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혁신도시
 
8.22 화 14:16
 
> 뉴스 > 사설 및 칼럼 | 발행인 칼럼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이젠, 목사의 통큰 결단만이 나주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2016년 11월 08일 (화) 17:50:40 전남타임스 jn-times@hanmail.net

   
▲발행인 조성환
오지 말아야 할 상황이 와 버렸다. 신도들간 고발사태로 까지 확산돼 버렸다. 이는 108년의 역사를 가진 나주교회의 얘기다.

지난 수요일(2일) 신도들의 기도회를 장로 B씨가 막았다는 이유로 같은 장로 A씨가 업무집행방해로 B씨를 고발을 해버렸다.

지난해 말께 목사와 몇몇 장로들 간의 불협화음으로 시작됐던 나주교회내 갈등이, 이제는 장로들 간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목사 측에 선 장로와 목사측 반대편에 선 장로.

갈등의 당사자는 뒤로 빠지고 대리전 양상을 치르다보니 이젠 전면에 나섰던 장로들간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9월 초, 추석을 며칠 앞두고 만났던 나주교회 C목사.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서있는 목사다.

 나주교회의 현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물어봤다.

C목사는 “ ‘교회법’이 있기 때문에 ‘교회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엄연히 교회법이 있는데 몇몇 신도들의 감정에 따라서 C목사 본인이 사임을 하게 되면 다음에 오는 목사도 책임을 가지고 목회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C목사의 말이었다.

그리고 C목사는 "장로회의에서 결정이 나면 그 결정대로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날, 장로들은 서울지역에 있는 E교회 목사와 나주교회 D목사의 ‘맞 교환’하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서울지역 E교회 역시, 장로와 목사간 갈등이 깊게 패여 있는 교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E교회 측에선, 제시된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나주교회 신도들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래서 그 ‘안’은 현재 폐기된 상태다.

이젠 해결을 위한 어떠한 ‘안’도 없고 해결책도 현재로선 없는 상태다.

서로가 협상을 위한 어떤 노력도 사라졌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장로 A씨가 같은 장로 B씨를 업무집행방해로 고발을 해버렸다.

지역사회에서 수 십년 동안 형님, 동생 또는 친구로 살았던 이들이다.

또 장로까지 올랐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사태가 있기 전만해도 몇십년동안 나주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가 존경과 사랑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예수의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만났던 이들이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러 왔던 이들이 오히려 교회내에서 갈등으로 서로 싸우고 있다.

무엇인가? 한참, 잘못됐다.

이젠 나주교회 갈등의 최전방에 서있는 C목사가 대답을 할 차례이다.

C목사는 ‘교회법’을 강조했다.

‘교회법’이 엄연히 있는데 ‘교회법’에 의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C목사의 생각이다.

필자도 일부분 목사의 말에 공감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정해진 규칙에 의해 풀어가자는 목사의 생각이 굳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정해진 규칙보다는 예수의 정신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법(法)이란? 전지전능하지 않은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기준이다.

각자가 자기 욕심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각자 욕망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무질서한 세상속에 질서를 주기 위한 뜻에서 기준점을 만들어 놓은 것이 법이다.

교회법 역시, 이와 똑같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칙이다.

그렇지만 ‘교회법’은 ‘세상법’과 똑같은 기준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세상법’ 해석의 기준점이 ‘인간’이라면 ‘교회법’ 해석의 기준점은 ‘예수가 가르치고자 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왜? 예수가 유대인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로마군의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유대인들의 편협된 하느님의 사랑을, 예수는 인류 보편적인 사랑으로 바꿨다.

그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까지 하지 않았나?

목사는 그러한 ‘예수의 사랑의 정신’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교회에서의 목사에게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교회법’보다는 ‘예수의 정신’이 더 우선이다.

지금은 단순히 ‘교회법’만을 가지고 나주교회 문제를 풀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나주교회 갈등의 문제를 푸는 해법은 ‘예수가 인류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사랑의 정신’이다.

그리고 ‘예수의 사랑의 정신’은 ‘자기희생’에 있다.

이 ‘자기희생’의 정신을 이번 나주교회 갈등의 사태에서 누가?(who), 누구에게(whose) 먼저 보여줘야 하겠는가?이다.

 “신도들이 목사에게..??” 아니면 “목사가 신도들에게..??”

아마도, 지금 시점에서는 예수의 정신을 전하는 목사의 통큰 결단만이 나주교회를 살리고 기독교를 살리는 생명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전남타임스의 다른기사 보기  
ⓒ 전남타임스(http://www.jntimes.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청소년보호정책 |
전남 나주시 이창동 173-53번지 2층 | Tel 061)332-0211 | Fax 061)332-2562 | 청소년보호책임자 조성환
Copyright 2009 전남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jntimes.kr
전남타임스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