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를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

고 ‘천안함 46용사’ 영결식과 안장식이 29일 해군 평택 제2함대 사령부내 안보공원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해군장으로 4월 30일 금요일 엄수됐다.

장례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들이 남긴 살신보국의 참군인 정신은 모든 국민이 자자손손 이어 누릴 자유와 번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대통령 등 2800명이 참석한 영결식에서는 천안함 생존 장병인 김현래 중사의 인상적인 추도사가 있었다.

“그대들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하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 해 죄송하다.”며 “전우들에게 더 큰 용기를 주고, 우리의 바다를 굽어 살피시어 이 나라를 지켜 주소서.”라며 추도사를 맺었던 날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눈물과 비통의 영결식을 보면서 지난 과거의 아픈 기억이 되 살아났다.

나는 1966년 2월 진해 해병 훈련소에 입대했다.

신병. 산악. 상륙. 특수훈련을 포함하여 약 9개월의 맹훈련을 받고 이역만리 베트남전에 투입되었다.

강구작전에서는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혹서 속에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적의 총탄이 아군을 향해 날아올 때 나는 모래사장 위에 엎드려 총탄을 피해 싸워야만 했다.

당시에 너무 힘이 들어서 차라리 총탄에 맞아 죽는 게 낫다는 심정이 울컥울컥 들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헬리콥터까지 추락하여 적군에 포위를 당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많은 전우들이 비싼 희생을 치르며 목숨을 이어가기도 했다.

전우를 잃은 충격도 잠시 곧바로 3대대 11중대 방어전에 가서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던 그 유명한 짜빈동 격전에서 적군 247명을 사살하기까지 했다.

그 때 우리 아군의 사상자는 17명이었다.

 당시 나는 L.M.G 사수로서 총탄세례를 받으며 전쟁을 치렀다.

당시 우리는 빗발치는 적의 총탄 아래서 적군과 아군의 구분 없이 물이 흥건한 논 위를 시신의 목에 줄을 걸고 이를 잡아당겨 시신을 처리하기도 했었다.

그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의 그러한 경험은 지금 나로 하여금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또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과 건강하게 사는 일에 대한 가치를 세우고 그러한 신념을 지키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베트남 전의 큰 전과로 인해 나는 1계급 특진과 인헌 무공훈장, 베트남 동성무공훈장도 받았다.

또한 월남전 당시, 대한민국 해병 청룡특공대원 50명중에 한명이었던 나는 방탄복을 입고서 수류탄 2개와 권총을 휴대하고 10명이 한 조가 되어 새벽에 반탐강 작전에 투입, 적 함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헬리콥터에 몸을 실었다.

전투시 상관의 명령 불복종은 총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지금 당시를 생각해 보면 단 10명으로 적 함대에 뛰어 드는 행위는 자살에 가까운 행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작전을 감행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앞서는 명령에의 순수한 복종이었다.

군대에서의 명령에 대한 복종은 그 어느 것보다 앞서는 것이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작전에서 우리는 전우들의 희생은 최소화 하면서 적군의 무기류를 무려 1,247정을 노획하여 월남전 사상 최대의 무기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나는 을지 무공훈장을 신청하도록 지시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훈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오직 생존뿐이었기 때문에 훈장대신 귀국을 더 고대했다.

살아서 고국 땅을 밟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돌아 오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요즘 세대에서는 이같은 이야기가 생소하게 들릴 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뉴스, 신문, 각종 정보 매체를 통해 전쟁과 그로 인한 파괴...

인간이 인간에게, 국가가 국가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장면을 매 순간 접하며 보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천안함 46용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조국사랑과 명령 수호로 그들은 소중한 목숨을 국가에 바친 것이 그 이유이다.

전쟁의 피해는 비단 그 세대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는 대를 물려 후손에게까지 고통과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상처를 고스란히 되물려 주고 있다.

수 많은 후유증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나도 물론 가족 전체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게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이 전쟁의 상처이다.

이와 같이 전쟁의 피해는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지속되어 승전국과 패전국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 사람으로 이번 천안함 사건은 제 아픈 기억을 되살린는 한편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사는 일에 대한 경건하고도 엄숙한 생각들을 갖게 한다.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천안함, (고)한준호 준위, 링스헬기, 금양 98호 사건 등 이러한 문제들은 나와 우리 자식들이 살고 있는 우리 조국의 문제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피로 지킨 우리나라의 평화는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바로 우리 자신이 사건의 당사자란 생각으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고 희생자들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온 마음으로 그들을 가슴으로
깊이 안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 아들, 형.. 이니까. 우리는 다 같이 국가 안보정신을 다지고 온 국민이 화합 단결하여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다 같이 뭉쳐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이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분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고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현재를 물려 주는 유산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정신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성숙한 국민이 되자.

나를 둘러싼 환경과 타인을 바라보는 눈 또한 우리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라는 뿌리에서 나아가 푸르른 잎사귀와 넓은 가지를 뻗어 한 그루 풍성한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운명공동체요, 한 몸이라는 소중한 인식을 가지고 실천할 때 만이 우리나라가 잘 살고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천안함 사고는 나에게 지난 베트남전의 기억을 되살려 오랫동안 마음이 무겁고 아픈 사건이었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 할 수 없는 삶의 교훈을 던져 주었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라는 의식.

내가 남이 아니라 타인과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좀 더 발전적이고 건강한 터전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명확한 사실 말이다.

다시 한번 이번 천안함 사태를 보고 다시한번 국가안보를 생각해 보아야 될 듯 싶다.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전남타임스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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