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람·혼(魂)과 걸으며 함께 걷는 나를 만나는 제주여행&4.3사건-일제침탈-6.25전쟁 비극의 역사현장에서 반성과 치유의 길 모색

나주시가 관광객 200만 시대를 앞두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나주를 찾은 관광객은 약 16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보다 30% 증가한 수치로, 관광객 100만 명을 유치했던 지난 2015년 이후 단 2년 만에 160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특히, 올해는 전라도 정명 천 년을 맞아 전라도 3개 시도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각종 기념사업의 중심에 나주가 우뚝 서 있는 이유만으로도 관광객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이런 가운데 나주시는 올해 관광객 2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국비 200억원을 들여 관광·생태자원을 활용한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설을 잘 꾸며놓는다고 관광객이 늘어날 것인가. 경우에 따라서는 감추고 싶었던 옛 역사와 사건, 사고 등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이에 전남타임스는 역사적 상처와 아픔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다크투어리즘’ 현장을 돌아보고 우리지역의 흑역사와 이를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관광의 별 제주의 한(恨)과 혼(魂)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지사장 나은미)가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아 전국의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억의 복원 70년 제주 4·3 현장연수’ 이틀째 일정이 시작됐다.

해방의 기쁨에 들떠있던 이 작은 섬에서 무려 7년에 걸쳐 2만5천~3만 명의 민간인이 무고하게 숨져 간 그 4·3사건, 일행은 첫날 4.3평화기념관 강의실에서 제주발전연구원 문순덕 책임연구원으로부터 ‘제주 4.3과 다크투어리즘’에 대한 개괄적인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최근 관광, 역사, 사회학계에서 주목받는 개념이다. 과거 국가 권력이 저지른 폭력의 기억, 현장을 돌이켜보면서 반성과 깨달음을 얻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제주의 경우 4.3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진지동굴, 알뜨르비행장 등 다크 투어리즘으로 활용할 다양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민들이 겪었던 처참하고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4.3평화공원에 제주도가 있다
제주 4.3평화공원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국가에서 조성한 평화 인권기념공원이다.

2008년 3월 문을 연 4.3평화공원은 제주4.3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의 하나로 이루어졌다.

대게의 공원과 기념관 등이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적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면 이 곳 4.3평화공원은 평화적이지 못했던 시대의 가장 처절했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죽음, 죽음의 공포, 죽음의 공포 이상의 기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4.3을 겪은 생존자 세대가 점차 사라지고 4.3에 대한 기억이 점차 박제화 되는 흐름에 맞서 기억을 남겨서 보존하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의 ‘투쟁’인 셈이다.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과 4.3길
널찍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지형을 뜻하는 ‘너븐숭이’, 제주4.3사건 당시 하루에 가장 많은 희생이 있었던 북촌리에 세워진 기념관을 찾았다.

1949년 1월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이 마을에서 4백여명이 한꺼번에 희생되었다. 북촌리 주민학살사건은 북촌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사람들의 터전인 들과 밭에서 자행되었다. 활동할 수 있는 젊은 남자, 어머니를 따라 나선 어린아이와 집에 있다 불에 타 죽은 노인들까지...

당시 열한 살짜리 꼬맹이였던 고완순(80·여) 북촌리 노인회장은 “좌익도 우익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마구잡이로 죽여 버리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상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사건으로 북촌에는 남자들이 찾아보기 어려워 ‘무남촌’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해마다 섣달 열 여드렛날이 되면 이 집 저 집에서 향냄새가 진동을 하고 곡소리가 합창을 하듯 마을에 울려 퍼졌다고도 했다.

이어서 이상언(55)전 4.3유족청년회장의 안내로 너븐숭이 4.3유적지를 탐방했다. 4.3 당시 희생터와 은신처 등으로 이어지는 북촌마을 길을 걸으며 무고하게 희생된 북촌 주민들의 아픔을 떠올렸다.

기념관 바로 앞에는 당시 희생된 아기무덤과 북촌리 학살사건을 다룬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 문학기념비, 443명의 희생자 이름을 새긴 위령비 등이 들어서 있다.

마을 군데군데 남아있는 옴팡밭(오목하게 쏙 들어간 있는 밭), 4.3사건 당시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되고 있는 1949년 1월 17일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했다. 가운데 있는 봉분도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4·3해설사 등 전문 인력을 고정 배치하여 전시관 및 북촌리의 4.3유적 현장을 안내 설명하여 북촌리의 4.3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며 상극의 과거사를 상생의 미래로 연결하는 북촌리 너븐숭이4.3기념관은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됨으로써 제주4.3의 상징인 북촌마을이 세계평화의 섬의 의미를 각인시키는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다.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섯알오름(서러워서 못살겠다는 제주 방언) 학살터는 일본군이 1944년 말부터 대정읍 ‘알뜨르’ 지역을 군사요새화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폭탄창고 터이다.

