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10년도 전의 일이다. 2008년 9월 3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치러진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지역공로상을 수상한 부산MBC 박명종 TV제작국장이 이런 수상소감을 밝혔다. 

“세상 일이 자꾸 변하고 또 변합니다만 정권이 방송을 탐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어요. 사냥하는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다닙니다. 
달릴 주(走)자에 개 구(狗)자 써서 주구(走狗)라고 합니다만. 권력의 주구가 돼가지고 지금도 방송을 어떻게 하려는 그런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런 인간들이 없고 방송인들이 자유롭게 방송을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속히 왔으면 합니다.” 

생방송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그 말이 어찌나 통쾌했던지 두고두고 곱씹으며 나주라는 세상도 ‘기레기’가 만드는 ‘가짜뉴스’가 아닌 ‘기자’가 만드는 ‘진짜신문’이 대접받는 세상을 꿈꿔 오고 있다.

그렇다.

주구(走狗), 한자의 의미로는 ‘달리기를 잘하는 개’라는 뜻으로 사냥개를 이르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남의 시킴을 받고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따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 마디로 ‘일본놈의 앞잡이’ 짓을 하는 사람을 두고 ‘주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나주라는 세상에 온통 주구들이 판치고 있다. 권력자의 식탁 밑에 고개 쳐들고 앉아서 떨어지는 고기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는 모양새에 주구라는 말도 아까울 지경이다.

요즘 주구들은 행정에서 남발하는 용역과 지원금과 이름만 붙이면 몇 억씩 쏟아 붓는 무슨무슨 센터니, 단체니 하는 기관의 연구원 자리 등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한 때 청와대에는 ‘십상시’, 나주에는 ‘칠상시’가 있다는 말이 파다했다. 

역사는 돌고 돌아 어느 시점,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다시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마련이다.

과거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 십상시’는 당시 정부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 아무개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3명의 비서를 포함한 10명의 인사가 외부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정보를 교류하고 청와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참으로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사건”이라고까지 하면서 “문건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찌라시”라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청와대 십상시 논란을 보면서 어느 먼 나라 얘기처럼 들었던 일들이, 나주에도 십상시, 좀 더 정확하게는 ‘칠상시’가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권력의 측근에서 자기가 행사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행세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몇몇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것일 때 흔히 ‘십상시의 농단’이라는 비유를 하게 된다.

오래전 읽었던 삼국지에 등장하던 십상시(十常侍)는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156~189) 때 조정을 장악했던 환관(宦官) 10여 명을 일컫는 말이다. 

후한의 영제는 십상시에 휘둘려 나랏일을 뒷전에 둔 채 거친 행동을 일삼아 제국을 쇠퇴시켜 결국 망하게 한 인물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십상시의 농단(壟斷)에 한 제국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농단, ‘깎아 세운 듯 높은 언덕’을 일컫는다. 

그런데 어떤 이익이나 권력 등을 부당하게 또는 과도하게 독차지하거나 휘두르는 상황을 가리킬 때 이 ‘농단’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옛날 한 상인이 시장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높은 언덕(농단)’에 장사 터를 잡고 그곳에서 시장에 어떤 물건이 많이 나오고 적게 나왔는지를 조사했다. 

그는 시장상황을 잘 살펴 시장에 부족한 물건을 미리 사들였다가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했다. 

그는 언제나 ‘농단’을 독차지하고 물건을 팔아 큰 이득을 독점했다. 그때부터 ‘농단’에 거래를 좌지우지하여 이익을 독차지한다는 뜻이 생겼다. 

그런데 요즘은 정치적으로 농단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쓰게 된다. 정보가 집결하는 권력의 상층부와 가까이 지내면서 이익을 향배를 좌지우지 하는 십상시들의 농단과 그리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 말이다.

나주에도 십상시에 버금가는 칠상시가 있다는 말은 민선 6기 강인규 시장이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말이다. 

공무원이면서 정치권에 줄을 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공무원들이 이후 다른 공무원들 위에 군림하며 자신이 발휘할 깜냥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함을 일컫는다.

이들은 민원인은 물론 언론인도 가려서 상대하고, 소위 단체장과의 친(親) 불친(不親) 관계를 가려 태도를 달리하기 일쑤다. 

글쎄다, 3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얻은 후천적 감각이라고나 할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바로 십상시의 냄새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 직업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최근 나주시 내부의 칠상시가 새끼를 쳐서 속속 부화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궐 밖에 똬리를 튼 세력과 궐 안에 둥지를 틀고 앉아있는 세력이 다른 사람들, 정확하게는 주구들의 손을 빌려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SNS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그 중에는 노회한 정치인들을 동원해 시정에 불편(?)을 끼치는 젊은 정치인을 깎아 내리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통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주구들과 십상시의 문제를 풀 수 있는가? 

그것은 공무원조직 내부의 결속과 자정 노력에 달려있다. 

공무원 한 사람의 힘으로는 십상시의 권세를 뛰어넘을 수 없겠지만 공무원 조직의 결속과 스스로의 정당성 확보를 통해 그들 스스로 권리를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정의파들의 분발이 요구되고 있다. 

주구들은 얼굴에 가죽가면을 쓰고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든다. 더러는 떼로 몰려들어 물고 늘어지는 전법을 쓰고 있다.

그럴때 그 무리에서 누군가 “쭁 가자!” 자기 개 한 마리를 불러 세워 돌아선다면 그 것에서부터 나주는 변화의 조짐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외롭지만 의롭게 투쟁하고 있는 나주의 ‘쌈닭’들에게 드리는 격려의 고언이다.

전남타임스 후원

저작권자 © 전남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