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역경 이겨내고 ‘생활의 달인’으로 우뚝 서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봉사활동에도 달인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한 신문배달 36년, 자타공인 배달의 신(神)

▲ 어릴 적 불우했던 가정환경을 이겨내고 신문배달과 음식점 운영으로 생활인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정종섭 씨.

올해 전국을 뜨겁게 달군 인물이 있다.
자타공인 신문배달의 신(神) 정종섭(48·나주시 이창동)씨.

올해로 신문배달 경력 36년차인 정 씨는 지난 4월 1일 SBS ‘생활의 달인’ 664회에 출연해 신문배달의 묘기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던졌다 하면 백발백중, 오토바이를 타고 대문마다 정확히 신문을 넣어주는가 하면, 달인만의 노하우가 담긴 던지기 실력으로 2층 건물 배달도 척척 해보이면서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뿐만 아니라 남다른 삽지속도로 한 번,건물 반대편에서 신문을 던져 타이어 속에 투입시키는 달인 미션으로 또 한 번,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 달인의 면모로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인생 제1막…어두운 유·소년시절
 
영산포 대기동이 고향인 정 씨는 어릴 적 월남파병용사 출신이던 아버지가 술에 빠져 살며 가족들에게 폭력을 일삼는 것을 겪으며 살아왔다. 손 위 형이 가난과 아버지의 구타를 견디지 못해 가출한 뒤 집안형편을 돌보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신문배달을 시작했던 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낮에는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고 새벽에는 2시에 영산포역에 도착하는 신문을 받아 대기실에서 분류작업을 한 뒤 자전거로 60부를 돌렸다. 그렇게 해서 받은 월급이 1만원, 그렇게 집안의 가장역할을 해야 했다.

그 시절 유일하게 의지가 되어 준 사람은 영산감리교회 이원영 목사였다.
학교를 못 가고 있자 종섭의 손을 이끌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졸업만이라도 하게 해 달라며 초등학교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분이라고.
그렇게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친구들로부터 중학교 1학년 5반에 배정이 되었다는 얘기까지 전해들었으나 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되자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중학생이 된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을 뒤로 한 채 영산포역에서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는 형의 소개로 공장에 취직이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함께 일하는 형들은 왜 그렇게 밤낮없이 주먹질, 발길질을 해댔던지, 피멍이 가실 날 없었던 당시, 정 씨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 달 월급 11만원에서 2만원을 떼어 태권도장을 다니며 몸을 단련시켰다.

인생 제2막…결국은 부전자전인가?

그 뒤 경호업체에 취직이 되고 제법 잘 나가기 시작하자 경호회사를 차려 큰돈을 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술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정 씨는 어느덧 술에 쩔어 살면서 가족들에게 주먹질을 일삼던 아버지를 자신이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믿었던 친구가 회사자금을 빼돌려 베트남으로 도망을 가버리자 회사는 망하고, 살고 있던 집 월세를 빼서 고시원과 쪽방촌을 전전하다 그나마도 집세가 밀려 쫓겨나자 서울역과 영등포역을 전전하며 노숙자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던 자신을 고향사람이 알아보고 “너, 나주 용산 사는 종섭이 아니냐?” 물었지만 그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 뒤 도망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고향에서 어머니와 누나, 매형, 그리고 어린 조카들까지 자신을 찾아와 집으로 내려가자고 설득했다.

완강히 거부하는 그를 어머니는 알콜중독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시켰다. 번번이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결심을 결행하던 중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넋두리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면서 왜 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보고만 계시느냐?”고 원망의 말을 내뱉었다. 그 때 그에게 들려온 음성이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었는데 너는 왜 한 번도 나를 찾지 않느냐?”는 음성이었다고. 창틀에 묶었던 혁대를 풀고 내려오면서 정 씨는 고향으로 내려가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인생 제3막…고향에서 일구는 삶

무일푼으로 고향에 돌아 온 정 씨의 일과는 세상이 잠 든 자정 무렵부터 시작됐다. 신문유통원에 도착한 20여종의 신문을 구독자 별로 분류하고 전단지 등을 끼워 넣는 삽지작업을 한 뒤 자신의 배달구역인 나주읍성권과 영산포 전역 500여 가구에 신문을 모두 돌리고 나면 아침 6시가 된다.

