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연작 …김종 시인의 안성현 탐구 ‘영감과 열정, 그리고 자유예술혼의 시간’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경희대 대학원 문학박사
-조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추사 김정희 선생 추모 전국휘호대회 심사위원, 대한민국 동양서예대전 초대작가
-현 국제펜 한국본부 ‘펜문학’ 편집인 및 간행위원장
-현 언론중재위원
김재민은 일로에서 직장을 그만 두고 자유의 몸인 안성현과 작곡자 겸 바이얼리스트인 목포중 신임 교사 조념을 함께 만났으며 안성현이 사직하고 서울로 옮긴 것은 음악활동의 무대를 전국적으로 넓히기 위한 것으로 사직의 이유를 추정하고 있다.

2001년 박기동의 『신동아』 인터뷰에는 안성현의 이 무렵의 행적을 짐작할 수 있는 발언 하나가 소개되어 있다.

박기동에 따르면 안성현은 “부친이 평양에서 고관으로 재직하는데 한 번 만나러 가고 싶다.
도쿄 유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무용가 최승희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기동의 기억과 증언이 맞다면 안성현은 1949년 9월 15일 의원사직과 동시에 북한행을 서둘렀을 것이고 안성현이 사상적으로 강한 경향성을 지녔다면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남쪽 대신 북한행을 택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1950년 5월이면 6.25직전인데 안성현이 목포사회를 떠나 서울 등지에 있을 때에도 목포여중 강당에서 이 학교 음악교사 이득주의 피아노반주로 안성현은 작품발표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의 추정처럼 안성현이 쫓기는 처지에서 의원사직을 했다면 불과하면 9개월 뒤에 어떻게 험지인 목포에서 이 같은 작품발표회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날의 무대에서 〈부용산〉, 〈진달래〉, 〈내 고향〉등 노래가 이어질 때 안성현의 성량이나 가창력은 대단했고 그 일이 있고나서 목포의 학생이나 시민들 사이에는 〈부용산〉을 애창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6‘25가 발발하고 인민군이 목포에 진입한 7월 24일 이후에는 실력은 월등한데도 ‘투쟁경력이 없어서’ 음악동맹위원장에게 멸시당한 일 등은 그 설명이 군색해진다.

‘부용산’의 부활

이렇게 시간이 가면서 작곡자 안성현의 ‘부용산’이 수면 위로 떠오른 시기는 1997년이다. 가수 안치환이 『노스탤지어』라는 앨범에 작사자, 작곡자 미상으로 전라도 권역에서 구전되는 노래를 채집의 형식으로 수록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일보에는 1998년 2월 14일자와 3월28일자 두 차례에 걸쳐서 김성우 논설고문의 『김성우 에세이』에 「부용산 오리길에」와 「정설 부용산」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이 칼럼을 계기로 「부용산」과 더불어 ‘안성현’, ‘박기동’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20년도 훨씬 전이다. 어느 자리에서 박성룡 시인이 불렀다. 전혀 생소한 노래였다.

애상의 곡조가 가슴에 짜르르 했다. 박시인은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다.…”(2/14) “1941년 18세 때 벌교로 시집을 갔고 죽은 것은 24세였다.

30세이던 박교사는 벌교의 부용산에 누이동생을 장사지내고 돌아와 순천에서 ‘부용산’이라는 시를 썼다. 이듬해인 1948년 박 교사는 목포의 항도여중으로 초빙되어 갔다.

여기서 안성현이라는 음악교사를 처음 만났다. 안 교사는 극단적인 낭만주의자였다.

이때 항도여중 3학년에 김정희라는 학생이 경성사범에서 전학해와 있었다. 특히 문예방면에 소질이 뛰어난 천재소녀였다.

조희관 교장 말이 이 천재소녀에게 국어를 가르칠 선생이 없어서 박 교사를 모셔왔노라 했다.…얼마 뒤 서랍 속에 넣어둔 박 교사의 시작노트를 안 교사가 몰래 가지고 가서 곡을 하나 붙여왔다.

‘부용산’은 노래를 잘하던 배금순이라는 상급반 학생이 맨 처음 불렀고 금방 전남 일대로 유행해 나갔다. 나중에는 전혀 사상성이 없는 노래인데도 지리산 빨치산들의 애창곡이 되기까지 했다…”(3/28)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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