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서독 정부는 통일에 대한 첨외한 이해관계를 서두르지 않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했다”

▲김남홍 본지 사장
안보연수라는 꽉 짜여진 일정을 앞두고 여기서 해야 할 업무를 밤샘하면서 새벽버스에 몸을 실었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3개국 중 먼저 독일 베를린으로 떠나게 되었다.

 물론 하루사이에 먹는 것, 잠자는 것이 바뀌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23년 전(1990년) 동서독으로 분단된 나라가 통일을 이룬 독일을 보면서 국민의 위대함과 당시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어 철의 장막을 보면서 회안에 갖게 하였다. 필자는 군 생활을 최전방에서 하였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의 삼각지역인 강원도 철원 김화 평강(북측지역) 이곳은 북녘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며 철의장막이나 다름없는 2중 철책이 있는 곳이다.

 3년이란 군 생활을 하면서 봄?가을이 되면 북녘 땅을 오가는 철새들을 보면서 언제 우리는 통일이 될 수 있을까.

 그 세월은 40년이 넘었고 분단 반세기를 훨씬 지났어도 아직도 지구상에 홀로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는 분단국가로 남아있지 않은가.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지도자로 인해 정치적 노선이 바뀌는 현실을 보며 오직통일을 바라는 국민과 1천만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독일과 같은 통일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시 독일통일의 배경을 보면 서독은 부강한나라, 동독을 공산정권에 의한 빈곤한 나라였지만 그래도 늘 한민족이 하나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당시 서독의 브란트 수상의 굳은 의지와 동독은 슈토프 수상이 만남으로서 성사되었다.

 1970년 5월에 열린 제2차 카셀(kassel) 정상회담에서 동·서독 간 완하된 조건하에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개선된 협력관계 즉 대화와 타협을 이룰 수 있도록 함으로서 국민적 희망을 갖게 하였다.

 물론 통일을 이루는 과정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복잡하고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었지만 양자 간의 할 수 있다는 가진 자 서독의 양보로 이루어 졌으리라 생각한다.

 첫째로 가진 것이 많은 부국 서독정부의 적극적인 대(對) 동독정책을 들 수 있다.
사회주의의 단점인 빈곤과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경제적인 혜택을 주었고 자국의 실업위기 및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수하면서 동서독간의 국민의 생활조건의 동일화 실현에 목표를 두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서독정부는 우선 통일보다도 평화공존을 할 수 있도록 국제적 환경 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당시 서독 정부는 통일을 앞두고 강대국인 소련과 주위의 사회주의국가들 간에 첨외한 이해관계를 서두르지 않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비록 어려운 배경 속에 통일을 이루었지만 결론으로는 GNP 4만여불 이상의 선진국으로 잘사는 나라 부강한 나라 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범국가로 그 전쟁을 이해하고 참회하면서  독일 수상이 직접 참살 현장에 와서 사죄를 하는 나라, 전쟁의 교훈을 반성 할 수 있도록 국민과 자국의 학생들에 매년 현장을 견학 보내는 나라.

 끝으로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나라 일본을 생각하면서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다음은  관광객이 매년 일억명이 넘는 작은 나라,  체코 프라하에서 격은 이야기를 을 올릴예정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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