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논설위원
소통은, 사람들의 모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분분이라 할 수 있다.

나만이 아닌 모두를 인정 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호랑이 무서워 함께 사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며 유연하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架橋)이기도 하다.

이에 반대로 불통은, 나만을 고집하고 남의 생각이나 의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힘쌘 돌이들의 전용이기도 하다.

요즘 기득 정치인들에 대한 지역의 민심 흐름이 예전과 다르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를 불과 7개월 앞 둔 지금,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바통 교체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교만으로 보여 지는 불통에 있지 않나 한다.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남을 생각지 않는 메마른 관념아래에서의 치인(治人)이 과거에는 통(通)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 정치인 안철수 교수가 대통령후보로 급부상하는 시대의 흐름에서는 언감생심이라는 중론이다.

부언 하자면 기득 정치인들이 시민들과 유기적 유연성을 잃어버리고 자가당착적 권위에 젖어 말라버리고 굳어진 사고(思考)로는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텍스트(text)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사람이 태어날 때 몸이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굳어지고 강해진다(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라고 했다.

여기에서 소통은 유연성을 가진 생명체이고, 불통은 견고하고 강한 사체(死體)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의 삶의 행복 등을 만들어주고, 인권 등을 보호해 주기 위해 우리의 권리를 위임받은 자가, 자기만의 독불장군 같은 언행이라면 이미 그 정치는 사람을 위한 어떠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연하기 때문에 매를 맞고 아파하는 것에서 정치인들이 왜? 아파해야 하는지를 의식치 못했다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흐르는 물이 가장 높은 선(善)이라고 한다.

물은 낮은 것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인들이 쥐꼬리만 한 권력이란 힘에 쌓여 견고하게 자기만의 성을 쌓으며 천방지축일 때 현자(賢者)나 지자(知者)들은 그저 쓴 웃음 일 뿐일 것이다.

지금도 역사는 변한다. 국민들도 항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나주 또한 외예 일 수는 없다.

여러 지사(志士)들이 지역 선량(국회의원)을 꿈꾸며 물 밑 움직임이 일고 있는 즈음, 겸허한 자세로 가장 낮은 데에서 시민들의 뜻을 받들지 않았다거나 못했던 사람 그리고 감언이설에 능통한 사람은 스스로가 희망하는 바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시민들의 중지(衆知)와 무관하게 무리지어 여론을 호도하여 무언가 만들려는, 질 낮은 정치를 하겠다는 흘러간 물들이 회합하는 등의 염려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한 부류들은 선거 거간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민들이 의식해야 한다.

춥거나 배고플 때, 아프거나 건강할 때, 비가 오나 눈이오나 진솔하게 사람들과 섞이고, 어루만지는 사람, 진정한 사람의 친구가 지역사회를 이끌고 믿음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사회는 시민들의 믿음위에서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믿음을 잉태 시키고 순산 시킬 수 있는, 위대하지 않아도 좋은, 조금은 어리석게 보여도 좋은, 큰 바위가 작은 돌 맹이를 내치지 않는, 큰 강이 작은 시냇물을 천대 시 않는 것처럼 그러한 통 큰 사람에게 우리의 권리를 위임해 줘야 한다.

정치의 가장 근본적 핵심은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 등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주는 정치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아니 지금껏 정치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부를 요구하고 복종을 강제하는, 야만과 천민의식을 조장하거나 즐긴 정치(征治)는 있었지만 정치(政治)는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정치를 할 줄 아는 참다운 정치인이 없었다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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