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나주 신촌리 금동관 이후 100여년 만에 처음 출토 & 5세기말 ~ 6세기초 영산강유역의 강력한 고대 마한 세력의 존재 재확인

영암 내동리 쌍무덤(지방기념물 제83호)에서 국보 제295호로 지정된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매우 흡사한 금동관(편)이 출토되어 이 지역이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의 중심지였음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해당 금동관(편)은 지난해 7월 영산강유역 마한 최고 수장층으로 확인되었던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서 당시 금동관에 장식된 유리구슬, 영락(瓔珞)과 금동관 조각들이 확인되어 관련 학계 및 세간에 큰 이슈가 된 이후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가 추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 중 출토되었다.

이번 영암 내동리 쌍무덤 출토 금동관은 5세기말에서 6세기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그 형태가 매우 비슷한 점에서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최고의 위세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 안치된 피장자의 지위나 권위는 당시 전남지역 고대 마한사회의 최

고의 귄력자로 추정된다.

 

 

 

 

 

 

 

 

 

출토된 금동관(편)은 금동대관 둥근 테의 앞쪽과 양측면에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을 세운 형태로서 줄기 위에 커다란 꽃봉오리를 만들고 그 좌·우가지에 2개의 꽃봉오리를 비스듬하게 배치하였다. 

그 아래에는 2단의 가지를 좌우대칭으로 뻗게 하였는데 아래에서 두 번째의 가지는 매우 작게 표현되었다. 꽃봉오리 중앙에는 연꽃무늬로 표현하였고 최상단에는 유리 구슬을 장식하였다.

이번 금동관 출토는 일제강점기 나주 신촌리 금동관 출토 이후 마한시대 금동관으로는 100여년 만에 처음 출토되어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전남지역 452개소 마한고분군 중 영암군에 분포된 고분군은 약 41개소가 밀집되어 있고, 그 중 20여기의 고분군이 영암 내동리 쌍무덤 주변에 분포하고 있어 이 지역에 마한시대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영암 내동리 쌍무덤은 5세기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고분으로 학계에서 보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금동관 이외에 일본고분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동물모양 토기 등이 무덤 주변 도랑(주구)에서 출토되고 있어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국내․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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