그러면 다시 피자가게로 발길을 돌려 영업을 준비한다. 신문배달을 해 모은 돈으로 피자가게를 냈는데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오전부터 밀려드는 손님과 배달주문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피자가게가 제법 호황을 누리는가 싶던 즈음, 그는 또 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웃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이 되면서 밤낮 없는 감시와 조사가 이어지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지게 된 것.

당시 정 씨는 광주 남부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살인범은 광주 북부경찰서에서 검거가 되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백만을 강요했던 수사관들은 정 씨의 인생에 엄청난 상처를 안겨주고도 그 것으로 끝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자유의 몸이 된 정 씨는 자신이 인생의 고비를 겪을 때마다 예상치 못했던 보살핌이 있었으며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한다.

불 꺼진 항구도시와 같던 영산포에 피자집을 내 성공하자 정 씨는 사업장을 빛가람동으로 옮겨 자신만의 노하우가 담긴 생돈가스와 피자로 혁신도시 맛집으로 인정을 받게 되고 이어서 광주 남구 주월동에 체인1호점도 개업하게 되었다.

정 씨의 이같은 삶은 지난 7월 25일 CTS ‘내가 매일 기쁘게(PD 허명환, 진행 최선규·김지선)’에서 다시 한 번 전파를 탔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중학교 진학마저 못할 형편이 되자 아버지에 대한 아픔과 분노를 안고 상경을 한 뒤 공장 직공생활에서 시작해 경호업체를 운영하다 절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알콜중독에 노숙자생활까지 경험했던 파란만장한 정 씨의 인생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싶다는 제안도 들어오고 있다.

▲ 지난 4월 방영된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 신문배달의 묘기를 보여주고 있는 정 씨(사진은 방송화면 캡쳐)

인생 제4막…생활의 달인 그 후

정 씨의 포부는 체인사업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봉사활동과 이웃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많이 벌어야 많이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정 씨의 지론이 됐다.

한창 잘 나가던 식당이 불경기에 접어들 즈음, 우연히 정 씨의 신문배달 광경을 지켜 본 사람들의 제보로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한 가장의 파란만장했던 인생과 성실한 가장으로서 면모가 소개된 뒤 각종 방송과 신문에서 출연요청이 줄을 잇고 사연이 소개되면서 식당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었고, 갚아야 했던 빚을 모두 갚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더구나 방송에서 달인미션 현장으로 사용됐던 빈 상가건물이 방송 후 새 주인을 찾게 되었고, 정 씨는 올해 방송된 생활의 달인 중에서 최고의 달인을 뽑는 ‘올해의 달인’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정 씨는 앞으로 신학교에 입학해 신학과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것이 꿈이다.

영산포중앙교회 안수집사인 정 씨는 교회 내 봉사단체인 ‘그레이스봉사단’ 단장을 맡아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사)기운차림봉사단 전남지부(대표 김승철)와 함께 이창동에 거주하는 거동불편 노인과 장애인 10가구에 밑반찬 나눔 봉사활동을 펼친 데 이어 이달 27일에는 나주읍성권에 거주하는 불우이웃 5가구에 연탄과 밑반찬배달도 계획하고 있다.

정종섭 씨는 “기운차림봉사단은 지난 2009년 6월 부산에서 출범한 봉사단체로 전국 17개 지역에서 기운차림식당을 운영, 단돈 천 원을 받고 어려운 이웃의 점심 한 끼를 해결해주는 등 나눔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면서 “앞으로 사회적경제조직을 꾸려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공헌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생활의 달인 출연 후 CF에도 출연한 정 씨는 출연료 전액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쾌척한 가운데, 내년 4월 15일 SBS 선거개표방송에도 출연한다. 생활의 달인 버전 개표방송에서 후보별로 득표율을 알아보는 과정에 정 씨의 이모티콘이 표를 많이 배달하는 순으로 득표율이 나타나는 것.

정 씨는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위암초기 진단을 받고 오는 31일 수술을 앞두고 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 생활에 복귀하게 되면 개점휴업 중인 돈가스&피자가게를 다시 열어 더 값지고 알찬 인생5막을 펼쳐나가겠다는 굳은 각오를 밝히고 있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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