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1980년 ‘제3의 물결’로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측한지 불과 몇 년 새 지구는 말 그대로 지구촌이 돼, 한 마을개념이 되어버렸다.

세계 각국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 간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이제는 울타리를 치고 그 울타리 속에서 우리들만의 세상을 꾸려가는 사회는 도태되기 십상이다.

세상은 이제 분(分)보다는 초(初)개념이다.

세상은 더욱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해 갈 것이며 사람들의 의식 또한 세분화되어 더욱 다양성을 띄게 될 것은 물론이다.

모든 세상과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해 가는데, 이에 발맞추지 못하는 지역은 희망을 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제는 지역에서도 강한 지역성의 표출은 오히려 지역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역사의식을 갖고 산다는 것은 좋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현실을 잡아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식은 다양한 사상과 사고 속에서 변화해 가는 나를 한쪽 길로 이끄는 중심점 역할만 하도록 해야 된다.

역사 속에서 “우리지역이 이렇게 했으니 지금도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촌놈들이나 하는 짓인 것이다.

세상은 넓고, 변화무쌍한데, 한쪽 구석진 틈 속에서 자신들만이 누리는 문화가 최고라며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들이다.

지금은 역사 속에서 우리가 보아왔던 그 시대상황과 똑 같지 않다. 이제는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그 문제를 푸는 방법도 다양하게 제시돼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문제를 풀기위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데 많이 고민하고, 선택된 방법을 통해 마음 편히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이전에는 결과가 중시됐지만 이제는 과정이 중시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리더십도 이제 “무조건 나를 따르라”며 권력을 집중하기 보다는 권력을 나누며 그에 따른 ‘책임감’을 중히 여기게끔 유도해 가는 지도자를 요즘 시대는 더욱 필요로 하고 있지 않던가?

물론, 이처럼 선진의식을 가진 지도자는 ‘책임의식’ 또한 남다를 것은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도자의 그 ‘책임의식’은 신뢰 있는 조직사회를 만들고, 더욱 신중한 일처리로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다원화된 사회를 이끄는데 있어서 가장 중시해야 될 덕목이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책임감’은 곧 ‘제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책임감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제 위치에서 맡은 바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간다는 것은 많은 톱니바퀴가 아무런 고장 없이 서로 온전히 맞물려 돌아갈 수 있게끔 하는 근원이다.

하지만 우리지역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려고만 하고 있다.

최근 나주지역의 아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나주시장의 업무정지 사태’와 ‘마을택시사업’ 이 그렇다.

책임을 중히 여기고 제자리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제 의무조차도 모르고 주민들을 현혹시키는데 급급하다보니 지역만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여기에 장단 맞추는 시민단체나 일부 언론들도 우습다.

주민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실증적인 자세로 문제가 어디서부터 도출돼 나오는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려는 자세가 시민이 가져야 될 자세이다.

※ 촌놈이란 표현은 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고 변화에 뒤떨어진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음.

 

전남타임스 후원

저작권자 © 전남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