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 Heloniopsis koreana Fuse & al.&외떡잎식물강 백합목 백합과 처녀치마속에 속하는 숙근성여러해살이풀

▲단아하게 결부좌한 수행자의 모습이 스며있는 처녀치마
아직 겨울이 다 풀리지 않은 춘삼월, 몸은 뻐근하고 마음 간지러운 날 산에 올라보면 산도 잠겼던 둔부를 뒤척이며 양지마다 앳된 여드름을 붉히며 손님맞이에 부산하다.

봄눈을 머리에 인 채 꽃눈을 틔우는 저 한계령풀, 현호색, 복수초, 괭이눈, 얼레지, 바람꽃, 노루귀, 처녀치마 같은 뾰두라지들 말이다.

춘풍은 그리하여 사람의 가슴에도 일고 산의 허리에도 일어 일순간 벌 나비를 부르고 새들을 반긴다.
깊은 산중의 처녀치마라... 처녀도 처녀지만 치마도 치마다. 어찌하여 맨사댕이의 초봄에 이런 야시러운 이름을 얻었을까.

처녀치마속에는 「처녀치마」와 「숙은처녀치마(Heloniopsis tubiflora)」 두 종이 있다.

모두 잎의 모양에서‘치마’를 얻은 셈인데, 유사종의 「흰처녀치마(H. orientalis (Thunb.) C. Tanaka var. flavida)」와 「칠보처녀치마(Metanarthecium luteo-viride)」도 마찬가지다.

주로 아고산지대를 삶의 배경으로 살아가며 꽃빛과 신장 모두 비슷한 형색이지만, 자세히 보면 숙은처녀치마의 잎은 가장자리에 거치가 없어 밋밋하다.

꽃이 고개를 숙여 숙은처녀치마라 한다는 것은 처녀치마도 대체로 고개를 숙이는 편이므로 이 점은 뚜렷하다 말할 수 없다.

둘 다 유·무성생식이 가능하여 씨는 물론, 잎을 떼어 흙에 심어도(엽삽) 신기하게 새로운 촉이 돋아난단다.

이즈음 ‘무성생식(암과 수의 교배 없이 몸의 일부 또는 포자로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지는 생식법)’과 ‘처녀치마’의 행간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처녀치마의 다른 이름에 「치맛자락풀」이 있고 「치마풀(북한)」이 있다.

여기에 또 「성성이치마」라는 일본 이름이 겹친다. 그닥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처녀치마’라는 식

◀ 처녀치마 잎
물명은 바로 이 ‘성성이치마’에서 흘러나왔다고 한다.

오랑우탄의 별칭이며, 중국고사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기도 한 ‘성성이’에 ‘치마’가 결합된 이름 「성성고(猩猩袴, しょうじょうばかま = 쇼우조우바카마 = 성성이치마)」를 우리가 옮기는 도중 ‘쇼우죠우(성성이)’를 ‘쇼죠(처녀)’로 발음하면서 빚어진 오기였다는 것.

싱겁고 우습고 씁쓰레한 동기는 일제시대를 거슬러 오르지만, 의도하지 않았을까 싶게 이름이 싹싹하고 달다.

누구를 물어서 오랑우탄과 비교하겠는가!

캉캉춤을 추는 무희에서부터 일본 토속의상인 ‘와카마’나, 로마병정의 갑옷치마를 지나 오늘의 주름치마로 오버랩 되는 부동의 치마 이미지가 문득 ‘처녀’를 만남으로써 화려해졌다할까,

그러니 우리가 어설픈 선입견을 버리면 그만이다.

각설하고 필자는 처녀치마에서 부처님 상을 보았다.

‘치마’처럼 형상에 치우쳤지만 처녀치마엔 단아하게 결부좌한 수행자의 모습이 스며있다.

청정한 마음으로 산길을 걸으면 한겨울이라 해도 우리는 아름드리 꽃들에 안길 수 있다.

내 안에서 흔들리는 느리고 고요한 ‘걸음꽃’에서, 착하고 강인한 ‘오름꽃’, 홀로 끄덕이는 ‘명상꽃’, ‘절제(꽃말)’라는 이름값의 ‘묵언꽃’ 들 말이다.

연보랏빛으로 고개 숙인 얼굴에 가는 허리 그리고 가닥가닥 펼쳐놓은 치마폭 속 흰 종아리의 처녀 상이든 좌복을 틀고 앉아 삼매경에 든 수행자 상이든 간에 세밑에 대지를 녹이는 풀이야기라서 봄은 벌써부터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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