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성·정체성 함량미달→나주 평화의소녀상←지역성·작가의 창작성 인정해야

지난해 나주시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된 나주 평화의소녀상이 돌연 예술성·정체성 논란에 휩싸였다.“전혀 다른 소녀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성금모금 포스터의 이미지와 설치된 작품이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작가는 “일제식민지 당시 16~18세의 소녀이미지에 나주지역의 특성을 살려 나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이광춘 여사의 댕기머리를 형상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전남타임스는 활발한 논쟁의 장이 되고 있는 ‘나주시민소통사랑방’ 밴드에 게재된 논쟁의 글을 작성자들의 동의를 얻어 지상토론으로 구성하였다.<편집자주>

나주 ‘평화의소녀상’에 대한 단상

/이승룡
미술(조각)전공·시민
이번 나주시 ‘소녀상’ 작품에 대한 사회 각층의 우려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사안에 대해 유폐시키고 감추려는 태도로 사회를 조작해왔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욱이 소녀상은 기존 작가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 관심과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의지를 표방하고 있었기에 더욱더 미적, 정서적, 형식적, 절차적, 전략적 과정에 첨예한 관심이 모아졌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번 소녀상 작품이 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지 검토해 보겠습니다.

머리의 형상에 대한 해석

김경학 씨는 머리의 형상에 대한 해석이 논란이 된다고 보셨는데 그것은 예술작품을 해석하는데 보다 큰 틀의 관점이 아닌 지엽적인 사소한 문제로 관점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인들의 관점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왜 한복이 짧냐, 왜 신발을 신지 않았느냐? 머리는 왜 잘랐냐? 이런 등등...

그런데 전문가들의 입장은 보다 포괄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술작품의 가치판단은 보다 근본적 문제인 창작의 독창성과 가치를 생산하는 형식과 과정이 표절이 의심되지 않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주시 소녀상이 기존 작가의 형상의 유사성과 형식적 틀, 사회적 메시지를 만드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사회적 메시지를 생산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전문가라면 누가 봐도 표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지점입니다. 기존 작업이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며 벗겨진 발로 고뇌에 찬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임정임 작가의 작품도 이와 똑 같은 자세를 취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이는 조각이 심미적 대상을 넘어 ‘사회조각’으로써 공적언어로 전환되는 지점이며 이전환의 과정은 임정임씨의 창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술계 의식 있는 작가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유사복제가 무례한 복사행위며, 동어반복 행위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이 지점이 형상을 바꿨으니 나만의 상징적 해석이 있는 작품이다. 라고 주장하는 김경학씨의 답 글에 동의할 수 없는 지점입니다.

소녀의 눈동자와 보따리, 어깨 위 날개 표현

우선 작품에 부여된 해석은 자의적 상징들이죠. 동시에 그런 상징적 해석은 그림을 그리는 남, 녀, 노, 소 누구나 일반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임정임 작가가 선택한 형식은 눈빛과 보따리, 날개를 추가하고 인상을 조금 바꾼 것 외에 어떤 형식적 틀을 확장했으며, 구상작품이 대상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사회에 개입하려 했는지 그 형식적, 전략적 차별 점을 밝혀야 될 것입니다.

내가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표절의 근간은 원작이 갖고 있는 독자적 작품성 즉 사회적 메시지를 만드는 방식과 대중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방식, 조형적 형식과 구성, 이미지의 유사성, 예술의 사회적 개입방식을 비롯해 사소하게는 좌상의 형식, 한복을 입은 방식, 벗은 발, 응시하는 시선 모든 것이 원작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실증적 실체를 보고도 자신의 작품에 더해지고 있는 문제를 사소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작가로서 안목을 더욱더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작은 차이를 부각시켜 원작과의 변별력을 강조하고 전체를 조화롭게 바라보고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화자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양한 방식으로의 소녀상

그렇다면 기존 작품과 진정 달랐나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명찰을 바꿨다고 사람이 달라질까요?

예를 들면 중국제 자동차가 한국차 디자인을 차용해 범퍼조금 바꾸고 색상조금 바꿨으니 이제 다른 차라고 주장하면 달라지나요? 예술작품은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죠.

왜냐하면 소녀상은 구상, 비구상의 이런 작품이 아닌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조각의 위치가 해석되는 ‘사회적 조각’이기 때문이며, 그 방식과 형식, 형태와 상징, 절차와 전략적 사회 개입까지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모르셨다면 임정임 작가님은 19세기 방식의 사고를 하고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임정임 작가가 지금 취하고 있는 방식이 기존 작가의 방식과 뭐가 다른지요? 그 틀을 조직한 분이 원작자이지요? 그리고 그 틀이 소녀상을 현대 미술의 한 복판에 서있을 수 있게 한 힘입니다.

그 힘에 기대고 있는 것이 임정임 작가시구요. 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김운성, 김서경 작가와 통화

어느 누가 창작을 하는데 소녀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작가는 당신만의 소녀상을 만들라고 했지 원작의 그늘에 함몰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주시 소녀상은 원작의 기품을 뛰어넘어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심미성, 조형성을 한층 고양시키는 것이 아닌 우려와 안타까움을 발생시킴은 물론이고, 공적예술작품의 탄생에 있어 절차적 투명성과 사회적 관계를 통한 해석의 가능성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반 시민을 비롯한 전문가 집단의 우려인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제작에 있어 작가인 임정임 작가를 제외한 어떤 작가가 선정에 있어 경쟁상대로 추천되었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심사되었는지도 선정에 있어 투명성을 밝히는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하며, 동시에 소녀상 건립위원회의 세 차례의 조율과정에 참여한 구성원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전문가였는지 전문가라면 경력을 상세히 밝히는 것 또한 공공예술의 기획과 설치 과정의 투명성 확보에 중요한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나주시 소녀상에 대한 미술계 인사로 구성된 심의 위원단을 구성해 이번 사태에 대한 가치판단이 이루어져야 지역민의 예술기획에 대한 불신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끝으로 창작의 자유를 말하시는 김경학씨의 말에 백번 동의합니다. 저는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임정임 작가의 작품성과 과정, 절차, 예술의 사회적 개입을 위한 전략의 동일성과 유상성을 비롯해 표절의혹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표절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전문 비평가가 강력하게 어필하였고, 현재 소녀상 관련한 미술계의 시선이라고 합니다.

나주시 소녀상 문제는 벌써 서울에 작가들에게도 회자되고 있다니 더욱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역의 예술가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을 때 소녀상 관련한 비판의 글을 ‘월간미술’ 잡지를 통해 표면화 시켜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 이 문제를 갑론을박 할 것이 아니라 자성하고 반성해서 자발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순서라 생각합니다.

대의가 작가에게 있지 않음이 자명한데, 논쟁을 가속화시켜 문제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제가 이미 많은 지인을 통해 작품에 대해 감정 평가를 의뢰해 보니 이번 소녀상이 얼마나 문제가 심각한지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조각을 전공한 사람이라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려하고 있으나 이번 소녀상은 공감이 가질 않습니다.

전남타임스 후원

저작권자 © 전남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