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상인 역사적 재조명 학술대회 열려 /지난 15일 강진군 병영면사무소에서

한강이북에 개성상인이 있었다면 한강이남엔 병영상인이 있었다.

지난 4월15일 강진군 병영면사무소에서 열린 ‘병영상인에 대한 학술대회’서 ‘병영상인’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됐다.

학술대회에 참여한 전남대 박성수 교수는 병영상인의 형성과정을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박 교수는 “장보고 대사에 의한 청해진의 설치는 역사적으로 상업 활동을 규명할 수 있는 사건”으로 봤다.

“당시의 청해진이 현재의 행정구역상 완도군에 속하지만 1896년(고종 33년)에 완도군이 신설되기 전까지는 ‘강진현’이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장보고 대사가 남방항로를 개척하여 신라·당·일본사이의 행상무역과 민간교류에서 거의 독보적인 중개무역을 수행하면서 서서히 상업활동 지역으로 자리잡아갔다.”고 주장했다.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전라병영이 강진에 설치되면서 더욱 더 상업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이로 인하여 진정한 병영상인이 대두됐다.”고 박 교수는 밝혔다.

그리고 “병영상인은 조선왕조 500년과 일제 강점기를 지나 1970년대 후반 대대적인 이농이 이뤄지기까지 600여년 동안 전국의 시장을 주름잡았던 상인들이다.

그렇지만 경강상인, 의주상인 등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 왔다.”는 것이 박 교수의 시각이다.

김신 경희대 교수는 “중국인의 상술, 일본의 상술, 유태인의 상술이 유명하지만 한국에도 병영상인이 글로벌 한국기업의 뿌리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입증됐다”며 “앞으로 병영상인의 역사를 밝히고 현재 한국기업인중에서 어떤 기업인이 그 뿌리를 이어왔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화대 김희만 교수 역시, “전남지방 장시의 발달은 흉년으로 인한 기근 때문에 시작됐다”고 말하고 “이들 시장의 설치지역은 대체로 포구를 중심으로 한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거나 해안과 강의 연안 등지였다”고 말해 강진의 지리적 특성이 병영상인을 활동하게 한 요인이 된 점을 강조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병영상인과 관련된 최초의 학술대회로서 박성수 전남대 교수는 이날 “지난 600년동안 묻혀 있었던 병영상인이 마침내 그 옛날 그 자리에서 부활하는 날”이라며 학술대회 의미를 크게 부여했다.

황주홍 강진군수도 인사말을 통해 “병영상인이 우리나라 전통상인 정신의 하나로 정립돼 한국기업의 롤 모델로 활용되기”를 바랬다./조성환·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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