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 발자취 따라 옛 옥천읍 구석구석 골목으로 통하는 ‘詩끌벅적 문학축제’ & 이벤트행사 거품 줄여 군더더기 없이 운영, 2년 연속 충청북도 최우수축제로 ‘우뚝’

지역마다 축제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요즘, 모처럼 제대로 된 축제를 만끽했다. 전국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세종·대전 총괄지사가 주관한 ‘봄날의 문학산책-제32회 지용제’ 현장연수에서다. 5월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 동안 펼쳐진 축제 중 10일과 11일 그 가운데도막을 살펴 본 지용제는 ‘詩끌벅적 문학축제’를 기치로 내세웠지만 결코 시끌벅적하거나 요란스럽지 않았다. 전국을 돌며 몇몇 지역인사들과 손잡고 지역축제라는 명목으로 돈벌이를 하는 뜨내기 기획자들의 이벤트축제가 아닌 지역민들이 자부심과 애향심을 담아 추진하는 지역축제의 전형을 엿볼 수 있었다. 나주읍성권을 무대로 올해 처음 닻을 올린 ‘천년나무목읍성문화축제’과 비교해 볼 때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자산으로 열리는 문화축제가 어떤 것인지 그 전형을 찾았다고 하면 너무 성급한 판단일까?  한 시인의 ‘향수(鄕愁)’를 자산으로 삼아 32년째 운영해 오고 있는 축제, 충북 옥천군의 ‘지용제’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세종·대전총괄지사가 ‘지역의 재발견’ 시리즈로 기획한 ‘봄날의 문학산책, 충북 옥천군 지용제 현장연수’. 처음 초대장을 받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경험해보지 못한 축제에 대한 생경함이 망설임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주에서 펼쳐지는 ‘마한문화축제’와 ‘영산포홍어축제’, 그리고 올해 첫발을 내딛은 ‘천년나주목읍성문화축제’ 등 지역 안팎에서 펼쳐지는 지역축제들을 제대로 평가해 보기위해서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가 장려하는 문화축제이면서, 충청북도가 2년 연속 최우수축제로 선정한 이 낯선 도시의 축제를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새벽기차에 몸을 실었다.

연수에 참가한 언론사는 전남타임스를 비롯, 강원도민일보, 평택시사신문, 중도일보, 한산신문 등 전국 8도의 기자 14명. 서대전역에 집결한 뒤 언론재단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옥천을 향해 가는 길은 녹음이 우거진 산을 끼고 활짝 꽃을 피운 이팝나무 가로수가 반겨주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 옥천 구읍(舊邑)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노래로 즐겨 불렀던 정지용(1902∼1950)의 시 <향수>의 배경이 옥천이라는 사실은 이번 연수를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주변엔 논밭이 펼쳐져 있고, 일제 때 지었다는 학교 건물과 7080년대에 멈춰버린 듯한 거리풍경, 여기에 한껏 멋을 부린 카페들까지, 어림잡아 100여 년 옥천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옥천구읍에 들어서자 거리는 ‘詩끌벅적 문학축제’로 시끌벅적했다.

과거 옥천의 생활경제 중심지였던 옥천읍 죽향1리와 3리, 상계리, 하계리, 문정1리, 교동리 등 5개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 따로 묶여있지는 않지만 ‘옥천구읍’이라 불리고 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 옆 공터에 마련된 무대는 소박했고, 플라스틱 의자 대신 덕석을 깔아 관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아직 정지용 시인의 초가집 생가 입구에는 물레방아가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집 앞 마당에는 정지용 시인의 생전 모습을 반추해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생가 옆 정지용문학관 광장에는 검정 두루마기를 걸친 선생의 동상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문학관에 들어서자 입구에서 또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진 정지용 시인이 벤치에 앉아 길손에게 옆자리에 앉아 쉬어갈 것을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리 오래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전시실 안에 들어서자 정지용 시인의 삶과 작품세계가 한 눈에 들어왔다. 연도별로 짤막하게 정리된 지용연보에는 안 나와 있지만 김옥희 옥천군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그가 열두 살 나이에 얼굴 한 번 못 본 동갑내기 영동처녀와 혼인을 했다는 1913년도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스물아홉 1930년도에 ‘시문학’ 동인으로 함께 활동하며 찍은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시인의 모습도 반갑고 지용의 삶과 문학, 지용문학지도, 시·산문집 초간본,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법을 활용한 즉석 문학체험도 마련돼 있었다. 음악과 영상이 함께한 시낭송, 뮤직비디오, 시어검색 등은 정지용을 몸과 마음으로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지용의 거리에서 ‘골목으로 通하다’
이제 지용을 만났으니 그가 어린 시절 뛰어놀았을 거리로 나가보자.

이번 축제의 전제는 ‘詩끌벅적 문학축제’, 그리고 부제는 ‘골목으로 通하다’였다. 주제에 맞게 정지용 시인의 생가 주변 마을 골목골목 전체가 축제의 장이 됐다. 관광객들은 골목길 사이를 거닐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축제를 즐겼다. 

이때 어디선가 기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고, 새빨간 기관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 기관차는 승객들을 태우고 골목 사이사이로 힘차게 달린다.

마을길을 걷다가 만나는 상점의 간판과 지붕장식, 담장들을 보면서 마을전체가 문학관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상점들은 정지용 시에 쓰인 시어나 시 제목을 이용해 간판을 대신했다.

