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준
목포시 거주
7월 21일 금요일, 일산에 사는 윤 선생이 여름방학을 했다면서 나한테 놀러왔다. 그는 십여 년 이상 거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방학 때면 내가 보고 싶다고 목포로 내려온다.

이번에는 임자도 대광리 해수욕장을 가보고 싶다 했다. 그는 사람이 너무 점잖아서 삼복더위에도 점잖은 옷을 입고 왔다.

하는 수 없이 내 셔츠를 입히고 내 모자를 씌우고 내 슬리퍼를 신도록 했다.

그를 만난 것은 1994년 해남중학교에서였다. 그 해 3월, 나는 전교조 문제로 해직 당했다가 복직했다.
열두 살 아래 띠 동갑, 나는 목포에서 해남까지 그의 승용차를 많이 얻어 타고 다녔다.

어쩌다가 그의 작품을 읽어본 나는, “이제 다 되었네. 투고해도 되겄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평화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당선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얼마 후에는 시인으로도 등단하였다.

그는 내 인생행로에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전문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또한 가장 부드럽고 온화하고 화기애애하고 다정다감하고 관후 인자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부부 금슬이 너무도 좋은 사람이다. 집안일에 나 몰라라 하는 나와는 달리 일터에 나다니는 아내를 돕기 위하여 집안일을 기꺼이 거든다. 아내는 남편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아주 헌신적이다. 그 부부는 식탁에 앉아 한두 시간씩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는 게 다반사란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윤 선생은 전화로 나와 아내의 옷 치수를 물었다.
“옷은 무슨, 그냥 내려오시게.”

아무리 뻗대도 소용이 없었다. 줄기차고 집요한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끝내 나는 100이고 아내는 77이라고 자백하고 말았다. 나와 아내의 셔츠를 선물로 사가지고 왔다. 입어보니 몸에 딱 맞고 마음에 딱 들었다.
그 길로 끼어 입고 대광리 해수욕장 가는 길에 나섰다.

그 동안 윤 선생은 도리우찌를 자주 사다주었다. 그러고 보니 저 도리우찌(헌팅캡, 납작모자)는 윤 선생이 사온 게 아니라 전번에 조창익 선생 아드님 주례를 서고 선물로 받은 모자로구나.

그러고 보니 나는 평생 동안 내 주위의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너무나 많이 받고 살았다. 하해와 같이 크나큰 은혜를 입으면서 조금도 보답을 하지 못했다. 고맙고 죄송할 따름이다.

대광리 해수욕장, 모래밭은 십 리가 넘게 뻗쳐 있고, 아직은 수영객이 드물었다.
해수욕장을 통째로 전세 낸 기분이었다.

물은 알맞게 따뜻하고 시원했으며 개펄로 온몸을 문지르는 느낌이 훌륭했다. 소금기 많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피부가 따끔따끔했다.

언젠가는 윤 선생이 5월에 놀러왔다. 둘이서 압해도 송공항에서 차를 배에다 싣고 암태도로 건너가서 자은도 분계 해수욕장으로 놀러갔다. 아직 봄철이라 백사장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자은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동창회를 마치고 정자에 앉아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50대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우리더러 술 한 잔 하고 가라고 했다. 얼음에 채워 온 병치와 갑오징어가 그렇게 맛날 수 없었다.

또 한 번은 둘이서 함평 시장을 구경하고 거기에서 순대를 조금 샀다.

귀로에 무안 학마을에 들렀더니 왜가리 백로들이 솔밭을 하얗게 덮은 채 까옥거리고 있었다.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순대에다 소주를 마시려는 참인데 동네 할아버지들이 지나갔다. 결국 모르는 동네 할아버지 여남은 분과 어울려 소주를 마시던 일도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았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윤 선생과 놀러갔던 곳을 헤아려본다. 무안 사창의 짚불구이, 임실 옥정호, 구림 도갑사, 관매도, 청산도, 보길도, 우수영, 삼천포.......

이번 방학에도 윤 선생은 꽤 오랫동안 함안 용타스님 밑에서 지낼 예정이라 한다.

1980년부터 시작된 용타스님의 동사섭(同事攝)은 중생과 희로애락을 함께한다는 뜻인데 불제자보다 일반인들의 참가율이 도드라지는 수행명상 프로그램이란다.

내가 보기에는 윤 선생이 용타스님의 수제자쯤으로 여겨지는데 또 윤 선생은 날더러 일부러 동사섭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이미 몸으로 동사섭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치켜세워준다.

그는 이 세계에 펼쳐진 삼라만상이 죄다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엮여 있음을 역설한다.
그대여, 너와 나는 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거나.

대광리 해수욕장 아주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ㅍ횟집’-이름 그대로 참 편안하고도 푸짐하고도 싱싱하고 맛난 횟집이었다. 뭐 한 접시 먹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농어 회 먹으라고, 한 접시 얼마냐고 물었더니 8만 원이라고, 조금 비싼 편이지만 피서철 해수욕장 부근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들어갔는데, 웬걸 스끼다시(밑안주, 기본안주)를 보면서 느낌이 홱 달라졌다.

개불에다 멍게는 그야말로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요, 민어회 몇 점에다 민어 부레 두 점. 꿈틀거리는 낙지 반 접시, 감성돔 회 몇 점, 광어 회 몇 점 - 이것만으로도 소주 몇 병은 거뜬히 해치울 만큼 푸짐했다.

나는 먹음직스러운 안주만 보면 사진 찍을 생각조차 까맣게 잊은 채 허겁지겁 상 앞으로 다가서기 일쑤다. 이번에도 싱싱하고 맛난 안주 몇 점에 부지런히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퍼뜩 사진이 생각나서 부랴부랴 카메라를 찾아 먹다 남은 안주를 찍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임자도 가시는 분들은 꼭 ‘ㅍ횟집’에 들러보시기 바란다.
그 식당에서 거창하고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만찬을 마치고 남은 농어회를 싸주라고 해서 펜션에 가지고 와서 야구 중계를 보면서 또 한 잔.

기아가 비실비실한 롯데한테 또 졌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싹쓸이 당했다. 싱거운 친구들 같으니라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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