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감성으로 써낸 통일과 민족의 시편

▲이명한 소설가
왜 이리 아득할까/ 일곱 살 나던 해에/ 두 살 터울로 죽은 동생/ 외갓집 오갈 때면/ 무덤 위에 과자 서너 개/ 던져주며 울었던 고개 <이명한 시 ‘만남’ 중에서>

나주 출신 원로 소설가 이명한(81)선생이 첫 시집 ‘새벽, 백두 정상에서(문학들 펴냄)’를 펴냈다.

이를 기념해 광주민족예술인총연합과 광주전남작가회의, 한국문학평화포럼 등 후배 문인들이 지난 20일 오후 광주 상무지구 5·18기념문화관 대동홀에서 선생의 시집 출판기념회를 열렸다.

5·18기념재단 이사장인 김준태 시인은 이명한 선생에 대해 “새로운 역사,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그러했을 낭만주의적 인간이며 로맨티스트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이명한 선생은 하객들에게 “소설을 쓰면서도 시라는 것을 가슴 한구석에 종양처럼 간직하고 살아온 노정이 짧지 않았다”면서 “가슴 속에 지니고 살기가 버거워 한 점씩 떼어내어 꽃잎 뿌리듯 여기저기 던져 놓은 것들을 달리는 버스 속이나 가로수 아래, 더러는 먼지 자욱한 길거리에 서서 한 수씩 수첩 위에 새겨오다 보니 백여 수가 되어버렸다”고 밝혔다.

이명한 선생은 1931년 나주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이창신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0년대 말 영산포에서 소설가 오유권 선생을 만나 교류하면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을 응모했다가 낙선했다.

이로 인해 글쓰기를 단념하다시피 했던 선생은 1970년을 전후해 몇몇 시인들과 동인활동을 한 바 있다.
이후 문순태, 송기숙, 이계홍, 이지흔, 한승원 등과 더불어 ‘소설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1975년 ‘월간문학’ 소설 신인상에 이어 전남일보에 장편 ‘산화’가 당선되기도 하였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절을 거쳐 오면서 “격렬한 시대와 부딪히면서 내 생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문학의 외길을 걸어왔다”고 회고했다.

“사회와 역사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문학이 당대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선생은 “문학은 허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지금도 80년 5월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항쟁의 현장이었던 동구 금남로 인근에 한약방을 차려놓고 집필실을 겸해 사용하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소설집으로 ‘효녀무’, ‘황톳빛 추억’이 있고 장편소설로 백호 임제 선생의 사상과 시혼을 그린 ‘달뜨면 가오리다’ 등의 대표작이 있다.

지금도 선생은 “나주는 가슴 가운데서 떠나지 않는 문학의 본향”이라고 추억한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주최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가 후손들 나주탐방 모임과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일 기념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고향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쏟아지는 최루탄에 바지가 뚫어질 정도로 뛰어다녔던 전력(?)을 말해주듯 지금도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사회비판 현장을 찾는 지역의 진보운동가다.

그해 9월 광주·전남작가회의를 결성해 문병란, 송기숙과 더불어 공동의장을 맡았고 광주민예총 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자문위원, 한국문학 평화포럼 상임고문, 6·15공동위원회 남측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 6·15공동위원회 광주전남 상임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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