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사장 임준선
또 이 궁비(穹碑에 사실을 새겨 천추(千秋)에 전하려 한다.

 

남평 문씨 중세는 고려 때 많은 인물이 태어나 우산기상시 문익의 두 아들 평장사 문공원과 예부상서 문공유가 있었고, 공유의 아들 문극겸은 명종 때에 상서, 평장사 등을 지내면서 근면 충직한 재상으로 명성이 높았다. 문하시중 문정은 대학자였다. 문공유의 7세손인 예문관제학 문익점은 중국으로부터 면화종자를 가져왔고, 그 손자 문래는 실을 뽑는 ‘물레’를 발명하여 의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문빈은 무신으로 조선조 초기의 제2차 왕자란에 공신으로 대장군에 승진되고 울천군의 훈작을 받았다. 정조 때에 문계동은 시와 복술로 유명하였다.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자인 문재인(1953년생) 후보도 남평 문씨이다.

그리고 나주시 의회 문성기(1947년생)부의장도 향화(香火)를 받들고 있
남평 문씨의 문화유산 이야기

 

문암 곁의 장연서원(남평면 풍림리 720)은 시조 무성공 다성과 2세 경정공 공유,
3세 충숙공 극겸, 4세 순평군 유필, 12세 충선공 익점을 모신 서원이다. 이 서원 건립의 유서가 마련된 것은 1734년                (영조 10) 세워졌던 장연사로부터이다.

현재의 건물은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훼철된 뒤 1923년부터 전반적으로 다시 세워지기 시작되어 새롭게 규모를 일신했고, 1975년 대대적인 중개수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홍살문(입구)을 지나면 헌성비가 있는 빙호루(서원의 정문)이다.

오른편 문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오현 선조 사적비(1975년 건립), 동제에 악강당과 오사제가 있고 건너편이 서재이다.

양춘문(신실 문)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오현(다성 공유 극겸 유필 익점)을 모신 상덕사와 서쪽에 충선공 영정당이 있다.

시조단은 장연서원에서 건너보이며 직선 거리는 300m 정도이나 도로를 따라가면 500m 정도이다. 장자못은 매립되어 주차장을 만들었고 시조단 앞에는 석물들을 세웠고 오른쪽에 산산제단이 있다.

팔각지붕의 문암각은 2001년경 건립하고 2004년 단청을 마쳤으며 안에는 문암이 있다.

문다성 유허비는 남평읍 서산리 남평-능주간 도로변 절벽에 감실을 파고 비를 세웠다. 보성의 문병렬과 남평의 문종환이 시조인 문다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석 전면은 ‘신라무성공문다성유허비’라고 씌여 있다.

‘숭정기원후 사임자’로 적혀 있어 1852년(철종 3)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은 남평현에 대한 연혁과 남평 문씨 시조인 문다성 탄강설화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높이 140cm, 너비 63cm, 두께 22cm이며 가첨석을 얹었다.

우리는 특히 목화하면 문익점 선생을 생각하게 되고 남평 문씨 하면 목화를 생각하게 된다.

목화는 면으로 된 옷으로 변신해 백성들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추위에 떨던 백성들을 따뜻하게 하였던 목화는 현재는 거의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목화는 관상용으로 좋으며 토질을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남평 문씨 중 문익점 선생이 이 목화를 재배해 백성들에게 보급한 것을 기리기 위해 남평 문씨 종친회는 목화 씨앗을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다.

글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목화를 보급한 씨족인 남평 문씨. 대권에도 도전하고 있는 남평 문씨의 시조 문화유적이 우리 지역에 있는 것은 큰 자랑거리이다.

나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는 성씨들의 연원을 밝힌 성씨 공원이 우리 고장에 있어 영화롭던 지역의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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