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전 거동을 보아라 궤문을 덜컥 열고 돈 닷냥을 내어주니 / 흥부가 받아들고 다녀오리다 평안히 다녀오오 / 박흥보 좋아라고 질청 밖을 썩 나서서 /얼씨구나 좋구나 돈 봐라 돈 /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오륜이 다 보이고 / 조금 있다 남은 지환을 손에다 쥐고 보면 삼강오륜이 끊어지니 보이난 건 돈 밖에 또 있느냐 ... 여보게 마누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가 들어서면 / 우루루루 쫓아 나와 영접하는 게 도리올 체 / 계집이 당돌히 앉아서 좌이부동이 웬일이냐 에라 이 사람 몹쓸 사람...’

판소리 흥보가에 나오는 ‘돈타령’의 한 대목이다. 가난에 찌들어 살던 박흥보가 가족들의 배고픔을 덜어주기 위해 매품을 팔기로 하고 다녀오라는 매삯으로 돈 닷냥을 받아가지고 집에 들어오면서 호기롭게 부르는 대목이다.

그런데 받은 돈을 갖고 곧장 집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도중에 떡국집으로 들어가서 떡국 반 푼어치 사서 먹고, 막걸리 집으로 들어가서 막걸리 두 푼 어치를 사서 먹고, 온갖 헤찰을 다하고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부인에게 “집안 어른이 어디를 갔다가 들어오면 지체 없이 나와서 영접하는 게 아니라 왜 꾸무럭거리느냐?”며 호통까지 쳐댄다. 참으로 돈의 위력이 이런 건가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 나주시가 돈을 막 써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안 하던 행사가 뜬금없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고 여전히 노래자랑, 먹거리자랑, 심지어 회원 수가 좀 된다 싶은 단체들마다 거창한 한마당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나주시 돈자랑의 압권은 ‘비 오는 날 꽃에 물주기’다. 주부 정 아무 씨의 말을 빌자면 “돈자랑도 지나치면 돈지랄이 된다더니, 나주시가 비가 오는데 꽃에 물을 주고 있더라”는 귀띔이다.

대체나 그 말과 엇비슷한 말을 필자도 들은 바가 있다. 나주 원도심 골목에 울창하게 자라난 10여그루의 가죽나무와 오동나무가 소방도로 개설하는데 걸림돌이 된다하며 싹둑 잘려져 나간 것을 보고 항의를 하자 담당 공무원 왈(曰), “그 나무는 값어치가 안 나가서 옮겨 심는 비용이 더 나가서 자르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한 술 더 떠서 “그 나무 보다 더 좋은 나무를 심어주겠다”는 얘기까지 했다. 돈이 넘쳐나니 정말 ‘돈지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나주시 본예산은 지난해 보다 417억원(7.3%)이 증가한 6천35억 원이었다. 이후 1회 추경에 7천408억 원, 2회 추경예산에서 8천148억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내년이면 나주시 예산이 1조원을 돌파하게 된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혁신도시 효과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올해 혁신도시에서 들어오는 지방세가 985억원, 개발부담금 447억원 등으로 얼추 1천4백억원이 혁신도시효과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나주시가 이처럼 불어난 예산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지난 7월 취임 3주년을 맞은 강인규 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민선6기 출범 당시 332억 원에 달했던 지방채가 110억원(현재 92억원대)로 낮춰졌다”고 밝히며 “올 연말이면 지방채 전액을 상환해 말 그대로 ‘지방채 제로도시’를 자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주시는 이를 두고 외적으로 국비예산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내적으로는 선심성, 낭비성 예산을 줄이고 분야별 외부용역 설계를 최소화하는 등 효율적인 예산을 집행해온 성과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뛰고 있는 일부 후보군들이 바라보는 견해는 사뭇 다르다.

나주시가 늘어난 예산을 지역의 현안사업을 해소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은행권 이자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채를 갚는데 쓰는 것은 돈을 굴릴지 모르는 행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인규 시장은 “나주시 부채는 고정금리이기 때문에 빨리 갚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나주시 예산담당 공무원도 “지방채는 지방재정건전성 평가에 있어서 감점요인이기 때문에 갚은 것이 현명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부채를 안고 있는 것이 전적으로 마이너스 요인일까?

최근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한전 등 전력공기업에서 받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전의 부채비율은 2016년 90%에서 2021년 116%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한전의 부채규모는 53조7천억원. 그런데 5년 뒤인 2021년에는 66조8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한전의 자산규모는 올해 109조6천억원에서 내년이면 113조를 넘게 되며 5년 뒤에는 124조2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부채를 갖고 있는 것이 굳이 망할 징조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주시가 부유해지고 시민들이 부자마인드로 무장하고, 부자가 된다는 것은 건설적이며, 아주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과학적이며 민심이 인정하는 예산정책이 나와야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 나눠주기식 선심행정을 하다가는 민심의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나주시는 돈 잘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건전하고, 견고하고, 과학적인 예산편성, 또한 나눔의 실천을 통해서 각계각층의 시민들한테 인정받을 수 있을 때만이 나주시가 지방채 없는 도시라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내년은 나주가 자랑하는 전라도 정도 10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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