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오 위원장 “모정은 하늘이 내린 마을, 정부지원 마중물 삼아 마을공동체 이뤄내”

“마을만들기는 운동인가, 사업인가?”
지난 8월 12일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회원 50여명이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에서 쉰 세 번째 대화모임을 갖는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던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각 지역단위로 주민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를 회복하는 마을 사업들이 진행돼 오고 있는 가운데 과연 이 사업들은 ‘운동(Movement)’의 의미가 될 것인지, ‘사업(Business)’의 의미가 될 것인지 늘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마을공동체 사업은 부처별 목적에 따라 하향식 시설사업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행정자치부(마을기업, 정보화마을, 특성화마을, 희망마을), 농림축산식품부(색깔 있는 마을, 신규마을, 농촌체험휴양마을, 농촌공동체회사 설립), 문화체육관광부(문화도시·문화마을 조성, 관광두레, 문전성시프로젝트), 문화재청(문화재 행복마을 가꾸기), 국토교통부(도시재생,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 환경부(자연생태 우수마을), 해양수산부(어촌6차산업화·바닷속 체험마을 시범사업), 고용노동부(사회적기업), 산림청(산촌생태마을) 등 20여개에 이른다.하지만 주민들의 역량이 미진한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은 예산이 지원되는 동안에만 ‘반짝’ 성과를 나타냈다가 지원이 끝나면 곧바로 흐지부지 되기 십상이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마을공동체사업, 그 답은 무엇인지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가 주최한 제53회 영암대화모임에서 찾아본다.

 세 번째 마을만들기 현장은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이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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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모정마을

월출산과 황금빛 들녘, 그리고 5만평의 연꽃호수가 어우러진 마을, 마을공동체가 살아 숨쉬며, 남도의 멋과 인정이 넘치는 마을...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을 일컫는 말이다.

모정마을은 월출산 천황봉에서 굽어보면 넓은 평야 한 가운데 떠있는 섬처럼 아늑하게 보이고 마을에 있는 모정저수지에서 바라보면 월출산에 뜨는 보름달 풍경이 가장 멋진 곳이다.

마을 등성이에 바위와 소나무가 있어 송암(松岩)이라 하였으며 1500년대에 임구령이라는 사람이 지남제를 축조한 뒤 영풍정 자리에 쌍취정이라는 별장을 지었으나 나라에서 너무 호화롭다하여 철거명령이 떨어져 기와지붕에 띠를 엮어 사용해 그때부터 띠 모(茅)자와 정자 정(亭)를 써서 모정(茅亭)이라 불리게 됐다 한다.

마을의 대표 정자인 원풍정에는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12경을 담은 편액이 걸려 있다. 이른바 ‘원풍12경’은 지남들에 내리는 밤비, 도갑사에서 들리는 저물녘 종소리, 선장마을에서 목동이 부는 피리소리, 은적산에서 피어오르는 맑은 기운…. 하나하나 읽다보면 아름다운 농촌마을의 전경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난의 역사가 주민들의 자부심으로
 

모정마을은 고작 20여호 남짓한 작은 마을이지만, 대하소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곳이다. 광산김씨 문중 소유의 ‘사권당’.

 구한말 철종이 모정마을에 효자문을 하사하자 마을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었다.

 당시만 해도 모정마을의 주민들은 효자문을 출입문으로 삼아 장안의 이름난 대목을 불러다가 손수 집을 지었는데, 멀리 월출산에서 베어온 나무를 지고 와서 기둥을 세웠고 서까래를 세웠다.

모정마을에서 또 독특한 것은 원풍정 앞에 세워진 ‘철비’다. 150여년 동안 눈비를 맞아 비의 표면은 삭아있었지만, 그래도 비에 새겨진 글씨는 뚜렷하다.

 철은 부의 상징으로 나무나 돌에 비해 강하고 영원하다고 믿어져서, 예전에는 공덕비를 세울 때 간혹 철비를 세웠다. 이 철비는 150년 전영암 일대를 다스리던 김병교 관찰사의 불망비다.

관찰사의 공덕비가 이곳에 선 유래는 이렇다. 400여년 전쯤 일대에 방조제를 세워 옥토를 만든 임씨 문중이 있었는데, 그 문중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방조제 안쪽의 넓은 들을 모정마을 사람들에게 다 팔았다.

그러다가 몇년이 지난 뒤 다시 모정마을을 찾아 “땅을 팔 때 저수지는 팔지 않았다”며 억지를 부리고는 저수지를 메워 농토를 만들려 했다는 것.

 모정마을 주민들은 이런 억울한 사연을 관찰사에게 고했고, 송사 끝에 김병교 관찰사가 “땅을 다 팔았다는 것은 물을 대는 저수지도 함께 넘긴 것”이라고 판결해 모정마을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관찰사에 대한 보은의 의미로 철비를 세웠다.

모정마을에서는 또 영산강의 진면목도 만날 수 있다.

 모정마을에서 독천 쪽으로 이어지는 산허리의 강변길을 달리면, 저 아래에서 굽이쳐 흐르는 서호강이 월출산에서 발원한 덕진강과 한데 만나 어우러지며 영산강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대한 영산강의 모습도 좋지만, 영산강 하구둑이 들어서기 전에는 바다였던 주변 마을의 풍경까지 엿볼 수 있다. 마을을 돌다 보면 역사책에나 나올법한 이런 얘기들이 골목골목마다 벽화로 그려져 있어 마을 한 바퀴를 돌다보면 이 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훤히 꿸 수 있을 정도다.

 

정부지원사업 마중물 삼아 마을만들기 

 

모정마을은 2010년 전남도 행복마을로 선정돼 20여동의 한옥으로 마을을 단장했다.

