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어느 시점을 상상해 본다. 가령 한 세기쯤 뒤, 세상은 평화롭고 개인의 평균적 삶은 행복에 충만해진 시대가 됐다고 치자. 그 때 사람들이 사료(史料)로서 한 세기 전의 신문이나 TV뉴스 영상물을 통해 한국의 사회상을 읽고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아마도 어떤 철학자가 갈파한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였다고 해석하지 않을까,

언론은 현실의 거울이라고들 하는데 지금 그 거울 속에 나타나는 한국의 실상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다. 신문을 펼치거나 TV뉴스를 시청하거나 마찬가지다.
모든 분야에서 성한 곳 하나 없는 현실이 지겹도록 드러난다. 정치권을 비롯해 도처에서 다툼과 대립과 갈등이 깊어지고 부정과 의혹의 진열장 같은 형국이다.

정통 언론매체의 경우 편집진에 의해 보도하고 논평해야 할 가치가 있는 뉴스들이 엄선될 터인데도 보도되는 내용들은 거의 어두운 소식이 대부분이다.
 

 과연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어두운가, 아니면 언론보도의 속성 때문에 일반인에게 현실이 훨씬 더 어둡게 투영되고 있을 뿐인가, 그 전후 관계를 재단하듯 편성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왜 언론매체들은 세상의 밝은 면보다는 주로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 보도하는가라는 의문을 갖는 독자나 시청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때마침 ‘평화저널리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열린 중요 언론세미나에서 그런 의견이 나왔다는 보도다. “요즘 세상은 첨단기술의 발달로 잘 살게 됐지만 그럴수록 자연재해가 많아지는 위험사회로 변하고 있다”며 이런 현실에서는 “화합을 유도하는 평화 저널리즘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언론종사자가 아닌 입장에서도 주목할 만한 견해라고 생각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 언론은 그 재난의 수습·극복 방안보다 참상만을 집중보도하는 경향이 있었던 건 아닌지, 언론계가 지금까지의 이런 보도관행에 대한 성찰을 위해 평화저널리즘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을 기록하는 사초(史草)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현실을 광정(匡正)하는 소명도 함께 부여 받은 것이 언론이다. 따라서 ‘투쟁사회’가 아닌 ‘화합사회’로 만들어 가는데 언론의 역할은 막중하다. 다시 5월을 맞고 있다.

각박한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에도 희망의 신록이 번져 가도록 평화 저널리즘이 언론계에 확산·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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