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김양순

그 공무원이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나주의 문화와 관광업무를 담당하거나 홍보하는 업무를 맡은 공무원일 것이라 어림짐작할 뿐이다.

며칠 전 우연히 국내 유수의 언론사에 근무하는 여행전문기자와 자리를 함께 했다. 화순 만연사 취재를 위해 KTX를 타고 나주역에 내린 김에 나주를 취재하고 싶어서 나주시 홈페이지를 훑어본 뒤 더 많은 신선한 정보를 얻기 위해 나주시에 전화를 걸어 ‘나주에 가 볼만한 곳’ 추천을 부탁했던 것.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홈페이지 보세요” 였다는 것이다.

황당한 마음으로 나주 거리를 배회하다 초저녁 무렵 한 후미진 골목길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어두컴컴한 골목길 저 안쪽에 따뜻한 불빛이 새 나오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아, 순간적으로 포착된 렌즈 속 풍경에 그는 넋을 잃을 정도였다고 했다.

빠져들 듯이 찾아간 곳은 바로 나주향교 옆 골목 향교길 42-16에 있는 옛 정의관집으로 ‘3917 마중’ 카페였다고.

1939년 당대 유일한 건축대서사였던 박영만이 건축한 난파고택(정의관집)은 1973년 (재)금하장학회에서 인수 한 뒤 몇 년 동안 사무실로 활용되다가 30년 가까이 빈 집으로 방치된 공간이었다.

이곳을 전주사람 남 아무 씨가 매입해 과감한 투자와 함께 8개월 만에 원형복원을 마치고, 지난 10월 ‘청출어람 천연염색축제’에 부산 백송천연염색지도자협회의 19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보는 이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던 곳이다.

남 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한 번의 투자를 통해 ‘3917 마중’이라는 카페를 탄생시켰다. ‘1939년 나주근대를 2017년에 마중하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이런 공간을 발견한 기자는 잠시 둘러보기로 했던 나주에서 1박을 하며 꼬박 이틀 동안 돌아다니게 됐다.

고향도 아닌 나주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집을 과감한 투자와 함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고자 하는 주인장의 얘기에도 혹 했고, 우연히 주막집에서 만난 나주의 젊은 작가 선성경 씨가 동료작가들과 그려낸 나주의 도시재생문화엽서 ‘아나주까’에도 기발하다는 촉이 와 닿았던 것이다. 그 기자는 나주에 대해 기사를 쓸 때 ‘아나주까’를 제목으로 달아야 겠다는 얘기도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문을 닫아야 하는 주막집 주인장은 계속 굴구이를 리필해주며 기다려주었고, 뒤늦게 합석한 ‘남파고택’의 차종손 박재영 교수와 얘기가 닿아 기자는 뜻밖에도 남파고택에서 하룻밤을 묵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주가 이렇게 멋진 곳이냐, 나주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냐, 얘기가 오가면서 나주시 노안면 이슬촌 크리스마스축제 얘기도 나오고, 문평 명하마을 쪽빛축제 얘기도 나왔다. 기자가 생각지 못했던 취재거리에 연신 기록을 하는 손이 분주했다.

나주시민들은 이랬다. 누군가 나주에 대해 궁금함을 보이자 그가 누구이기를 따지기 이전에 그를 데리고 나주를 돌아봐주고, 그와 함께 밥을 먹어주고, 잠을 재워주고, 그가 혹 나주에 대해서 기사를 쓰게 된다면 좀 더 많은 얘기를 실감 있고 정감 있게 써주기를 바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은 민간사절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건데 거기에 대고 ‘홈페이지를 보라’고 답변한 공무원은 과연 나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있는 것인가, 공무원이 서비스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요즘 심심찮게 전화를 받는다. 몇 년 전에 나주 이슬촌에서 열린 크리스마스축제에 참가했던 사람인데 올해 숙박은 어디에서 하는 것이 좋은지,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 지 묻는 전화다.

당연히 성탄절을 전후해서 열릴 것으로 알았던 크리스마스축제가 올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참 허탄했다.

지난 10년 동안 축제를 운영해 오던 마을 어르신들이 연로하시고, 젊은 분들 참여를 이끌어 내기가 어려워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는 말에 나주시가 의욕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방안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수수방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라남도가 전라도 정도 천년을 앞두고 ‘천년나무’ 지정을 위해 SNS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정작 나주에 있는 나무가 없다는 것도 허탄하다.

천년나무는 고려 현종이 나주로 몽진을 왔다가 무사히 돌아간 1018년 ‘전라도’라는 이름을 내린 것을 기념해 남도의 애환과 역사를 간직한 살아있는 유일한 기념물로, 앞으로 미래 남도 천년을 밝혀줄 타임캡슐로 보전될 예정이다.

여기에 선정된 나무가 해남 대흥사의 느티나무, 강진의 푸조나무 그리고 진도의 비자나무다.

최종 천년나무 선발은 예비로 선정된 3그루를 대상으로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라남도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eonnam.kr) 설문조사를 진행해 결정할 계획이란다.

나주에는 이런 나무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나주시가 이런 계획이 있는 것을 모르고 추천을 하지 못한 것일까?

전주-나주라 하여 전라도인 나주에서 천년나무가 지정된다면 앞으로 천년이 얼마나 뿌듯했을까, 공연히 헛물을 들이켰다가 실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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