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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표해록의 저자 금남 최부 선생을 말한다
“금남 최부, 역사학자·지리학자·기행문학가·시인·선비였던 분”
2017년 12월 24일 (일) 14:45:26 김양순 기자 ysnaju@hanmail.net
   
▲한국농어촌공사 아트홀에서 열린 금남 최부의 문학과 한중교류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세미나.

금남 최부 선생의 문학과 한중교류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세미나가 지난 13일 한국농어촌공사 아트홀에서 열렸다.최부선생기념사업회(회장 강원구)와 광주전남연구원(원장 박성수)이 공동으로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쑨씨엔위(孫顯宇) 주광주 중국총영사를 비롯한 학계 전문가, 한중교류 관련자, 관계 공무원 등 250여명이 참석해 최부 선생의 업적을 조명하고 기념사업 방향 등을 토론했다. 이날 세미나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 편집자주

   
▲호남대학교 안종수 교수를 좌장<사진 가운데>으로 이경수 전남매일신문 상무이사,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 한중문화교류회 강원구 회장, 순천폴리텍대학 탁인석 전 교수, 광주전남연구원 김만호 연구위원이 토론에 참여했다.

최부기념사업회·광주전남연구원, ‘최부의 문학과 한중교류’ 국제학술세미나  & 전라도 정명 천년 기념사업 일환 최부기념관·기념공연 등 기념사업 ‘박차’

세미나는 전 요녕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풍옥충(馮玉忠) 교수가 ‘최부 선생과 중국’을 주제로 발표가 예정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쑨씨엔위(孫顯宇) 영사가 요약한 원고를 대독하였다.

이어서 안종수 호남대학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된 토론회는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가 '영호남 사림과 금남 최부의 탐라시(耽羅詩)'를 주제로 발표에 이어 이경수 전남매일신문 상무이사의 토론이 이어졌다.

최한선 교수는 “최부는 동국통감을 편찬한 역사학자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지리학자, 또한 표해록을 남긴 기행문학가이며, 탐라시 35절을 남긴 시인이자, 절의와 의리의 선비였고, 호남시단에 서술시를 개척한 분”이라고 밝히며 최부 선생의 시 한 편을 낭송해 관객들로부터 열렬한 호응과 함께 박수갈채를 받았다.

제3주제는 한중문화교류회 강원구 회장이 ‘금남 최부 선생과 한중교류’라는 주제로 발표하였고, 광주전남연구원의 김만호 연구위원이 토론을 하였다.

강원구 회장은 한중문화교류에 있어서 최부 선생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하였으며 특히 무안 몽탄에 있는 최부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였던 이야기와 서삼석 전 군수와의 일화도 소개를 하였다.

강 회장은 “최부선생은 국제적인 인물인데도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앞으로 최부 선생의 고향인 나주시 금남동에 200억원 규모의 기념관을 건립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한중교류를 통해 나주가 발전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만호 연구위원은 앞으로 세워질 최부 선생의 기념공원, 기념관의 후보지로 연고가 있는 무안이나 해남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금남 최부는 누구?

다음은 강원구 박사가 최부 선생에 대해 발표한 내용이다.
금남(錦南) 최부(崔簿 1454~1504))의 자(字)는 연연(淵淵) 본관(本官)은 탐진(耽津)이다. 나주 동강면 성지촌에서 진사 최택(崔澤)의 아들로 1454년에 출생하여 나주 금계동에서 자랐다.

호(號)가 금남인 것은 금성에서 태어나 해남에서 공부를 하였다 하여 금성의 금과 해남의 남에서 연유한 것이다.

24세(성종8년, 1477)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1487년 부교리가 되었고 그해 9월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이 되어 제주도에 부임하였다. 1488년 윤정월에 부친상의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으로 돌아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중국 절강성 태주(台州) 우두외양(牛頭外瀁)에 표착(漂着)하였고, 이후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 중국 여러 도시를 거쳐 그해 7월에서야 조선의 한양 청파역에 도착하여 성종의 명으로 ‘표해록’을 저술 하였다.

1492년 모친상을 마친 후 서장관이 되어 북경을 다시 다녀왔다. 1496년에는 호서지방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중국에서 배워 온 수차의 제조방법을 보급하기도 하였다.

1498년 7월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단천으로 유배 되었다가 1504년 4월 연산군의 명으로 투옥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이후 1506년 그의 억울함이 해소되어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로 추증 되었다.

표해록의 가치는?

그렇다면 표해록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함께 중국의 3대기행문으로 손꼽히며 당시 명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교통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특히 중국의 강남과 강북지방을 가로질러 생생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1488년(성종 19년) 음력 윤1월 3일 부친상 소식을 듣고 16일 제주의 조천관 부두에서 배에 오른 최부는 제주를 떠난 지 14일이 지나서야 육지에 도착하였다.

권도(權道 임시방편)를 택하여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상복을 벗을 것을 권하였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여 효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죽음을 대비해야 한다는 주위의 말에 따라 인신과 마패를 가슴에 품고 상복을 갖추어 입었으며, 천명을 따르기로 하고 부디 부친을 선산에 모신 다음 죽음을 달라고 하늘에 간절하게 비는 모습을 보고 모든 사람이 감동을 하였다.

항주에서 운하를 따라 북경에 도착한 최부는 명나라 10대 황제 효종을 알현했다.

최부는 대궐에 두 번을 들어가야 했는데, 상복(喪服)을 벗고 예복차림으로 입궐하는 것은 효의 예법에 어긋나고, 반대로 상복차림으로 입궐하는 것은 황제에 대한 불경 행위다.

그래서 예부관원과 의논해서 우선 편법으로 본인은 출두하지 않고 수하의 정보 일행이 대신 가서 받게 했다.

다음날 사은(謝恩) 의례는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자금성이 시작 되는 장안 좌문에서 상복을 벗어 예복으로 갈아입고 승천문(昇天門 천안문)을 지나 황궁의 정문인 오문(午門)광장에 도착 한다.

사은례를 한 다음 좌문으로 돌아와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단 한번 상복을 벗은 것이다.

이후 요동반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1488년 6월 16일 한양에 도착하였다.

처음 금남이 왕명으로 성종에게 바친 글은 돌아온 지 8일 만인 6월 22일 ‘중조견문일기(中朝見聞日記)’였다. 5만4천자의 분량이다.

표해록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569년에 평안도 정주에서 그의 외손자인 유희춘에 의해서다. 그 후 1573년에 나주에서 다시 표해록을 간행한다.

외국에서 인정을 먼저 받아 1769년에 일본 청전군금(淸田君錦)이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으며, 1965년에는 미국 콜롬비아대학에서 존 메스킬(John Meakill)이 영어로 완역하였고, 1979년 최기홍 선생이 국어로 완역하였다.

1985년 금성출판사에서 어린이용 표해록이 발간되었으며 1992년 북경대학 갈진가 교수가 중국에서 역시 발간하였다.

2004년에는 동국대학교 서인범 교수가, 2006년에는 고려대학교 서인범 교수가 출간을 하였고, 2010년 항주 절강대학에서 최부지려(崔簿之旅)라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2016년에는 최기홍 선생의 아들인 최철호 선생이 발간하였다.

한편, 최부 선생의 묘소가 무안군 몽탄면에 있는 인연으로 무안군문화관광해설사협회 회원 10여명도 함께 참석한 가운데 한 참석자는 무안국제공항을 경유하기로 확정된 KTX공항역 주변에 최부 선생의 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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