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 10년, 검은 기름때 씻고 건강한 바다생태의 보고(寶庫)로 ‘우뚝’

나주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태안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 대전사무소가 주관한 지역재발견 시리즈 ‘서해안 해양실크로드의 맛과 멋’ 현장연수에 참가하는 길은 마치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듯 긴장됐다. 서해안의 맛과 멋을 주제로 한 연수라 하니 제주도에서 강원도 평창까지, 전국에서 모인 지역신문기자들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연수가 시작되면서 기자들을 놀라게 한 건 다른 데 있었다. 지난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충남 태안군과 서천군 일대에서 진행된 또 다른 ‘다크투어리즘’ 현장, 역사적 상처와 아픔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다크투어리즘’ 현장을 돌아보고 우리지역의 흑역사와 이를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바람이 전하는 모래언덕’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두웅습지, 유류피해극복기념관까지

서해안 해양실크로드 태안반도를 향하여

전국 각지에서 20명 남짓한 지역신문기자들이 대전복합터미널 앞에 집결했다.

다들 새벽밥을 먹었거나 빈속으로 집을 나선 터라 한국언론진흥재단 대전사무소 김성수 차장으로부터 건네받은 빵과 우유가 반갑기만 했다.

10시를 약간 넘긴 시각에 대전을 출발한 미니버스는 두 시간여 만에 태안에 도착, 태안특산물전통시장에서 흔히 ‘아나고’로 불리는 붕장어탕으로 태안의 첫 맛을 느꼈다.

칼칼한 국물에 부드러운 장어살이 갖은 야채양념과 어울려 마치 푹 고아낸 곰탕에서 느낄 수 있는 보양식의 풍미를 느끼게 했다.

태안군문화관광해설사 정경자 씨에 따르면, 붕장어탕은 비타민A가 돼지고기의 160배나 될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고 하니 태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한 환대가 있을 수 없다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태안특산물전통시장은 언제, 어떤 형태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광해군 11년인 1619년 한여현 선생의 ‘호산록’에 태안읍의 장시 위치 그리고 청어를 구입하지 못해 한탄하는 내용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태안장시가 이보다 훨씬 전에 형성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10년 전 악몽에서 벗어나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은 신두리 해안사구로 향했다. 조마조마했다. 10년 전 새까만 원유를 뒤집어 쓴 바닷새가 날갯죽지를 퍼덕거리며 죽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세계3대 갯벌을 자랑하던 청정해역이 2007년 12월 7일 폭풍주의보 발효에도 무리하게 항해하던 삼성중공업 크레인선단이 정박하고 있던 허베이스피리트 호를 들이받으면서 천혜의 자연환경과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태안반도는 일순간에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시커먼 기름바다로 변해 한숨뿐이던 태안반도를 살리자고 전국에서 초등학생부터 파파노인들까지 달려들어 물에 뜬 기름을 걷어내고, 바위 틈새 틈새까지 닦아 냈었다. 그렇게 참여한 자원봉사자만도 공식집계로 123만 명이라 했다.

그로부터 10년이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바닷바람이 쌓은 모래언덕 신두리 해안사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대한민국에도 사막이 있다? 있다
…천연기념물 신두리 사구(砂丘, sand dune)

2001년도에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된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안사구는 해변을 따라 약 3.4km

에 걸쳐 있다.

폭은 약 500m에서 1.3km로 다양하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북쪽 지역 일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주민생태해설사 정명옥 씨의 설명을 들으며 데크로 만들어진 긴 탐방로를 걸었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풍경이 있었나 싶은 드넓은 모래사막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는 군데군데 연분홍 해당화가 모닥거려 피어있고, 쑥, 통보리사초, 순비기나무, 갯그령, 갯방풍, 갯메꽃 같은 염생식물들이 숭긋숭긋 자라나고 있어서 저 먼 중동의 사막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송송 파인 작은 분화구를 손으로 뚝 떠내니 명주잠자리 애벌레인 ‘개미귀신’이 놀라지도 않고 손바닥 위에서 꼼질거린다.

겉보기에는 모래벌판이지만 그 깊은 속에는 농사용 물을 대줄 정도로 물을 품고 있고, 여러 모양의 생명을 키워내고 있었던 것.

