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사무국장 “혼자서는 할 수 없어 마을기업·협동조합 꾸려 마을공동체 구축”

“마을만들기는 운동인가, 사업인가?”
지난 12일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회원 50여명이 전남 영암군 모정마을에서 쉰 세 번째 대화모임을 갖는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던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각 지역단위로 주민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를 회복하는 마을 사업들이 진행돼 오고 있는 가운데 과연 이 사업들은 ‘운동(Movement)’의 의미가 될 것인지, ‘사업(Business)’의 의미가 될 것인지 늘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마을공동체 사업은 부처별 목적에 따라 하향식 시설사업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행정자치부(마을기업, 정보화마을, 특성화마을, 희망마을), 농림축산식품부(색깔 있는 마을, 신규마을, 농촌체험휴양마을, 농촌공동체회사 설립), 문화체육관광부(문화도시·문화마을 조성, 관광두레, 문전성시프로젝트), 문화재청(문화재 행복마을 가꾸기), 국토교통부(도시재생,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 환경부(자연생태 우수마을), 해양수산부(어촌6차산업화·바닷속 체험마을 시범사업), 고용노동부(사회적기업), 산림청(산촌생태마을) 등 20여개에 이른다.하지만 주민들의 역량이 미진한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은 예산이 지원되는 동안에만 ‘반짝’ 성과를 나타냈다가 지원이 끝나면 곧바로 흐지부지 되기 십상이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마을공동체사업, 그 답은 무엇인지 지난 5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대전지사가 전국의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잘 사는 마을 만들기 전략’ 전문연수에서 찾아본다.

먼저, 충남 예산군 대흥슬로시티 의좋은형제마을로 떠나보자.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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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만들기란?

“마을만들기란 지역주민들이 살기 좋고,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 스스로 실천하는 다양한 공동체활동을 의미합니다.”

충남사회적경제네트워크 박상우 상임이사는 전국에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마을공동체사업, 마을만들기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마을의 물리적인 환경개선이나 사회경제적 활성화를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사업들을 통칭하고 있다.

또 마을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공동의 문제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의 역량으로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상우 상임이사는 이를 위한 방안으로 “주민과 저치단체 등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와의 긴밀한 협력과 공동실천이 필요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마을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마을만들기를 통해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개선이 필요한 일상생활의 문제를 공동참여를 통해 해결해 나가거나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결국 주민들의 생활여건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실천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여섯 번째 슬로시티
 

마을공동체와 경제공동체가 결합해 ‘마을만들기’의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은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했다. 특히 청정 예당저수지(수계가 예산과 당진을 포함해서 예당저수지라고 함)와 주변에 조성된 생태공원이 자연생태적 매력이다.

이 저수지는 전국 낚시꾼들의 애호를 받는 천혜의 낚시터로 가히 슬로명승지 격이다.

 예산의 특산물인 예당 붕어찜과 민물어죽은 슬로푸드이며, 껍질째 먹는 황토밭 예산사과도 지역 특산물로 손꼽힌다.

천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마을 주민이 함께 지내는 동제인 목신제(木神祭)가 있는 이 마을은 가족애와 형제애의 상징인 ‘의좋은 형제(이성만·이순 형제)’의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고장이기도 하다.

대흥면 보존회에서는 매월 <의좋은 소식지>란 지역신문을 발간되고 있으며, 예산에서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역 커뮤니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예산군 대흥면에서는 슬로시티 '의좋은 형제장터'가 매월 둘째주 토요일에 열려, 주민들이 정성껏 키우고 수확한 농산물 등 안전한 먹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느림의 가치’ 마을기업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들에 대해 ‘느리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고, 인터넷도 빨라야 하고, 자동차 속도도 빨라야 속이 뻥 뚫린다 한다.

이러한 빠른 사회흐름 속에서 ‘느림의 가치’를 전략으로 마을기업을 일궈가는 마을이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 형제마을이다.

지난 2009년 대흥면이 우리나라 여섯 번째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마을공동체 활동이 시작됐다.
슬로시티는 지역민들에게는 자연 속에 살면서 고을의 먹거리와 지역 고유문화를 느끼며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고, 도시인에게 마음의 고향을 제공하는 조용한 공동체 운동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산대흥슬로시티로 지정된 뒤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고 2013년 9월 마을주민 19명이 출자해서 마을기업 느린손협동조합(대표 이명구, 이하 느린손)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예산대흥슬로시티’의 결과물인 느린손을 계기로 직접 전통수공예품을 만들며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명맥 잇고, 느림의 미덕으로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다.

