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허브도시 서울의 발전상과 옛 소시민들의 만남 ‘눈길’

골목골목 장인들의 숨결 아로새겨져 서울내기 생활상 관광·체험 일석이조

전국에서 마을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농촌에서는 특산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체험활동을 곁들여 도시민들을 끌어들이는 관광형 마을 만들기가, 도시에서는 삭막한 도시공간을 문화와 건강한 삶이 어울리는 공동체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사업이 한창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11일부터 나흘 동안 전국의 지역일간지와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지역문화콘텐츠 현장탐방-장인(匠人)과 지역문화’ 연수를 실시했다. 첨단을 구가하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은 옛 전통과 정서를 보존하면서 시대를 엮어가는 장인들의 손길을 활용해 우리의 전통과 미(美)를 전파하고 있다. 전통의 기술과 멋을 오롯이 지켜가는 원조 장인들과 옛 것의 바탕 위에 시대의 변화를 수놓아 가는 현대적 장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심 속 전통마을 북촌의 장인들을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울내기 소시민들의 옛 모습 ‘북촌’

 

▲북촌의 한옥은 20세기 초 주택난 해소를 위해 개량한옥으로 개조되면서 안채와 사랑채가 따로 구분되지 않고 ‘ㄷ’자 또는 ‘ㅁ’자 형태로 마당을 에워싸는 모습으로 바뀌게 됐다.
북촌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서울의 북쪽지역을 일컫는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북촌의 뒤에는 북악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북촌에는 과거 조선시대 권문세가들이 살았다는데, 왠지 현재의 모습은 그다지 권세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너른 마당에 정원과 별채를 몇 채씩 따로 두고 있는 남도의 한옥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한옥들이 20세기 초 주택난 해소를 위해 개량한옥으로 개조되면서 안채와 사랑채가 따로 구분되지 않고 ‘ㄷ’자 또는 ‘ㅁ’자 형태로 마당을 에워싸는 모습으로 바뀌게 됐다.

▲북촌 골목

 

 

이런 한옥들이 도시화의 물결 속에 사라지다가 전통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확대되면서 보존되기 시작했다. 현재의 가회동, 삼청동, 계동 일대의 한옥은 새로 지어진 것들도 많다.

알록달록 꾸려진 공예의 거리 ‘북촌오감도’

북촌의 매력은 무엇보다 오감을 만족할 수 있는 전통공예공방들이 골목골목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어림잡아 30여 곳에 이르는 이들 공방에서는 공예품 전시와 판매는 물론, 각종 체험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 북촌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만족감을 높여주고 있다.

이처럼 북촌이 한국 전통 공예의 메카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추진 중인 ‘지역공예마을육성 시범프로젝트’의 영향이 적지 않다.

서울 곳곳에서 산재해 있던 공예인들이 북촌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 여기에 북촌 골목 곳곳에 숨겨진 전통 공예 공방에만 초점을 맞춘 최초의 지도인 ‘북촌오감도’까지 나오면서 그 가치는 배가됐다.

북촌에서 만날 수 있는 전통공예는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흔하게 접한 박제된 전통공예와는 차원이 다르다. 조선 철종 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장장 5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는 금박연 공방을 비롯해 한복, 옻칠, 천연염색, 한지, 연, 소반 등 다양한 분야의 공방이 있다. 조선시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만들었던 경공방(京工房)이 그대로 재현된 모습이다.

전통창호의 명맥 잇는 소목장 심용식과 청원산방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소목장 심용식 장인
전통 창호의 명맥을 잇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소목장 심용식 장인의 공방 겸 교육장인 ‘청원산방’은 40여 년 전통창호에 대한 열정과 장인정신이 집약돼 있다.

 

세살문, 용자살문부터 꽃살문, 귀갑살문, 완자교살문, 서각장지문, 눈꼽째기창에 이르기까지 가정과 민가, 절, 궁에서 만날 수 있는 170여짝, 30여 가지 이상의 전통창호를 둘러 볼 수 있다.

오래된 한옥을 구입해 현대적인 한옥살림으로 개조를 한 뒤 공방을 활짝 개방하고 한옥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한 장인의 사려 깊은 마음이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간단한 소품을 만드는 목공체험, 짜맞춤을 기본원리로 한 가구나 창호를 만드는 법을 정규와 단기 교육과정으로 열어 두고 있다.