실개천이 흐르는 마을 앞으로 잡초가 무성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시인 정지용과동행하는 느낌이었다.  축제장 주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요란한 전자반주음과 동네가수들의 노래소리가 한낮의 시낭송 배경음악으로 이렇게 어울릴 줄이야.

동네를 돌다보니 육영수 여사 생가, 옥천향교, 옥천사마소 등 이 마을의 전통을 알리는 팻말들이 정지용의 시에서처럼 100여 년의 변천사를 품고 풍경화처럼 옛이야기를 펼쳐놓고 있었다.?

“다양하고 독창적인 스토리로 꾸며가는 명품 문학축제”
…김승룡 옥천문화원장?

연수 첫 날 첫 일정으로 축제를 주관하는 김승룡 옥천문화원장<사진>을 만나 축제의 의의와 준비과정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지용제’는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이자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시인으로 꼽히는 정 시인을 추모하고, 그의 시문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정지용 시인의 음력 생일인 5월 15일을 전후로 펼쳐진다.

지용제의 출발점은 축제가 아닌 정지용 시인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추모하는 행사로 시작됐다.

시인을 좋아하는 문인들이 ‘지용회’라는 단체를 구성, 1988년 5월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번째 지용제를 열게 된다. 

하지만 당시 옥천문화원장을 맡고 있던 박효근 전 원장은 지용제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옥천에서 열려야 한다는 다짐으로 행사를 추진, 6월 25일 옥천에서 또다시 지용제가 개최됐다. 

그 후 지용제는 32년째 성공적인 문학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김승룡 옥천문화원장은 “지용제는 옥천문화원에서 기획, 문화원 산하단체들이 직접 축제를 끌어간다. 

예산은 홍보비 포함 9억, 2년 연속 충청북도 최우수 축제에 선정되면서 도비 지원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시대가 변하면서 지용제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지용제에 테마성을 부여해야겠다고 생각, 원래 시내 운동장에서 열렸었던 지용제를 지용의 생가가 있는 주변으로 장소를 옮겨왔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에는 주민들의 이해도가 높지 않다보니 천천히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주민들이 축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축제를 통한 지역발전, 주민소득과 연계되는 문화산업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이제는 주민들도 축제를 함께하면서 많이 배우고 계신다. 

주민들이 마음을 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부터는 ‘골목으로 통하다’는 주제로 축제를 골목 안으로 들고 왔다.

옥천의 역사는 축제가 열리는 구읍에 다 있다.

골목마다 스토리를 만들어서 구읍의 옛날이야기로 관광객들이 힐링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골목 퍼포먼스, 골목 투어 등 많은 체험들을 준비했다. 특히 골목길 투어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지역 내에서 쓸 수 있는 지용화폐로 바꿔드려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축제 소비형태를 지역 상권과 연계해 올해는 더 많은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32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해온 축제경험, 그로인해 자칫 정체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반성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주목받는 문학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지용 문학축제의 고유성과 대중성을 가미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전문가들과 워크샵을 진행하는 등의 노력이 우리 축제의 성공비법”이라고 평했다.

‘의미’와 ‘재미’를 다 잡은 명품축제
올해로 32회째를 맞는 지용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장려하는 축제, 충청북도 최우수축제로 선정, 국내 대표 문학축제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명품 문학축제답게 다양한 문학 행사를 마련하고, 많은 시인과 평론가를 축제에 초대했다. 

특히 중국, 베트남 등 5개국 20여 명의 문인이 참여한 ‘제2회 동북아 국제문학포럼’에 앞서 배우 김응수 씨가 깜짝 출연해 즉석에서 ‘향수’와 ‘밥값’을 낭송했다. 

또 지난해 중국 항저우 지용제 시낭송대회 수상자인 진흔우 학생의 시낭송을 듣게 된 것도 주최측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1900년대 개화기 의상을 입고 차 없는 거리에서 즐기는 새빨간 기관차와 인력거 타기도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 행사들은 올해 처음 마련한 행사다. 

축제장 안의 옥주사마소, 정지용문학관 등을 둘러보는 골목길 투어도 다양한 매력을 선사했다.시가 적혀 있는 오자미를 던져 박을 터트리는 ‘시한(詩限)폭탄’과 시가 새겨진 공을 바구니에 넣어 시 구절을 맞추는 ‘시(詩)공초월’ 등 독특한 아이템을 가지고 진행한 행사도 눈에 띄었다.

딱딱할 수 있는 시문학을 게임으로 재미있게 풀어내며 방문객의 만족도를 높였던 점도 돋보였다. 

차 없는 거리의 시끌벅적 향수마당에서는 DJ가 직접 들려주는 노래와 함께 옛 주막 음식을 선보였다.

거리 곳곳에서 추억의 거리 마술사 공연과 춤추는 정지용 등의 퍼포먼스가 축제 기간 내내 펼쳐졌다.

시 노래 전문 가수인 백자, 박경하 등이 출연한 시 노래 콘서트는 시와 노래를 합일한 또 하나의 매력을 발산하며 축제의 질을 높인 행사로 꼽힌다.

이 밖에도 형형색색 화려한 조명으로 수놓은 지용 생가 옆 실개천과 종이배 띄우기 체험행사,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 푸드 트럭 등도 방문객들에게 오감 만족의 특별한 추억거리를 선사했다.

다양하고 독창적인 문학 콘텐츠에 재미와 감동까지 더 한 ‘지용제’는 인구 5만2천의 작은 도시 옥천군을 품격있는 도시로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동네사람들끼리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다 끝나는 흥청망청 축제가 아니라 지역의 자산을 널리 알리고 주민들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축제, 그 것이 축제인 것이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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