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에 물드니 하늘이 되고

 

▲전 숙
물든다는 것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군가에, 무엇인가에 물들고 싶다.

 

그것은 어쩌면 조물주에게 육신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성까지도 나누어받은 까닭일 게다. 태초의 염색장인은 조물주다.

그는 하늘을 쪽빛으로 물들이고 땅을 황토빛으로 염색하고 온갖 창조물에 유려한 색의 옷을 입혔다. 조물주의 그런 예술적 성향 때문에 우리의 눈동자에 빛나는 모든 색은 염색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모두 재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들고 싶은 본능에 의지하여 마음껏 물듦을 향유할 수 있는 천연염색박물관을 찾았다.

천연염색이란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로 염색하는 것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광물이든 색이 발현되는 모든 자연이 염색의 재료가 된다.

오천 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멋진 풍류시인이라는 백호 임제의 고향 다시면 회진리에 접어들면 백호임제문학관이 작은 오름에 날아갈 듯 나그네를 맞는다. 백호는 황진이 묘에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라는 시 한 수와 술 한 잔을 바친 뒤에 수백 년 동안 이 나라 여성들의 가슴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시인이다.

문학관에서 한 굽이만 휘어 돌면 한국천연염색박물관이 오방색 주름치마를 두르고 활짝 반긴다.

나주시는 2005년 폐교 부지를 매입해서 2006년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천연염색문화관을 개관했다.

2009년 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하였는데 명실공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한국천연염색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다양한 전시와 교육, 염색체험과 연구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천연염색의 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는데 관람료는 무료이고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나주와 쪽
나주는 비단과 샛골나이(나주의 전통길쌈:12세목)의 고장이다.

나주와 영산포를 에둘러 흐르는 영산강은 장마철이면 범람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영산강변 농지에는 범람하기 전 수확할 수 있는 쪽 재배가 성행하였다.

영산강변의 쪽은 남쪽의 따뜻한 기후와 기름진 토양에서 최상품의 쪽염색의 재료가 되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주는 천연염색이 활발하였고 지금도 대한민국 유일한 국가무형문화재 115호인 염색장이 사는 곳이다.

우리나라 천연염색의 역사를 보면 제2세 단군부루는 계묘3년(기원전2238년) 9월에 명령을 내려 백성으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아서 목을  덮도록 하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에 나와 있다. 염색의 역사를 따져보더라도 우리 민족의 5000년 역사와 맞물려있다. 

박물관 전시동은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장이 있는데 상설전시장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고 국내최대규모의 천연염색 작품 전시공간이다.

염색의 역사, 천연염색의 기본, 천연염색의 실제, 천연염색의 미래 등 테마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전시물은 쪽에 관한 것이었다. 쪽은 염료로 쓰일 뿐만 아니라 쪽추출물의 약성(항균, 항종양물질, 항충, 냄새를 없애는 소취효과가 있다)을 이용해서 치약, 비누, 샴푸 등의 생활용품을 만드는데도 이용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쪽차를 마셔본 적이 있다. 쪽차는 담백하고 뒷맛이 개운했다. 샛골나이의 쪽빛을 보며 우주 최초의 색이 쪽빛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생명의 기원이 쪽빛바다였던 것처럼 우리를 키워낸 모성의 색도 쪽빛이다.

그래서 쪽빛은 생명의 색이다. 창조의 색이고 희망의 색이고 도전의 색이다.

색마다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아무래도 모든 색을 압도하는 색은 인류 태초의 색인 쪽빛인 것 같다.
전시동의 뮤지엄샵은 천연염색 염료와 염색재료, 관련서적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천연염색 생활소품과 의류, 침구류, 넥타이, 스카프 등 다양한 상품도 전시 판매한다.

 

염색체험하기
전시동 뒤쪽으로는 연구동이 있는데 게스트하우스와 체험관이 있다. 숙박시설은 6인실이 4개 있다. 천연염색교육과정은 전문가과정과 특별강좌, 맞춤형교육과정, 특별과정, 생활천연염색 등이 있다.

손수건염색이나, 천연비누 만들기, 면티 염색, 압화 열쇠고리 만들기 등 생활소품 체험료는 5,000원부터 10,000원까지 종류에 따라서 다양하게 책정되어 있다. 개인이나 단체예약도 가능하다.

하얀 손수건 한 장이 2,000원이고 체험료는 5,000원이다. 흔하디흔한 손수건을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손수건으로 창조하기 위해 체험동으로 간다.

국화화분이 걸린 소롯길 옆에는 통나무로 지은 정자가 있다. 정자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체험하러 온 어머니가 직접 염색한 면티를 입은 아이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웃음소리마저 쪽빛에 물들었는지 하늘로 까르르까르르 스며들었다.

옷을 염색하다가 마음까지 곱게 염색된 게 분명하다. 우리 모두 자연이므로 자연에 있는 천연재료로 염색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자연이 되는 일이며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손수건에 홀치기염을 하기 위해 서너 군데를 고무줄로 묶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쪽물에 주무르고, 주무르고 맑은 물에 헹구고, 헹구고 하다가 고무줄을 풀어서 손수건을 펴니 내가 무슨 추상화 화가라도 된 기분이다.

멋진 기하학 무늬의 추상화로 재탄생한 손수건을 하늘에 비추이니 손수건은 어느새 하늘이 되어 있다.
하늘이 된 손수건을 두 손으로 모시고 영산강변을 거닌다. 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이 한 무리 지나간다.
가을에 물든 억새와 갈대와 이름모를 풀들이 어우러진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그들을 보며 한참 부러워진다. 등허리가 늦가을 황혼에 물들고 있다.

시간도 염색을 한다. 시간이라는 염료에 염색된 흰 머리카락과 단풍과 노을을 보며 나는 자연스레 자연에 물든다. 다음 주말엔 자전거타기를 배울까보다.

 

천연염색의 수도가 된 나주
천연염색관 옆으로 천연염색연구단지가 한옥으로 건축 중이고, 연구단지 옆에는 천연염색공방들이 입주해 있는 ‘나주손’ 공방타운이 있다. 염색전문가들이 다양한 천연염색 작품들을 창작하여 판매한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대부분의 공방이 문을 닫았는데 ‘가삿골공방’ 에 주인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공방주인은 43세의 박유진씨였는데 신사임당 같은 조신한 자태가 염색전문가로 잘 어울려보였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섬유공예를 전공했다는 박유진공예가는 머플러와 조각보, 여러 패션 소품에 천연염색과 전통 자수를 접붙여서 천연염색예술의 장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었다.

나주시는 천연염색을 섬유산업과 패션산업으로까지 발전시키기 위해 천연염색과 밀접한 여러 기관들을 한국천연염색박물관 주변으로 모아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천연염색 클러스터를 단단하게 구축함으로써 바야흐로  ‘천연염색의 수도’를 꿈꾸고 있는 중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데... 그런 연유일까. 국내 최대의 천연염색기업이 나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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