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사장 임준선

사람 사는 세상은 인정이 우선이다. 사회적인 윤리도 병리도 인정에서 좌우된다. 인정은 서로 생각하는 관심이다. 관심이 없어지면 인정은 메말라진다.

‘만물의 영장’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인정으로 통하는 인간의 도리가 지켜질 때 만물의 영장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태는 인정보다 이익이다.

헐벗고 배고프던 시절을 생각해 본다. 삶은 힘들었어도 서로 아끼고 생각하는 인정이 따사로웠다. 일제 식민정권의 학정 수탈 속에서도, 또 처참했던 6ㆍ25 전란 속에서도 서로 간의 인정만은 깨지지 않았었다. 많지 않아도 나누어 먹었고, 어려움도 함께 나누었다. 불과 50여 년 전의 추억이다.

짧은 세월 속에 가져온 풍요의 부작용인가, 눈부신 가을 풍경은 지금도 그때처럼 변함이 없건만 인정은 변했다. 사랑은 떠들어도 사랑이 없고, 의리는 떠들어도 의리가 없다.

신은 하나를 주면 반드시 다른 하나를 빼앗아 간다고 했다. 풍요를 떠들고 문명을 떠들면서부터 인심은 교활하고,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제일 먼저 무너진 것은 가정 윤리다.

물질적 풍요가 불러온 정신적 빈곤현상이다. 물질 만능주의가 인생의 최고 안식처인 가정까지 침입했다. 사랑과 신뢰의 공동체요, 사회조직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정윤리가 무너지면서 사회적 병리도 만연했다.

급속도로 나타난 문명이란 이름 뒤에서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가정을 지킨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곳곳마다 사랑을 떠들고 복음을 외쳐대지만 무너져 내린 가치관 재건은 좀처럼 쉽지 않다.

날마다 자비를 떠들고 구제중생을 외쳐대지만 무정한 세태는 더욱 각박해지고 있다. 정신을 지배하는 신앙의 힘으로도 무명(無明)에 들뜬 사회적 병리현상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고 있다.

시대적으로, 또 세태 적으로 ‘생활 정치 운동’이 절실한 이유다. ‘생활 정치’만이 편안한 사회를 만든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고 또 미래의 과제다.

가난했던 역사를 제치고 경제 규모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소리치면서부터 안타깝게도 가정윤리, 사회정의가 사악함에 편승했다.

 헐벗고 배고픈 고난은 치유됐지만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든 금전만능주의가 가정적 윤리 정서를 사회적 병리현상으로까지 전이시켰다. 급기야 국가기강까지 흔들리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부정ㆍ비리의 사슬을 정리한 전직 대통령의 비극, 또 부정ㆍ비리혐의로 사직당국의 문턱을 드나들고 있는 전직 국무총리의 비극은 국가기강을 흔들어온 역사적 증거다. 최고 권력의 부정ㆍ비리는 후유증도 거세다. 양심과 정의, 진실과 믿음은 없어지고, 좌우로 갈라선 이념투쟁만 살벌하다.

잃은 만큼 얻는 게 순리라지만, 좀처럼 회복되기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크다.

음흉한 부정은 이마에서 기름기가 번질대도, 수척하게 야위어진 양심은 기댈 곳마저 없어진 게 오늘의 현실이다.

좌경세력들의 구호는 언제나 ‘민주회복’이고, 도둑들의 구호는 언제나 ‘부정ㆍ비리척결’이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을 떠들지 않는 정치인이 없다. 겉으로는 모두 애국애족 열사들이다. 기가 막힌 위선은 곳곳에서 기승이다.

지금부터 처방은 하나다. ‘생활정치’이다.

즉 ‘가족정치’이다. 병리로 신음하는 윤리를 회생시키는 ‘진실’이 바로 ‘생활정치’ 운동이다.

지난날 ‘새마을 운동’이 부흥과 문명을 이끌어 온 주역이라면 ‘가족정치’ 운동은 물질 만능 세태에 짓밟힌 인정을 살리는 길이다. 올해도 가을빛은 여전히 아름답다. 믿음과 진실로 가정을 지켜온 도덕의 가치관을 다시 생각해 본다.

21세기는 도덕 정치의 시대! 로 우리 지역(나주)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면 어떨까 한다.
나주에 정치인들에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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