신두리 해안사구 가장 높은 구릉에 올라서니 저 멀리 태안바다에 유조선 한 척이 지나가고 있었다.

10년 전 악몽은 깨끗이 잊은 듯... 10년 전 바로 저 곳에서 검은 기름이 콸콸콸 뿜어져 나와 태안바다를 검게 뒤덮었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정명옥 해설사는 그런 일행을 두고 해안사구의 역할을 귀에 쏙쏙 집어넣어 주었다.

해안사구는 폭풍과 해일로부터 해안선과 농작물, 주택 등을 보호하고 바닷가 식수원인 지하수를 저장해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해안경관을 아름답게 만든다.

더구나 이곳 기반암이 오래된 선캄브리아기 서산층군 이화리층(주로 흑운모 편암이며 규암을 협재)이라는 것이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지금까지 봐온 다른 어느 바닷가 보다 넓고 독특한 지형과 함께 여러 동식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어 천연기념물로서 손색이 없는 색다른 관광지였다.

금개구리를 살린 두웅습지

신두리 사구를 나와서 한적한 오솔길을 20분 남짓 걸으니 산으로 둘러싸인 비탈에 작은 둠벙이 하나 나타났다.

신두리 사구가 조성되기 훨씬 전에 만들어졌다는 두웅습지다.

시골 어느 들판에나 있음직한 자그마한 둠벙처럼 보이는데 놀랍게도 7000년 전 해안습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 희귀성을 인정받아 여섯 번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두웅습지가 있던 곳은 원래 바닷가였는데, 해안쪽으로 새로운 사구가 생기면서 배후산지 골짜기 경계부분에 빗물 등이 고이면서 만들어졌다.

이곳에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가 살고 있는데 두웅습지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한 여성해설사가 금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개구리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음색을 가진 귀한 개구리였다.

하지만 움직임이 굼뜬데다 몸집도 5~6cm 밖에 되지 않아 황소개구리에게 잡아먹히기 일쑤여서 습지 주변에 따로 보호망을 치고 보호하고 있으며, 황소개구리는 어망을 쳐서 잡아내고 있다고 했다.

이 습지는 모래언덕 지하수와 연결돼 있어 아무리 가물어도 2~3cm의 수심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저습지가 뻘로 된 것과는 달리 밑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고, 주변 사구로부터 지하수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그리 넓지 않은 평범한 습지라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놀란 금개구리 숨어서 가슴 졸이는 일이 적을 테니까.

태안반도 어디에서도 10년 전 기름유출사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억마저 지울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유류피해극복기념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10년 전 검은 기름의 악몽에서 벗어나 다시 되살아난 태안반도의 자연환경과 다시 살아가기 위해 애써 온 주민들의 모습을 봐야만 했다.

사고 당시 최대의 피해지역이자 사고의 상징적인 장소가 된 만리포해수욕장에 자리 잡은 기념관에 들어서자 이종환 충남도 서해안유류사고지원과장이 일행을 맞아 손수 차를 내온다.

간단히 기념관에 대한 소개를 받은 뒤 해설사의 안내로 기념관을 돌아보며 태안의 아픔을 공유했다.

검은 재앙으로 물든 태안반도를 살린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숭고한 봉사의 전 과정이 담긴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이 사고 발생 10년 만인 지난해 9월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대통령을 수행해 유류피해 현장을 찾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그 의미를 더해주었다고 한다.

기름 때문에 파도가 쳐도 파도소리가 안 들리는 처절한 풍경, 기름의 검은 빛깔이 숨통을 옥죄일 때 태안반도를 살리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였다.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나서서 기름을 걷어내고, 바위를 닦고, 온몸에 기름이 묻어 날지 못하는 새를 씻기고 먹이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지금도 간간히 타르볼이 발견되고 있지만 새로 양식장도 생겨 거의 예전 모습을 찾기는 했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기념관은 둘러보는 내내 어민들의 타들어 가는 심정만큼이나 참담하고 “그걸 왜 못 막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들을 왜 못 살렸을까” 하는 세월호 사고가 겹쳐지면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는 이유는 그 아픔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간절한 몸부림이기도 한 것이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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