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회색인이 필요할 때

▲조성환 편집국장
미래산단 사태가 지역의 중심 이슈가 됐던 지난 5~6월께 여기저기서 미래산단과 관련 얘기를 나누던 지인들 간에 열을 내며 논쟁을 벌이는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했다. 

 더욱이 그 당시엔 여기저기 언론에서 미래산단과 관련 문제점들을 지적해 놓았던 터라 서로  간 찬반논쟁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은 결론도 없이 감정만 서로 상하고 끝내는 것이 결론이라면 결론이었다.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은 미래산단 사태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이슈가 발생했을 땐 항상 찬반양쪽이 극명하게 나뉘어져 상대의 주장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주장만 펼치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혹, 중간의 입장에 섰다간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아주 대화에서 밀려나 버리는 것은 또 다반사였다.

 분단국가이자 군사정권의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우리가 중(中)의 의미를 배척해왔던 그 영향이 아직도 우리의 사고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당시 군사정권은 흑백논리 또는 이분법적인 논리에 의해 선과 악을 구별지었다.

 중(中)은 없었다.

 또한 이에 극렬하게 대항해 왔던 세력 역시, ‘내편 아니면 네편’이라는 인식으로 줄을 세워왔다.
그래서 중(中)은 항상 사꾸라가 됐고 여기도 저기도 아닌 회색분자가 됐고 결국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혀 비난을 받았다.

 과거의 이같은 기준에 의해 사회를 보는 잣대는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중(中)은 좋지 않은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난 이제 지역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회색인(中)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전에 사람들은 중(中)을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중(中)이라고 생각했다.

 양쪽의 눈치만 보는 것이 중(中)이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사실, 중(中)은 이쪽도 저쪽도 깊게 알아야만 중(中)의 길을 갈 수있다.  

 회색 역시, “흰색도 아니고 검정색도 아니다”가 아니고 “흰색과 검정색을 함께 썩어놓은 것”이 회색인 것이다.

 문제점을 정확하게 알고 양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갖고 있는 것이 중(中, 회색)이다.

 민족문화콘텐츠 연구원 박재희 원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또한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역동적인 균형을 중(中)”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中)은 한순간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균형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中)이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이유이다.

 지역사회의 이슈엔 항상 두 가지 논리에 의한 논쟁밖에 없다.

 하나는 찬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반대이다.

 중간은 논쟁에 끼어들 수도 없다.

 갈등을 조정할 존재(中, 회색인)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이슈는 항상 결론도 나지 않고 시끄럽기만 하다.

 이제는 회색인(?)들만이 이러한 토론문화를 바꿀 수 있다.

 양쪽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이슈의 중간 점(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회색인들.

그들이 이제 우리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다원성의 시대인 지금은 회색인이 그 사회의 중심에 서야할 때이다.

 지금까지 누구나 지역사회의 발전을 말한다. 하지만 회색인(?)이 되긴 싫어한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지역사회발전은 그들 손에 달려있다.  우리 모두 주저하지 말고 회색인(中)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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