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 : Lilium lancifolium Thunb.속씨식물 외떡잎식물강 백합목 백합과 나리속의 여러해살이풀

▲잎겨드랑이에 하나씩 붙어 까맣게 익으면 빗물을 머금고 공기 중에서도 흰 뿌리를 내리는 왕성한 발근 발아력을 자랑하는 참나리 주아(珠芽)
『참나리』는 꽃의 색과 무늬가 호랑이와 비슷해 영어로는 ‘타이거 릴리(tiger lily)’라고 한다.
하얀, 혹은 많은 비늘줄기가 모여 알뿌리를 형성한다 하여 ‘白合’ 또는 ‘百合’이라 부른다.

 ‘나리’의 생약명인 백합(百合)은 ‘백합병(百合病: 대개 병을 앓고 나서 허하여 발생하는 신경쇠약증)’에 특효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나리의 인경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어보면 떨떠름한 식감에 쓴맛과 단맛이 나는데, 기혈을 보익하고 폐를 윤택하게 하며(윤폐) 기침을 치료하고(진해) 놀란 것을 진정시키며(안신) 두근거림을 멎게 하는(안심) 등 일종의 잃고 흩어진 것을 수렴하는 완만한 공력이 있다.

다른 나리속 식물들과 구별되는 주아(珠芽)가 잎겨드랑이에 하나씩 붙는데 까맣게 익으면 빗물을 머금고 공기 중에서도 흰 뿌

▲꽃의 색과 무늬가 호랑이와 비슷해 영어로는 ‘타이거 릴리(tiger lily)’로 불리는 참나리
리를 내리는 왕성한 발근 발아력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는 꽃이 하늘을 우러르는 ‘하늘나리’ 등 5종과, 꽃이 땅을 굽어보는 ‘땅나리’ 등 6종이 있다.

참나리가 붉게 피는 7월이 오면 문득 인간의 손이 타지 않는 깊은 산중으로 ‘대물’을 찾아나서는 약초꾼들이 생각난다. 애태워 서성이는 ‘그 집 앞’도 같고, 보물섬을 떠나는 노다지 같은 경험이렷다.

그 기분을 필자도 오래 전 참나리에게서 맛보았다.

“...덩치 큰 아우 하나 불러 참나리의 키를 재보라 하였더니 지상부가 무려 240cm였죠. 꽃망울의 수는 진 것과 핀 것과 오문 것을 모두 합치니 접은 파라솔에 불화살처럼(총상꽃차례) 물경 54송이였다!...” 훗날 이런 글품 파는 일이 생길 줄 알고 필자가 어디다 꾹꾹 적어놓았던 글귀다.

보통 커도150cm의 키요, 알만한 꽃이 열댓 송이면 충분했는데 참으로 놀라운 참나리님 아니신가!

그런데 그 왕성한 발아력에도 불구하고 참나리의 주변엔 어째서 새끼 참나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을까. 필자가 뜰에 물레나물 한 촉을 길러보는데 본의 아니게 잔디깎기로 물레나물을 몹시 괴롭힌 일이 있었다.

물레나물은 초라한 행색으로도 어기차게 꽃대를 밀어올리더니 이듬해 수많은 새끼물레들을 제 섰던 자리에 부려놓고 사라진 것을 기억한다.

또 옆에 빈집 참죽나무가 햇볕을 가려 우리 집 소나무의 일조권과 조망권을 빼앗자 주인이 참죽나무의 한쪽 기둥을 베어버렸다.

이듬해 우리 집 마당은 10년 만에 참죽나무 새끼들의 놀이터로 변하고 말았다.(해마다 ‘프로펠러 씨’를 빙글빙글 안마당에 떨구지만 동안 참죽나무의 새끼가 집안에 돋아난 일은 없었다.)

이 현상들이 바로 ‘스트레스 생리’라는 것이다. 자연식물은 본능적으로 번식하려 하는데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곧 스스로를 소진하여 그 본능의 요구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서두른다는 것.

그러니 "죽으려고 꽃을 피운다" 말이 날 만도 하다.

대나무가 백년에 한번 꽃을 피우고 모두 죽는다는 집단 고사에 관한 설이나 죽기 전에 수많은 솔방울을 매단다는 소나무의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이를 ‘식물의 자살’이라 말하는 이도 있어 사람으로 치면 더러 목숨을 끊기도 하는 극한의 외로움이나 실연, 절망, 고통, 우울, 반복적 자극 등의 ‘스트레스’와 상통한다. 그리하여 식물도 인간처럼 스트레스가 싫고 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는 이해는 영성적이다.

발아래 새끼를 치지 않았던 ‘54송이의 참나리’를 생각한다.

생의 씩씩한 꼭대기에서 아직은 ‘솔로이며 싱글’이고 싶은 뭇 아가씨들의 화려한 외출을 떠올렸다. 새끼들을 키우면서 어찌 저토록 늘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으며,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코흘리개들을 데리고 누구를 저렇게 빨갛게 웃을 수 있으며, 불꽃같은 파라솔을 펼치고 임 만나러 가는데 어찌 외로움이며 고통이며 우울이며 절망 따위가 그림자라도 얼씬거리겠는가!

‘범띠 가시내’ 같은 울긋불긋한 아가씨의 외출엔 적어도 알록달록한 호랑나비가 제격이다. 어디선가 산제비나비도 나풀거리고 검은 쇼올을 휘날리는 긴꼬리산제비나비들도 나들이 채비에 한창이다.

서로 입을 맞추며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연인들의 여름, 울금빛 창문 너머 노을이 질 때까지 딩동댕 딩동댕 딩동댕...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만난 여인처럼 요염한 참나리다.

전남타임스 후원

저작권자 © 전남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