느린손의 실무를 맡고 있는 예산대흥슬로시티협의회 박효신 사무국장은 “조상대대로 가꿔온 문전옥답이 예당저수지에 수몰되면서 50년 넘은 세월을 희망도 없이 살아오던 주민들에게 슬로시티사업은 새로운 기회를 안겨 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손 놓은 새끼를 다시 꼬다

대흥면이 슬로시티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마을 고유의 향토사업이 있어야만 했다.

박효신 사무국장은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새끼를 꼴 줄 아는 주민을 수소문한 끝에 당시 팔순에 접어든 김영재 어르신을 찾게 됐다.

하지만 김영재 어르신은 “20대 청년시절 새끼를 꽈 본 뒤로 손을 놓은 지가 60년이 넘었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설득 끝에 김영재 어르신을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로 새끼 꼬기를 비롯해서 덕석, 꼴망태, 닭장 등 짚공예를 마을기업으로 시작하게 된 것.

이를 통해 주민들은 큰 수익은 아니어도 꾸준히 소득을 올리는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서 마을기업에도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조합원으로 참여하게 된 주민들은 전통 짚공예품, 손바느질 제품, 천연 수제비누, 천연염색 등 손재주를 이용해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 공예품을 만들어 내놓고 있다.

특히, 짚공예는 명성이 자자해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고, 드라마에 필요한 짚신 등 소품제작 주문이 들어올 정도다.

이를 계기로 대흥의 짚공예는 2011년과 2012년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공예트렌드페어에 2년 연속 초청되어 참가하면서 전국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2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주최하는 ‘도시농부의 하루’라는 기획전에 초청되어 한 달 반 동안 인사동에 대흥의 짚공예 명인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도시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전통 살리고, 마을도 살려

 

느린손에서는 짚공예와 함께 다양한 공예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작은 매장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짚공예품과 함께 천연비누 만들기, 천연염색, 짚공예 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잊혀가는 전통문화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느린손은 전통문화만 지킨 것은 아니었다.

느린손이 문을 열며 마을의 모습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마을 어귀 폐가가 예쁜 매장으로 바뀌고, 의좋은형제공원을 찾는 도시민들이 느린손을 방문에 전통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며 마을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박효신 사무국장은 “전통공예품의 명맥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느린손의 할 일”이라며 “전통을 살리고, 마을을 살릴 수 있는 마을기업이 1호 느린손에 이어 2호, 3호 등 다양한 테마의 마을기업이 탄생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의좋은 형제’의 우애가 전해오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서 한국방송(KBS)이 지난 17년간 장수프로그램으로 사랑받아왔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후속 드라마로 종갓집 3대가 가족애로 살아나가는 모습과 귀농한 도시민들이 시골에 정착해가는 모습을 그린 새 농촌드라마의 무대가 돼 화제가 되고 있다.

드라마의 무대가 된 대흥면 동서리 일원은 ‘형은 아우에게, 아우는 형에게 서로의 볏단을 전해주며 우애를 나눴다’는 의좋은 형제(이성만, 이순) 이야기를 비롯해 대흥동헌(도유형문화재 174호), 예당저수지, 임존성, 사과밭 등 농촌과 전통의 정취가 남아있다.

드라마를 계기로 이 마을은 외부 관광객 유치 등을 통해 관광수입도 늘릴 수 있게 됐으며, 주민들이 가꾼 농작물로 시골밥상을

나주로 돌아와서...

현재 나주에서는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과 옛 잠사활용사업, 마을미술프로젝트 등의 사업들 역시 마을만들기 사업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 사업을 벌이는 데 있어서 주민들의 역할이 강조되다보니 인위적으로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도시재생대학 등을 운영하면서 주민참여의 모양새를 갖춰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권력화 된 몇몇 주민들의 등쌀에 의욕상실 현상을 보이는 행정도 그렇고, 사업의 본질은 망각한 채 중간조직, 활동가, 전문가들을 통제하고 가르치려는 일부 공무원들의 행태도 그렇고, 사업적인 이득을 앞세워 아전인수 격으로 참여하는 주민과 이를 못 마땅해 하는 주민간의 갈등도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잘 사는 마을만들기의 전략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주민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밥그릇은 잠시 비워두는 것, 빈곤과 질병, 노령화로 삶에 의욕을 상실한 주민들에게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성과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의 닫힌 사고와 생활공간을 함께 나누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지역주민에게는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방문객에게는 다시 찾고 싶은 친근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성공하는 마을만들기의 공식인 것이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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