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포장 김영기 3·1운동 주도, 대통령표창 박기옥·이창신 광주학생운동 도화선

이창신 선생 독립유공자 맞지만 학적부 확인 안 돼 유족 전수 번복 '분통'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나주 출신 김영기·박기옥·이창신 선생이 뒤늦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광주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나주 봉황면 출신 김영기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기옥 선생과 이창신 선생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49명(독립장 1, 애국장 8, 애족장 40), 건국포장 28명, 대통령표창 101명으로, 이번 포상을 포함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사람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만1천14명, 건국포장 1천308명, 대통령표창 3천367명 등 총 1만5천689명(여성 444명)에 이른다.

건국포장을 받은 김영기 선생은 광주숭일학교 재학시절 독립선언서 등을 배포하다 체포돼 징역 6월형을 받았다.

선생은 1919년 고종황제의 국장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한 하산 김철(나주 출신)선생 등이 3월 5일 광주로 돌아와 만세운동의 광경과 시위 정황을 청년·지역 유지들에게 전파해 시위가 일어났다.

김영기 선생을 비롯한 광주와 전남 출신 19명이 3·1운동 100년 만에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뤄진 것은 경남 하동군의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정부포상과 관련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은 지난 2009년 국가기록원에서 발굴·서훈 신청한 광주3·1만세운동 참여자 19명이 광복절 정부포상자에 포함 됐다고 밝혔다.

정 소장이 서훈 신청한 광주 3·1독립운동가는 2009년부터 2019년 3월까지 20명이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또 이번에 19명의 독립운동가가 포상함으로써 정 소장이 발굴한 광주3·1만세운동 독립유공자는 39명으로 늘어났다.

▲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을 받은 박기옥(원 안)과 이광춘(사진출처 보훈처 제공)

대통령표장을 받은 박기옥(1913~1947)선생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들에게 희롱을 당해 전 민족적 항쟁으로 번진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듬해 1월 시험거부 백지동맹 등 학내 항일시위에 참여했다가 퇴학을 당했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포상기준 개선에 따라 학적부 등에서 퇴학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이루어졌다.  선생이 희롱을 당한데 격분하여 일본인 학생들을 응징한 사촌동생 박준채 선생은 1990년도에 애족장을, 백지동맹 동지 이광춘 선생은 1996년도에 건국포장을 받았다.

▲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을 받은 이창신 선생(사진출처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홈페이지)

역시 대통령표창이 수여된 이창신(1914~1949)선생은 나주농업보습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27일 나주학생만세시위를 주도하다 경찰에 붙잡혔으나 다행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2월 독자적으로 만세시위를 추진하다 또 경찰에 붙잡혔고, 결국 학교로부터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선생은 같은 해 3월 졸업 예정이었으나 무기정학 처분으로 결국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사실상 퇴학처분을 받은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아 퇴학·제적 처분까지 독립유공자 범위를 넓히며 이 선생은 독립유공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경사에 찬물을 끼얹은 건 국가보훈처였다. 국가보훈처는 선생의 장남인 이명한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장에게 선생의 표창 소식을 전한지 하룻만에 다시 공문을 보내 이창신 선생과 이명한 관장의 유족 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포상 전수가 어렵다고 알렸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이창신 선생과 이명한 관장의 아버지인 이창신 선생이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족들이 학생제적부 등 이창신 선생의 인적사항이 확인되는 객관적인 자료를 보완하면, 이창신 선생의 본적이 있는 자료와 이명한 선생의 본적을 비교해보겠다는 게 보훈처의 설명이다.

하지만 당시 나주농업보습학교가 이창신 선생을 퇴학조치하며 학적부에서 기록까지 없앤 탓에 증명할 길이 막힌 유족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족보와 이창신 선생 묘비에 나온 유족명단은 나주공립보통학교(현 나주초등학교) 학적부 등 이창신 선생과 이명한 선생의 부자(父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자료가 있음에도, 보훈처는 90년 전 나주농업보습학교 학적부만 인정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국가보훈처측은 “학생운동에 참여한 다른 독립유공자들은 대부분 학적부가 남아 있는 상황으로, 이창신 선생의 유족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자료를 추가 발굴하고 있으니 확인이 되면 훈장을 전수할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창신 지사의 대통령 표창은 유족 대신 보훈처가 보관하다 여론의 뭇매에 못이겨 8월 22일 광주지방보훈청장이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아 이명한 관장에게 대통령 표창을 대신 전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전라도 출신 유공자는 2천107명. 이 가운데 후손이 확인되지 않은 무후선열은 23%인 493명에 이른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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