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다시면 죽산보 인근 농민들 “이미 예견된 피해, 정부만 나 몰라라”&“사람 살리자고 벌인 영산강 살리기 사업, 농민이 무슨 죄인가?”아우성

▲영산강 살리기 사업으로 설치한 죽산보 인근 농경지들이 물이 차 수렁논이 되면서 농민들이 보리농사는 물론 올 벼농사조차 짓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원래 이 일대 농지가 모래가 많이 섞인 사질토라 웬만해서는 물이 안 지는 뜰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죽산보를 막은 뒤로 섣달 열흘 가뭄에도 물이 벙벙하게 차 있고, 아예 보리밭이 수렁밭이 돼서 들어가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지경입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156-2번지 일대 농경지에 농민들이 몰려나와 격앙된 목소리로 MB정부의 영산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분통을 터뜨렸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농경지와 인접해 있는 영산강에 죽산보를 설치한 뒤 수위가 높아지면서 인근 농경지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해 농사를 못 짓게 됐다는 아우성이다.

나주시 다시면 신석리 진덕근(73)이장의 얘기가 계속된다.

“작년 가을에 벼를 베려고 들어갔던 장비가 수렁논에 빠져서 꼼짝을 못했습니다.
수확한 나락도 너무 오래 물에 잠겨있는 상태다 보니 예년에 비해 여물지도 않고 겨우 이삭만 베어낸 논들이 많습니다.

이모작이라 보리를 갈았어야 할 논에 저렇게 물이 차 있으니 다들 엄두도 못 내고 심어놓은 보리들도 물에

▲가뭄에 대비해 설치해 놓은 관정 수위 보다 더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잠겨서 못 자라고 있는 겁니다 저렇게...”

또 다른 농민 윤영동 씨는 “가뭄에 물난리가 나서 농사를 못 지어 보기는 47년 농사짓던 중에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며 “물이 높은데서 낮은 데서 흐르는 법인데, 박사들이 연구해서 만들었다는 죽산보가 이런 것도 예견 못했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며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의원님들도 보시면 알겠지만, 이 물이 어디서 나겄소?”

이날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인 김선동(순천·곡성,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원과 오병윤(원내대표, 국토해양수산위원회)의원, 그리고 전남도의회 안주용 의원을 비롯한 진보의정 소속 의원들과 나주시의회 임연화 의원 등이 현장을 찾아 농민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자리에는 익산국토관리청과 영산강유역 환경청, 나주시 관계자 등이 함께 피해 농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가뭄에 대비해 설치해 놓은 관정 수위 보다 더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조향순(79·여)씨는 “보리파종도 못하고 그나마 파종한 보리도 생육이 부진해 수확을 못할 지경”이라면서 “겨울에 보리 갈아 하곡수매로 보릿고개를 벌충하고, 또 한여름 벼농사로 추곡수매를 해서 한 겨울을 버티는데, 이렇게 논을 놀리고 있으니까 아무런 힘도 없도 웃음이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또 다른 농민은 “논도 논이지만, 작년에 집에서 상수도공사를 하려고 땅을 팠는데 30cm부터 지하수가 치솟아 계량기를 설치하지 못할 정도였다”면서 “국회 차원에서 원인 규명과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죽산보 한 달만 터보면 원인 밝혀질 것

농민 최병남 씨는 “농민들이 물난리 걱정 안 하고 농사짓게 해준다는 미명하에 영산강 살리기 사업을 했는데, 농민들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있는데 영산강에 황포돛배는 띄워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농민들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당국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의원들과 농민들은 죽산보 종합상황실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죽산보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영산강·섬진강통합물관리센터 이현노 센터장은 “죽산보 주변 농지와 마을의 침수피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2월중에 용역발주계획을 세워 3월부터 내년 3월까지 일 년 동안 연구용역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진득근 이장을 비롯한 농민들은 “일단 죽산보 때문에 수위가 높아져 물이 차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한 달 정도만 죽산보 물을 방류해 보면 피해의 원인을 알게 될 것 아니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원인을 밝히기 위해 1년 이상 연구용역을 맡겨야 한다는 당국자의 설명에 주민들은 죽산보를 한 달만 터보면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현로 센터장은 “인근 공장의 공업용수 공급과 소수력발전소 가동을 위해 수문을 여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선동 의원은 “농지침수와 죽산보와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공업용수를 충분하게 공급하면서 수문을 열수 있으며, 원인 규명을 위해 소수력발전소는 잠시 가동을 멈추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오병윤 의원도 “보를 건설하면 주변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상식이고 주변의 농지피해가 예상될 수 있기에 사전 조사와 관련 대책을 마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터지자 이제 와서 보 건설과의 연관성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뒷북행정에 늑장대응”이라고 질타했다.

오 의원은 “농지피해 조사에 관련 농민들을 포함하고 국토부는 실질적인 피해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 마을 물 위에서 살고 있어

다시면 신흥마을 임영기 이장은 “농지도 농지지만 우리 마을 34가구가 지금 물 위에 둥둥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이러다 지반이 약해져 태풍이나 장마에 가옥이 무너지면 인명피해까지 우려된다”며 조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임 이장은 “국민들 살리자고 수천억 예산을 쏟아 부어 만들어 놓은 영산강 살리기 사업이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민들 못 살게 하는 사업이라면 이제 우리는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는 것이냐”며 새정부 출범과 정치권의 혼란 속에 4대강 이슈가 파묻히지 않도록 정치권과 관계당국을 향해 현실성 있는 대안마련을 요구했다.
/ 김양순 기자
ysnaj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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