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 Daphniphyllum macropodum Miq.&쌍떡잎식물강 쥐손이풀목 굴거리나무과 굴거리나무속의 상록활엽소교목

『굴거리나무』의 속명 다프니필룸(Daphniphyllum)은 녹나무과의 상록교목 ‘월계수’를 뜻하는 데프니(daphne)와 ‘잎’을 의미하는 필론(phyllon)이 합성된 희랍어이다. 

종소명 마크로포듐(macropodum)은 ‘크다’는 마크로(macro)와 ‘발(foot)’이라는 포우스(pous)의 조합이다.
 

여기서 ‘발’은 잎, 꽃자루, 줄기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긴 잎자루’또는 ‘큰 잎’의 뜻이기도 한다.

굴거리나무의 한자명 가운데도 발자국 ‘지(趾)’가 들어간 교지목(交趾木)이 있다. 뜻으로는‘잎이 엇갈리는 나무’쯤 읽혀지는데 또 중국 남방(南方)의 ‘교지(交趾, 배트남)에서 나는 나무’라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굴거리나무는 아열대성 기후분포도를 가진 한국 남부, 중국 남부, 일본 혼슈 이남, 타이완 등지에서 자란다.

일본인들은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의 의미를 담아 양엽(?葉)이라 하는데, 굴거리나무의 특징을 잘 설명한 한자이름이다. ‘讓’은 양보, 사양, 물러남, 겸손의 뜻이자 승당양(升堂讓, 손을 모아 어깨 높이로 올려 상대방에게 몸을 ‘굽히는’ 절)의 의미가 담겨있다.

봄에 총상꽃차례의 꽃무더기 위로 새 잎이 깃을 세우면 꽃 아래로는 묵은 잎들이 일제히 날개를 꺾는다.
 

조금은 안쓰러운 이 춘절의 이취임(離就任) 행사는 옛 잎이 노랗게 바래서 모두 자취를 감출 때까지 이어진다.

굴거리나무 이름의 유래는 굴거(屈居) 즉 ‘꺾인 잎이 현재의 위(位)를 견디다’에서 왔다하고, 무당굿에 사용되어 굿거리나무라 하던 것이 굴거리나무로 변했다고도 했다.  
 

또 잎이 커서 대엽남(大葉楠, 큰 잎 녹나무), 후박나무와 유사하므로 수홍박(水紅朴, 수홍빛 후박나무)이라 부르기도 한다.

굴거리나무의 어린잎은 꽃처럼 피며 자라서는 잎 가장자리가 뒤로 약간 젖혀진다.
 

잎자루와 햇가지는 어릴 때는 빨갛지만 차차 연두 갈색으로 변해간다. 꽃은 암수딴그루이고 열매는 포도알처럼 익는다.

난대성식물치고 추위에 강한 편이라 우리나라 남쪽의 어디에나 조경수, 가로수로 기르기 적합한 나무이며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는다.

굴거리나무는 한반도의 남단 제주도 돈네코 계곡에서부터 위로는 서해의 안면도, 동해의 울릉도까지 분포하며 내륙의 북방한계지는 전라북도의 내장산이다.
 

천연기념물 91호로 지정되어있는 내장산 굴거리나무 숲은 지구온난화에 따라 북상하는 한반도 난대상록활엽수종을 특징하며 우리나라 기후변화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굴거리나무는 동아시아 남부에 약 25종, 우리나라에는 좀굴거리나무(D. teijsmannii)와 함께 2종이 자란다.

이 둘은 애초에 대극과로 분류되었으나 최근 굴거리나무과로 독립되었다. 좀굴거리나무는 잎이 10cm이하로 작고 뒷면은 회록색을 띠며 잎이 위를 향한다. 

굴거리나무의 생약명은 「우이풍(牛耳楓)」이다. ‘커다란 잎이 소의 귀를 닮은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방에서는 이 나무의 잎을 열감기, 편도선염, 관절통, 요통, 구충, 골절, 부스럼 치료에 썼다.
 

좀굴거리나무의 약명을 교양목(交讓木)이라 하여 우이풍과 구별하기도 하는데, 주로 줄기껍질과 종자를 이용하였다. 맵고 달고 서늘한 성품이 간과 신에 작용하는데 소독(小毒)이 있다.

굴거리나무는 사계절이 푸르고 수형이 단정하며 아열대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나무다.
 

오고 가는 계절이라 무심하건만 사위(四圍)에 꽃빛이 사라지고 단풍잎마저 색색이 떨어지면 가을은 금세 생기를 잃어 우울해진다.

이런 때 갈잎나무들 사이로 잔잔한 남쪽바다의 고향 같은 동백, 팔손이, 호랑가시, 목서, 아왜, 사철, 돈나무, 소나무들이 등장하고 여기에 굴거리나무 싱싱한 초록까지 더해진다면 세한(歲寒)이라도 결코 하늘이 시리지 않을 것이다.

희생인 듯 사랑이며 인내인 듯 소망인 것들이 모여 ‘내 사랑 나의 품에’라는 꽃말을 빚어냈을까.
 

새잎과 옛잎의 세대교체라는 굴거리나무의 메타포는 해맞이로 설레는 세밑에서 생명의 원리인 배태(胚胎, 잉태)와 사속(嗣續, 이어짐)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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