 이듬해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체험관을 건립했고, 2013년 한옥형 반찬사업장을 신축했다.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 ‘참 살기 좋은 마을’로 선정돼 마을의 유서 깊은 정자인 원풍정을 보수하고 골목길 벽화그리기를 진행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 전남대회에서 문화·복지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네사람들이 3년에 걸쳐 울력으로 건축된 전통한옥의 백미 광산김씨 문각인 사권당, 평산신씨 문각인 돈의재, 광산김씨 가문에 3대에 걸친 효자들의 덕행을 기려 임금이 직접 교지를 내려 하사한 삼효자문(세현문)

등 유서 깊은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호수에 가득 핀 아름다운 홍련이 호수둘레길 산책과 마을의 모든 집 담벼락에 전통풍습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벽화를 감상하며 마을을 돌아보는 산책은 시골정취를 흠뻑 느끼게 해준다.
해마다 정월대보름 줄다리기와 지신밝기, 원풍정 달맞이공연, 홍련축제 등 주민과 함께 하는 마을축제가 열린다.
또한 녹색농촌체험관을 중심으로 천연염색, 다도체험, 효체험, 도자기 만들기 등 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거리가 진행되고 있다.
밖에서 봤을 때는 마을에 대한 지원사업이 복합적으로 이뤄져 만들어진 금자탑으로 보일 수 있지만, 주민들은 이같은 사업들을 마중물로 삼아 끊임없이 토론하고 실행하는 마을만들기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객지에서 돌아와 고향 살리기 투신   

모정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필수코스로 들르게 되는 ‘월인당’. 월인당은 행복마을추진위원장인 김창오 씨가 고향의 품이 그리워 객지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 자신의 탯자리에 지은 한옥민박이다.
김 위원장은 살림집으로서가 아니라, 이 마을을 살릴 공동자산으로 집짓기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자기 살집이 아닌 ‘민박집’을 지으면서 이렇듯 정성을 다하는 집주인을 보고는 대목일을 해주던 김경학 씨와 도편수 일을 하던 이춘흠 선생조차 고개를 내두를 정도였단다.
한옥을 지으면서 방 앞으로 누마루를 내겠다고 하니 다들 방 한 칸이라도 더 내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또 한옥 방 3개를 모두 장작을 때는 방으로 만들겠다고 했다가 반대에 부딪혔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손님을 들일 때면 방 마다 불을 때는 일이 보통 수고로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겨울 손님들이 반갑게 아랫목에 손부터 밀어 넣는 모습을 보면 번거롭고 고된 불 때기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대화모임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상경기와 귀향기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고된 농사일에 고향을 뜨기로 작정한 김 씨는 열여덟의 나이에 아무런 연고 없이 무작정 상경했다. 처음에는 서울 영등포의 중국집에서 ‘철가방’ 일부터 시작했다. 소위 ‘노가다’ 일도 했고, 스웨터 공장에도 다녔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책을 잡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학원 영어강사를 하던 그는 교사이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서울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지난 1997년 서울근교 쪽으로 이사하면서 자신의 마음 안쪽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음을 비로소 알아챘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마당이 있는 집’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감나무며 살구나무가 서있고, 장작을 때는 구들집에서 살고 싶었다. 김씨가 ‘불 때는 방’을 고집한 것은 유소년기의 추억 때문이었다.
고향으로 내려 온 그는 강진에 있는 늦봄문익환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 마을일을 위해 사임하고 지금은 일주일에 이틀만 학생들을 가르치러 간다고 했다.

너와 내가 함께 잘 사는 마을로

모정마을 주민들은 올해로 3년째 ‘달빛연꽃축제’를 열었다. 보름밤에 열리는 축제는 호수산책로와 한 여름의 달밤, 그리고 호수에 가득 핀 아름다운 홍련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는데 주민들을 뭉치게 하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되고 있다.
음력으로 7월 보름인 지난달 17일 열린 세 번째 축제는 모정달맞이 차회와 차사랑 차회가 준비한 연꽃차 시음을 시작으로, 영암이 낳은 가야금명인 양승희와 제자들의 가야금 공연, 전남도 무형문화재 설북 보유자인 김내식의 소포걸군농악, 모정달맞이 풍물단의 원풍정12경 민요 및 대동풍물놀이 등 원풍정에서 달이 떠오르기는 기다리는 달맞이 음악회로 진행됐다.
마을주민들이 마련한 풍성한 로컬푸드로 만찬을 즐긴 참석자들은 달이 떠오를 즈음 마을 앞 홍련지에서 수변산책로를 따라 걷는 달빛산책과 마을골목에 그려진 벽화의 거리산책 등으로 행사를 마쳤다. 눈앞에 펼쳐진 월출산을 바라보고 너른 들녘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책길 걷기는 가족이 화목해지고 사랑이 이뤄지며, 동심이 되살아나고 꿈을 되찾게 하는 추억의 공동체가 되고 있다.
모정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일이 마을을 살리는 일이고 마을주민들이 뭔가를 해 낼 수 있다는 자부심에 서로를 격려해가고 있다. 때마침 영암군은 올해 후반기부터 문화·관광·스포츠산업을 핵심발전전략으로 내세우고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암군이 한국관광공사에 용역을 의뢰한 거점관광지 개발계획 최종보고서에서도 모정마을이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고즈넉한 시골풍경이 매력인 모정마을은 마을주민들의 역량강화사업 발굴에 이어 정자복원과 주차공간 확보가 숙제다.
모정행복마을 김창오 추진위원장은 “월출산과 황금빛 들녘, 그리고 5만평의 연꽃호수가 어우러진 모정마을은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기도 하지만 마을주민들이 내가 잘 되려면 너도 잘 돼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마을만들기에 힘을 모으고 있다”며 마을공동체의식을 마을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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