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노루처럼 알싸한 향기를 품은 약나무

김진수 회장 / 전남들꽃연구회
학창시절, 장일남 작곡의 가곡 ‘비목’을 부를 때면 필자는 늘‘비목나무’를 연상했다.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어떤 나무를 떠올리며 문득 가을처럼 시큰거리기도 하였는데, 으악새는 새가 아니듯 ‘비목’도 단지 목비(木碑)일뿐 『비목나무』는 아니었다. 

 예의 ‘비목’의 노랫말은 과거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기슭 어디를 순찰하던 한명희라는 젊은 소대장이 쓴 시편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6.25 전쟁이 끝나고 세월이 10년 쯤 흐른 어느 날, 그가 우연히 발견한 무명용사의 돌무덤에는 녹슨 철모와 함께 저 이끼 낀 나무쪼가리 ‘비목(碑木)’이 세워져 있었던 것.

이처럼 『비목나무』와 「비목」이 동명이인처럼 서로 다른 관계임에도  필자는 그 틈새로 즐거운 볼거리를 찾았다.

 1연의 첫 행에 적은‘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이라면 『비목나무』도 절로 눈에 띄는 분포지역이어서 자연스럽다. 역시 2연의 첫 행에서 ‘궁노루 산울림’은 ‘사향노루가 짝을 잃은 서러움으로 매일 밤 울어대는 것’을 뜻한다.

▲비목나무. 연둣빛 날개들을 위로 바짝 젖히고 그 잎겨드랑이 아래로 발가락을 내밀듯 3~10송이의 노란 꽃들을 사뿐히 움켜쥔다.

사향노루(궁노루)의 수컷에서 얻어지는 ‘사향’이라는 약재는 공교롭게도 향기 나는 약나무인 『비목나무』와 성품이 유사하지 않은가. 

『비목나무』는 4~5월에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봄나무다. 잎이 돋아나면 마치 새가 날다가 방금 꽃가지에 내려앉으려는 동작처럼 연둣빛 날개들을 위로 바짝 젖히고 그 잎겨드랑이 아래로 발가락을 내밀듯 3~10송이의 노란 꽃들을 사뿐히 움켜쥔다.

 수형은 타원형이며 가을엔 빨간 열매와 노란 단풍이 곱게 물든다.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선 얇고 자잘하게 껍질조각이 벗겨지며, 「첨당과(詹糖果: 약명)」라 하여 나무껍질과 잎을 약재로 이용한다.

▲비목나무 열매
지방에서는 흔히 ‘보얀목’이라 부르고 한자 이름은 ‘백목(白木)’이다. 이는 잎의 뒷면이 솜털과 함께 희읍스름하여 뽀얗고, 수피도 대강 하얘서 나온 이름이라고들 말한다.

나무의 질이 견고하여 가구재, 조각재로 유용하며, 일본에서는 이것을 나무못으로 만들어 목조건축에 사용하므로 ‘가나꾸기노끼(金釘木)’라 부른다.

속명 ‘Lindera’는 ‘향기가 있는 자웅이체(암수딴그루)의 낙엽성떨기나무’를 뜻한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면 실제로 톡 쏘는 듯 알싸한 향이 느껴진다. 녹나무과 식물들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한 방향성은 약리적으로 열을 내리고 어혈을 흩으며 뭉친 것을 풀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최근 비목나무의 껍질에서 분리한 단일화합물이 미백과 항산화, 항당뇨, 항염, 항암, 항비만 등 여러 분야에 효과가 우수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또한 종명 ‘erythrocarpa’는 ‘붉은 열매’라는 뜻으로 그 콩알 크기의 빛깔이 흡사 반지 위에 얹은 자마노 보석처럼 달콤하다.

 『비목나무』는 과연 담녹색의 부드러운 잎 사이로 담황색의 꽃을 가득 피워 나무 전체가 한 덩어리로 뽀얗다.  

맑은 숲 여울목 근처에 살기를 좋아하고 속이 톡 쏘는 듯 향기로우며 봄날의 따스한 미소가 온몸에 배인 여성스러운 나무다. 저 ‘碑木’ 속에 갇힌 어둡고 비장하고 적막하고 스산한 기분을 일소할 만큼 행장이 가볍다. 

이 나무를‘비바람 긴 세월’동안 이념으로 등지고 동족끼리 죽어라 싸우고 분단하여서도 끝날 줄 모르는 민족의 불운에게, 그리고‘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마저 애달픈 노래 ‘비목(碑木)’앞에 찡한 마음을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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