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종명지’ 재정비 완료
화순이 주요작품무대였다는 것 알려

◇화순군이 김삿갓 종명시 복원사업에 한창이다.
방랑시인 김삿갓(金炳淵 · 호 난고(蘭?))의 삿갓을 벗긴다.

화순군이 김삿갓(1807~1863)의 생애 가운데 작품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낸 동복(同福)에서의 말년 기록이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점에 대해 이를 바로 잡기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올해 종명지(마지막 숨을 거둔 곳) 복원 사업을 완료했다.

화순군은 7일 올해 5억원을 들여 동복면 구암리 647번지에 안채, 사랑채, 사당을 비롯한 주변을 정비함으로써 김삿갓 유적지 정비사업을 완료했다.

화순군은 또 내년에 2억2,200만원의 예산으로 삿갓동산을 지어 화순이 김삿갓의 주요 작품 무대였음을 널리 알리고 기념할 계획이다.

아울러 6,600만원을 들여 김삿갓 유적지 문화콘텐츠 사업도 전개할 방침이다.

화순군이 이처럼 김삿갓의 삿갓을 벗기기로 한 것은 김삿갓이 말년에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에 정착, 6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는데도 이 부분이 얼버무려지고 간혹 왜곡되고 있는 현실을 시정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김삿갓의 자료 가운데 상당부분이 밝혀졌는데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6년간의 동복생활은 비교적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고 넘어가야겠다는 인식아래 우선 확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화순 동복에서의 발자취를 복원하기에 이른 것.

김삿갓 자료 중 상당수가 “말년에 전라도 어디에서 죽었다”고 기록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무책임하게 인용하면서 정작 중요한 시기를 보냈던 동복의 역사가 묻히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삿갓이 동복을 방문한 것은 모두 세 차례.

첫번째는 1841년 무등산-장불재-적벽을 지나 동복의 산하에 감탄했다.

두번째는 1850년 압해를 본관으로 하는 丁致業씨 사랑채에 기거하며 동복 관아에 있는 협선루에서 시상을 얻어 작품을 남겼는데 그 시비가 현재 동복면사무소 앞에 세워져 있다.

마지막 세번째는 1857년부터 동복에 안주, 1863년 3월 29일 사망 때 까지 말년을 동복 구암리에서 보내다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구암리 마을 뒷산에 초장지가 현존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 8도를 두루 섭렵한 김삿갓이 화순 동복을 3번이나 방문하였던 역사적 사실은 그가 이 고장을 얼마나 흠모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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