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후보 정치인들 의 지식과 교양

/임준선 논설위원
흔히 교양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는 말이 해프게 쓰는것을 본다.

 교양이란 그리 해 픈 것일까. 교양이란 무엇일까. 교양있는 사람은 대체로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야 하지만 무엇일까. 교양있는 사람은 대체로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야 하지만 교육을 받았다고 반드시 교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양은 지식보다 우 위에 있는 것이라야 한다.
 

 지식은 있어도 무교양한 실레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진정한 교양이란 지식처럼 책에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현실에 있어서의 참다운 것과의 상시적 접촉에 의하여 인간 정신이 형성 되어야만 교양이 랄 수 있다.

 교육받은 사람도 이 정신형성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지식인 일 수는 있어도 교양인 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진정한 교양이란 항상 진보하는 상태에 있고 다이내믹한 것이라야 한다.

 그 진보의 바탕이 되는 지식은 있어야 하고 사물을 보고 판단 하는데 있어 세부적인 것을 추상하여 종합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따라야 한다.
 

 우리는 지금 내세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다만 그날 그날에 취생몽사의 양태로 지내고 있는 현상인듯하다. 말하자면 대원(大願) 대망(大望)이 있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할것이다.

 지금 우리시민들을 위한 정치인들의 싸움이면 나주가 망 할 수 없겠지,
자기 자신을 위한 사리사욕이기 때문에 나주가 망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탐내는 목적이 상대를 죽이고 자기를 보전하기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나주를 망하게 한것은 나자신이요 내가 왜?

 정치인으로 하여금 망하게 용허 하였나 그 책임은 곧 나에게 있다.
즉, 우리시민에게 있다.
그대는 나주시를 사랑 하였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돼라, 자기의 큰 적은 ‘자신을 정복한것’ 이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지 못하면 남에게 정복을 당 하고 만 것이다.
 

 우리 나주시민은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시민 각자 자기를 정복을 하는날 비로써 불행은 물러가고 행복만 찾아 올 것이다. 우리 나주의 지금 현재의 불행은 나주 사람 전체의 책임인 것이다.
희랍에 유명한 철학자는 당시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돌아 왔을 때 이 철학자는 세계를 정복한 왕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세계를 정복 했으나 아직도 큰 적이 남아 있으니 이제 당신은 곧 당신 자신을 정복하시오”,라고 말하였다.
 

 민주주의 특권에는 중대한 책임이 따르른 것이다. 이 책임은 우리의 특권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책임은 우리 이웃사람과 우리 친구와 기타 시민의 정당한 소망을 존중하는데 있다. 사람은 각각 자기의 책임을 다할 때 타인의 특권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나주에 정치인 들이여! 지식은  한정된 것이고 정적인 것이지만 교양이란 정신형성의 과정으로 동적인 것이다. 그래서 가스통 베르제 같은 철학자는 교양은 전망적인 것이라고 까지 했다.

 도 부아스라는 철학자가 결정적으로 교양 있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고 교양을 이루어가는 사람만이 있을 수 있다고 한것도 같은 취지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젠 자기 교양이 다 이뤄졌다는 사람은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인간의 정신활동의 결과를 흡수하는데 뒤져서는 안된다.

 이러고 보면 교양이 있다. 없다는 말은 해프게 쓸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교양 있는 쪽으로 지향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일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 (국회? 시장)에 후보들 지식은 있으되 교양이 풍기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따지고 보면 누구든지 놀랄것이다.

 더구나 그런 사람이 나주시에 후보자가 되어 사회의 여러 지도적 위치에 있을 때는 기가 막힌 노릇이다.
나주에 후보자 (국회· 시장)들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는 누구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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