당시 일본군은 야트막한 섯알오름의 내부를 파내어 폭탄 창고 터로 사용했으며, 폭탄 창고 터가 있는 오름의 정상부에는 두 개의 고각포진지를 구축했다.

이 폭탄 창고 터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제주도에 진주한 미군에 의해 폭파됐다. 이때 오름의 절반이 함몰되면서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는데 이 구덩이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학살이 시간 간격을 두며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암매장 구덩이도 두 개가 만들어졌다.

불과 70년 전의 실화인데도 아주 먼 과거의 얘기인 것처럼 무덤덤하게 듣고 있는 기자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학살터의 보존을 위해 2002년 백조일손유족회 중심으로 ‘학살터 매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매입을 추진했고, 2005년 제주 4·3연구소의 ‘4·3 유적 종합정비 및 유해발굴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제주도 주관으로 학살터 정비사업이 이루어졌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정비사업에 의해 부지매입과 함께 위령제단(추모비·상석·향로·병풍석·내력비)이 설치되고, 추모의 길 조성, 학살터 재현시설 완공, 주차장·추모정 준공 등이 이루어졌다.

일제가 남긴 뼈아픈 기억의 현장도
알뜨르비행장의 경우, 제주도립미술관의 국제미술행사 ‘제주비엔날레’ 무대로 활용되면서 올해 포함 3년간 사용하기로 국방부와 합의해 향후 가능성을 열어놨다.

현 제주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남겨놓은 군사시설과 제주 4·3사건의 현장(민간인 학살 장소)등이 있어 후손들에게 평화와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 있고 역사적 교훈인지 알려주는 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아픈 경험과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기보다는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관광상품화 하고 있는 것.

제주도는 올해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제주 다크투어리즘’을 통해 ‘제주4.3’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기영의 ‘순이삼촌’ 무대인 제주 북촌사건의 장소, 북촌마을은 실제 35km의 4.3길을 조성해 동네곳곳에 존재하는 4.3사건의 흔적들을 관광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북촌 너븐숭이 4.3 기념관부터 시작하는 ‘제주 조천 북촌마을 4.3길’은 4.3사건의 마을주민 희생터인 당팟을 지나 4.3은신처였던 마당궤, 4.3역사현장인 꿩 동산, 학살 현장이었던 낸시빌레, 북촌포구, 북촌초등학교, 옴당팟 등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둘러보는 두 시간 남짓 코스에는 4.3사건의 생생한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제주에서 배우는 다크투어리즘
‘21세기 다크투어리즘(도서출판 누리)’을 펴낸 김석윤 관광학 박사는 “다크투어리즘은 어떤 형태로든 콘텐츠화 하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콘텐츠에 대해 잘못 오해하면 조형물, 기념비 같은 시설물만 세우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사실을 표시하기 위한 이정표 역할일 뿐”이라고 콘텐츠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적기업으로 최저 생계를 보장하며 원도심 투어, 해설사 양성 등을 진행하는 광주5.18민주화운동 사례를 들었다.

김 박사는 “광주의 경우, 5.18과 관련한 공간과 시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마지막에 연극 공연을 관람한다. 이렇게 다크투어리즘에 콘텐츠를 도입하면 공감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견해를 성찰의 과정에서 모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 거리를 묶어내는 스토리텔링 작업, 역사를 바탕으로 2차·3차로 가공하는 콘텐츠를 다크 투어리즘의 필수 요소로 강조했다.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각자의 아픈 역사지만, 하나로 묶어낼 경우 역사의 흐름이란 힘을 가지는 만큼 향후 제주 다크투어리즘 발전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다크투어리즘’은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활용해 민족적 자존감 회복 및 고통의 장소도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인지시키며 지역민 또는 지역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제주 4.3의 전국화
오랜 시간 숨 죽여 있던 제주4.3을 수면 위로 꺼낸 건 1979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회화, 음악, 연극, 영상 같은 다양한 4.3예술이 등장했지만, 아직도 4.3은 사건, 사태, 항쟁, 혁명 등 여러 이름으로 제각각 불리고 있다.

이번 현장연수에서 만난 제주사람들은 1980년 광주가 5.18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되었듯이 제주의 4.3 역시 추가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야 한다는 소망을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4.3을 모르는 육지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4.3다크 투어리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같은 노력을 뒷받침하듯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현재 4.3평화공원 방문객은 모두 14만8천여 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방문객 8만9천명과 비교해 82.5%(약 7만 명)나 급증한 수치라고 한다. 제주4.3과 다크 투어리즘을 계기로 나주의 양민학살사건과 근.현대사의 뼈저린 흑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음을 예고하고 있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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