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
국제펜클럽회원·동화작가
“참으로 아름답도다.” 정도전은 성벽위에 올라 어둠속의 한양 장안을 내려다오며 감격에 젖었습니다. 도읍건설은 수 십 년이 걸리게 마련인데 정도전은 불과 몇 년 만에 도읍을 건설 했습니다.

또한 국경의 성벽을 쌓는 역사를 하면서도 조금도 지치지 않고 대 역사를 마친 것입니다.
“정도전은 나의 가장 다정한 벗임과 동시에 조선의 기틀을 세워가야 할 훌륭한 인재로다.”

태조 이성계의 신임은 날로 더해가지만 정도전은 이방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무거웠습니다. 한때는 친조카처럼 사랑했고 그래서 더욱 훌륭한 왕재로 길렀던 제자였습니다.

“방원이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 한 언젠가는 어린 세자를 제거하고 난을 일으킬 것이다.” 대신들은 이 방원이 배다른 형제인 세자를 없애고 군주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방원이 철저하게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는 군주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된다고 결심했습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 사방이 칠 흙처럼 어두운 성벽위에서 정도전
은 자신의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오직 백성을 따르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전하! 한양과 인근의 지역을 찬양하는 <신도팔경시>를 여기 지어 올리나이다.” 정도전이 지은 시를 본 태조 이성계는 너무나 흡족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정도전이 신임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조급해져
갔습니다.

“왜 걸음을 그렇게 걷는 겐가?” “봉하백 정도전 대감께서 진도를 익히지 못했다고 왕자님들과 장군들을 문책했습니다.” 뒤뚱거리며 걷는 자신의 군졸은 곤장을 맞았고 다른 왕자들과 아끼는 장군들도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이방원의 짙은 눈썹이 꿈틀 거렸습니다.

“사병혁파도 모자라 이제 나의 병사들과 아끼는 장군, 그리고 감히 왕자들까지?” 이방원은 왕자들까지 문책했다는 말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날밤, 이방원은 하륜을 비롯한 자신을 따르는
몇 몇 장수들을 은밀히 불렀습니다.

“봉화백 정도전을 이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소.”
“그렇습니다.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지체하면 우리가 당합니다.”

모두 한결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이방원은 하륜에게 마지막으로 정도전을 만나보도록 했습니다. 당장 죽일 것인가 살려 둘 것인가의 판단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감. 이 늦은 밤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하륜이 방안에서 정도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륜이 온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대감. 정안군 이방원을 따르시지요.” 하륜은 정도전이 이방원과 손을 잡을 것을
권유 했습니다.

“정안군은 성군이 될 수 없네. 나의 꿈은 백성을 따르는 정치이지 결코 군주가 백성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네. 자네는 군주를 따르게. 나는 오직 백성에게만 충성 하겠네.”
하륜이 다녀가고 나서 정도전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무엇일까? 이 피비린내 나는 묘한 기운은.....?” 독한 살기가 느껴지고 허공에서 날 이 시퍼런
칼들이 오고가는 환상은 죽음의 그림자 같기도 해서 밤새 한 숨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두렵고 허무하구나. 요동정벌이 꿈이었고,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정치를 하고 싶었건만 하늘이 허락하지를 않는도다.”

다음날밤 정도전은 남은의 집에서 심효생과 함께 조촐한 주안상을 자리에 두고 앉았습니다.
“참으로 그동안 고마웠소이다.”
“대감께서도 나라를 위해 백성들을 위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 정도전이 하늘의 부름을 받을 날이 아마 오늘밤이 될 것 같습니다.”

남은과 심효생도 담담히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대감의 꿈이 부질없게 되었구려“.
“조선은 이제 두 번 다시 요동정벌을 주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클 뿐 이오”
멀리서 병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감께서 시 한 수 읊으시지요.”
남은의 말에 한참을 생각에 잠기던 정도전이 눈을 지그시 감고 시를 읊기 시작 했습니다.
조존 성찰 두 가지에 공력을 다 기울여 책 속의 성현을 버리지 않았노라 삼십년 이래에 근고를 다 한 업이
송정에 한 번 취해 허사가 되었네 정도전은 이 시를 통해 자신의 일생을 마무리 하고자 했습니다.

자조라는 제목의 이 시는 비록 요동정벌이 실패했어도 자신이 평생토록 추구했던 가치를 노래한 것입니다. 밖에서는 이미 남은의 호위무사들과 이방원의 군사들이 휘두르는 칼과 창의 소리가 요란 했습니다.

남은과 심효생이 칼을 빼어들고 밖으로 나가자 정도전은 천천히 술 잔 을 들어 이 생 에서의 마지막 술잔을 들었습니다.

이때 이방원이 문을 벌컥 열고 피 묻은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소?”

이방원이 정도전을 노려보았습니다. 그의 칼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시오. 이방원 그대를 진정으로 기다리고 있었소.”
정도전이 지나치게 태연하여 오히려 이방원의 칼을 쥔 손이 떨렸습니다.

“요동정벌을 다시 꿈 꿀 수 있을까?
“닥치시오!”
“이 나라 조선을 위해 부족한 사람 정도전이 꾸어왔던 평생의 꿈 이었소”
지금 당장 칼을 내리치지 않으면 이방원 자신이 어쩌면 정도전을 죽이지 못 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요동은 우리의 땅이었소! 그리고 조선경국전...! 비록 요동 정벌은 중지하더라도 조선을 다스리는 요체는 경국전이 되어야 합니다. 백성은 하늘이기 때문이오!”

“그 입 닥치시오! 정도전이라는 그대의 이름은 이제 조선에서 영원히 역적의 대명사로
불리게 될 것이오.”

“하하하. 그렇다면 언젠가는 정도전이란 이름이 무덤에서 뚜벅 뚜벅 걸어 나올 날도
반드시 있을 것이오.”
이방원은 눈을 질끈 감고 떨리는 손을 들어 정도전의 목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싸~악”
“크~~헉”

“조선을 건국하고 <조선경국전>에 의해 백성을 하늘처럼 받드는 정치가요 요동정벌
을 꿈꾸었던 불세출의 사상가이자 정치가 그대 정도전 고이 잠드시오”

“반드시...반드시 나 정도전 무덤에서 걸어나갈...”정도전의 숨이 완전히 멎은 것을 확인하고 방문을 나서는 이방원의 눈에 피눈물 같은 것이 비쳤습니다.

“나와 가는 길이 달랐지만 참으로 정도전 그대는 조선의 기틀을 굳건히 한 위대한 정치가였고 영원한 나의 스승이시었소.

새로운 꿈을 꾸며 어둔 밤을 헤치고 말달려가는 이 방원 그의 머리위로 구름에 가렸던 흐릿한 달빛이 어두운 구름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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