한 땀 한 땀 수놓아가는 전통의 멋 규방공예

전통자수와 침선, 매듭공예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최정인 선생의 ‘우리빛깔공방’은 한 번 발을 들여

▲우리빛깔공방’ 최정인 선생
놓으면 두 시간여를 훌쩍 보내게 되는 매력적인 공간. 외국 항공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는 최 작가는 특유의 입담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또 다른 규방공예 공간인 ‘색실누비공방’은 한 땀 한 땀 누빔으로 완성되는 수공예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곳. 이곳을 운영하는 김윤선 선생은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증조할머니가 손수 만든 누비 쌈지에 감명을 받아 색실누비를 시작, 30여 년 동안 유물로만 전해 내려오던 박물관 속 색실누비를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

5대째 가업 이어온 금박장 김덕환 장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김덕환 장인

 

 

 

 

예로부터 영원불변, 아름다움, 권위의 상징이었던 금. 중국과 일본, 서양에서는 주로 건축의 내외장 혹은 가구 등의 공예품으로 이용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비단 등의 원단 위에 목판화의 기법을 응용한 형태로 금박공예를 활용해 왔다.

조선 철종 때 1대 금박장 김완형으로부터 명성황후의 국장을 위해 황실장인으로서 금박을 한 2대 김원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을 위해 일한 3대 김경용,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인 4대 김덕환 장인과 아들 김기호 내외에까지 5대에 걸쳐 가업을 전승하고 있는 ‘금박연’에서는 왕실공예문화의 흐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체험관에서는 금박문양카드와 금박을 비단으로 제작된 전통 서표(書標)에 올리는 체험 등이 가능해 전통문양과 글자마다 기원과 소망을 담아내는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불교미술에도 현대를 색칠하자” 북촌가 김도래 씨

 

◀불교미술의 현대화 ‘북촌가’ 김도래 씨
북촌의 전통 불교미술을 만나러 찾은 ‘북촌가’에서 ‘새파랗게’ 젊은 처자가 탐방단을 맞아 한참을 기다리는데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는다.

 

북촌의 전통 불교미술을 만나러 찾은 ‘북촌가’에서 ‘새파랗게’ 젊은 처자가 탐방단을 맞아 한참을 기다리는데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는다.

단청과 탱화를 그리는 명인이라는 말에 기대했던 나이 지긋한 주인공은 결국 나타나지 않고 갓 마흔 넘은 젊은 미술가 김도래 씨가 자신을 소개했다.

승려출신으로 불교미술을 하던 선친 김익홍 선생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하게 된 김도래 씨는 단청장 홍창원 선생의 문하에서도 그림을 배웠다.

젊은 미술가답게 고려 때는 고려미술이 있었듯이, 현대에는 현대미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김 씨는 담징의 금당벽화를 재현하는 데 열정을 쏟을 뿐만 아니라 천연쪽을 사용해 현대적 감각의 불화를 선보이기도.
화재로 소실됐다가 복원된 숭례문의 단청을 일본제 물감으로 그렸다는 말에 안타까움을 느낀 김 씨는 국산물감을 개발하는데 직접 뛰어들어 결국 국내 물감업체와 제휴해 국산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도시와 전통의 만남 북촌, 북촌사람들 

고속성장이 일궈낸 아시아의 허브도시 서울, 빼곡히 들어서고 있는 고층빌딩 숲을 헤치고 지금 북촌은 전통 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화를 토대로 서울의 새로운 명승지로 발돋움 해나가고 있다.

그 곳에서 장인들이 전통의 멋을 옛 것 그대로, 때로는 현대의 멋을 가미해 함께 공존하며 ‘북촌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서울사람들은 서울사람들답게, 남도사람들은 남도사람들답게 살아가는 것이 제 멋에 겨워 사는 것일 터, 하지만 전통을 되살린다는 명목으로 사는 사람도 없고, 한옥의 전통마저 벗어 던진 북촌 한옥마을이 민속촌과 다를 바 없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북촌가꾸기사업을 역이용한 투기세력들이 ‘무늬만 한옥’인 마을을 만들어 내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의 원형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를 타산지석으로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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