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겪고 있는 국가적 재난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 대해 전 세계가 감동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지진과 재앙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일본인의 미덕이 실로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이런 모습은 어디서 나오는가, 두 가지 사실이 거론된다. 사회적으로는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방재훈련의 결과이고, 가정적으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훈육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인정한다고 해도 의문이 남는다. 지난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드러난 일본인의 성향은, 어째서 지금과 확연하게 달랐던 것일까?

  한. 일 관계에서 도저히 지워질 수 없는 지진관련 기억이 있다. 정확히 88년전 1923년의 일본은 어떠했는가, 그해 9월 1일 11시 58분에 오다와라와 미우라 반도의 지하를 진앙으로 하는 리히터 규모 7.9 에서 8.4 사이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했다.

  관동 대지진이었다. 도쿄 지역과 요코하마 지역, 지바현, 가나가와현, 스츠오카현등에서 10만명에서 14만 2천명 이상이 사망했고, 3만 7천명이 실종되었다.
 

 계험령이 내려진 엄혹한 상황에서 재일 한국인 6천여 명도 죽었다. 망각할 수 없는 것은, 그들 조선인의 경우 대부분 지진 희생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 땅에서 서럽게 생존을 이어왔던 조선인들은 혼란의 와중에서 참으로 터무니없는 유언비어 때문에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져가면서 말투등을 통해 재일조선인으로 드러난 사람은 일본인들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됐다.
 

 그때 일본인들의 그런 광기는 어디서 연류했는가, 일본이 국가적으로 가장 오만했던 시기였다. 로일전쟁과 청일 전쟁에서 잇달아 승리하고 그 여세를 몰아 조선은 강제 병탄한지 13년이 지난 해였다. 일본재국의 대륙진출 야욕은 그렇게 욱일승천했다. 지진피해를 기회로 일본 땅에서 사는 조선인들을 그렇게 거리킴없이 학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른 군국 일제의 오만, 일본인의 집단적 자만심이 드리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역사가 일본만을 위해 그리 호락호락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일본은 그후 태평양 전쟁도발-원폭피폭과 패전을 겪었다. 그리고 폐허 위에서 다시 비약적 경제 성장 경제대국이라는 신화를 창출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그 경제력에 걸 맞는 지도국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다. 국가적 도덕성에 대한 세계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잿더미에서 이룩한 경제 대국이라는 영광도 쇠락의 조짐이 이미 가시화 됐다. 만개했던 벚꽃이 일시에 져버리듯 이제 경제대국 일본의 시대는 겨우 반세기 남짓만에 막을 내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이처럼 좌절을 실감할 수 밖에 없는 시기에 불행하게도 국가적 재앙에 맞서야 하게 됐다. 따라서 일본은 이제 다시 거듭나야할, 말 그대로의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일본 사회는, 일본인들은 3.11 비극을 계기로 이제 비로소 어느 시대에서 보다도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나라의 영광이 영원할 수 없다는 역사의 엄혹한 교훈을, 자연조건이 취악한 국토를 삶의 토양으로 국민도 진정으로 겸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일본인들의 자세는 바로 그런 깨달음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국민으로서의 일본인들이 특유의 미덕으로 이 재난을 극복하고 나면 국가로서의 일본이 본질적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국인이 지금 일본에 대해 미움과 분노를 넘어 아픔을 함께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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