옳지 않다.”

스승 이색이 개혁에 반대하자 그의 옛 친구들 조차도 스승의 주장에 동조 했습니다.“토지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소유해야 합니다.”

정도전의 주장은 한결 같았습니다.

결국 이 색은 개혁에 반대하다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색은 고려 5백년의 가장 뛰어난 학자요 천재입니다. 열 네 살의 어린 나이로 성균관시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실시한 과거에서는 장원을 차지한 분입니다.

귀양을 거두어 주옵소서,”많은 이들이 그의 귀양이 불가하다고 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이색은 1354년 원나라에서 실시한 과거의 회시 대책에서는 1등을 하고 중국에까지 그의 명성을 떨치고 한림원 학사에 올랐습니다. 이후 고려에 돌아와 무너져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은 제자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여주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습니다.

해 뜨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쉰다.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곡식을 먹으니
내가 살아가는데 임금의 힘이
무슨 필요가 있으리

이성계의 강력한 천거로 성균관 대사성과 예문관 제학과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삼사좌사로 승진을 했지만 정도전의 개혁을 못마땅해 하는 반대파의 저항은 더욱 거세어 졌습니다.

▲삽화 선성경

“정몽주 형님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와버렸구나.”
자신이 가장 어렵고 힘이 들 때 많은 의지를 했던 정몽주가 가장 강한 저항을 하였습니다.

“이성계와 정도전을 몰아내지 않으면 고려의 오백년 사직이 무너지게 생겼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의 이런 행동은 이성계와 정도전을 두려워하고 있던 조정 대신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되었습니다. 조정의 힘이 급속히 정몽주에게 실리기 시작 했습니다.
“정몽주가 무언가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 같소,”

이성계는 조정의 분위기가 마땅치 않자 시중직을 사직하고 함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대감, 아닙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은 조정에 계셔야 합니다.”
정도전이 만류했지만 이성계는 기어이 함주 벽란도로 가버리고 조정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지금이다.”

기회만 보아오던 정몽주일파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정도전을 탄핵 했습니다.
“정도전은 천민 출신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자 미천한 근본을 숨기기 위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토지개혁등, 그간의 못된 제도를 펴왔습니다.

고향땅 봉화로 귀양이 처해지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고향으로 귀양을 간다는 것이 불가하다며 맹공을 퍼붓는 정몽주의 상소로 다시 귀양지가 나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귀양을 가는 정도전은 그간의 일들이 꿈속에서 일어난 것들 같았습니다.
“내 다시 조정에 들어가 백성들을 위한 남은과업들을 이룰 수 있을런지...”

쓸쓸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나주 땅을 향하는 그의 마음은 무어라 표현 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주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하게 그를 맞아 주었습니다.
“대감, 어서 오시지요.”

작은 초사는 떠나 온지 오래 되었는데도 그대로였습니다. “언제라도 오셔서 편히 쉬시라고 저희들이 정성들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옛 시절 자신을 돌보아주었듯 초사를 잘 보존해 주었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열 댓 명이 넘는 선비들이 진심으로 정도전을 반갑고 정중하게 맞았습니다.

허허.. 귀양 온 죄인을 이리 영접해 주시다니....”"귀양이라니요, 백성을 위해 바른 정치를 하시다가 이리 되신 것을 ....“

모두가 정도전을 환대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정도전은 나주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아무럼요. 천 날이 넘는 세월을 저희와 함께 했으니 당연히 이 고을 분이시지요.”
“그동안 대감께서 벼슬이 올라가실 때마다 기뻐하며 고을 잔치가 있었습니다.”
나주고을의 선비들과 밤이 깊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결같이 고려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야기들 이었습니다.

“오히려 벼슬아치로 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도다.”
나주에서의 귀양이 풀린 뒤 십 여 년 가까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해 천하를 떠돌 때도 서 너 번이나 찾아와 머물었던 정든 곳이었습니다.

“길게는 보름이 넘도록 짧게는 사나흘 남짓 머물곤 했던 유일한 곳이 나주였지.”
정도전은 나주의 곳곳을 둘러보면서 새삼 나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나주에 오면 마음이 평화롭고 글도 벗도 더욱 좋아지는 정도전이었습니다. 나주로 귀양을 오면서 이방원에게 조정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주시하라는 정도전의 말이 있어서인지 이방원은 닷새가 멀다하고 사람을 보내어 심상치 않은 조정의 움직임을 전해 왔습니다.

“정몽주를 베지 않으면 이성계 장군이 먼저 변을 당하시겠구나.”정몽주등이 멀리 나주 땅에 있는 정도전 자신과 함주 벽란도의 이성계에게 금방이라도 칼끝을 겨눌 것 같았습니다.

“무예에 능한 무사들과 함주에 가서 이성계 장군을 속히 개경으로 모셔 오도록 하라.” 어찌 할 바를 몰라 마음을 졸이고 있던 이방원은 정도전의 탁월한 지략에 탄복을 했습니다.“역시 스승님은 남다른 안목이 있는 분이다.”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오자 이성계가 마음만 먹으면 왕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고려의 조정은 이성계에게 힘이 쏠리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으셨다던 이성계 장군이 오셨다네.”

“병중이신데도 개경까지 서둘러 오셨다면 이제 뭔 일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나겠구만.”조정은 일순간에 조용해졌고 정몽주 등의 반대파들도 가급적 이성계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평온한 일상이 계속 되었습니다.

“다리도 이제 거의 완치가 되었으니 나주에 있는 정공을 위로하러 가야겠다. 방원이 너는 함주로 먼저 가서 그 은행나무 두 그루를 잘 갈무리하여 나주로 가지고 내려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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