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 (50)...꿩의바람꽃(竹節香附)

▲김진수 회장/ 전남들꽃연구회
학명: Anemone raddeana Regel

쌍떡잎식물강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초

한국 자생식물인 『꿩의바람꽃』은 표토층이 깊은 낙엽수림 속이나 산기슭에서 자란다. 이른 봄 마치 꿩의 목깃과도 같은 머플러 잎을 목에 두르고 작은 꽃송이를 도리반거리는데, 새치름한 소녀처럼 여간 가엾지 않다.

속명 아네모네(Anemone)는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란 뜻이다. 이른 봄부터 숲바람을 흔드는 가녀린 꽃모습의 이미지에 썩 어울린다.

여기엔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아네모네를 사랑하였는데 그녀를 시샘한 꽃의 신 플로라가 아네모네를 꽃으로 변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꿩의 바람꽃

영명도 바람을 뜻하는 ‘윈드플라워(Windflower)’이다.

꽃의 형태나 사는 지역이 다양해서 ‘바람’ 자 앞에 붙는 접두사도 다양하다. 한국에는 꽃대가 하나인 홀아비바람꽃, 둘인 쌍둥이바람꽃을 비롯하여 외대바람꽃, 회리바람꽃, 국화바람꽃,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숲바람꽃 등 약 14종이 분포한다.

대개 3~4월에 꽃을 피우는데, 이 중 가장 일찍 시작하는 변산바람꽃은 er(봄)와 anthos(꽃)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에란디스(Eranthis) 속 식물이며, 바람꽃의 대표 격인 「바람꽃」은 정작 한여름에 꽃을 피운다. 한자 이름으로 은련화(銀蓮花), 다피은련화(多被銀蓮花), 은련향부(銀蓮香附), 죽절향부(竹節香附) 등이 있다.

▲나도 바람꽃
「바람꽃」은 해 뜨기 전이나 날이 궂을 때, 또 저물녘이 되면 화피를 닫아버려 탐화가들의 방문을 무색케 한다. 새봄으로 일찍 피었다 무심히 사라지는 이 식물의 꽃말은 ’덧없는 사랑’이고, 할미꽃이나 얼레지가 그렇듯 처음엔 수줍은 듯 땅만 굽어보다가 차차 푸른 하늘을 향해 우러르는 모습에선 ‘사랑의 괴로움’같은 꽃말이 그럴싸하다.

다사로운 것이 다사로웠는지 묻소 평생을 하루 같이 그리운 것이 그리웠는지 묻소 밤이 그 밤을 보듬고 낮이 그 낮에 안기어 사랑스러운 것이 끝내 사랑스러웠는지 묻소 그대는 진작에 봄이 되었는지 묻소 바람이 어제 다르고 꽃이 오늘 다르다한들 이승에 필 것이 기필코 피었는지 묻소   - 졸시 「바람꽃」 [전문]

바람꽃의 약명을 은련향부(銀蓮香附), 죽절향부(竹節香附)라 하는데 ‘은련’은 흰 꽃에서, ‘죽절’은 줄기를 앞세운 접두사로 보이고 뒤에 붙은 ‘향부’는 이 식물의 뿌리가 사초과 방동사니속의 작은 뿌리줄기인 향부자(香附子: 약명)와 흡사한 데서 온 것이다.

바람꽃의 식생은 역시 사람의 병에도 적용되어 이른 봄 찬바람에 상해 관절이 무겁고 통증이 있는 풍한습비(風寒濕痺)라든가 바람에 상한 감기(풍한감모)를 치료하는데 이 식물의 따뜻하고 매운 맛을 이용한다.

중국의 한 임상시험에서, 바람꽃의 유효성분인 아네모닌은 무균 염증에 의한 난치성 신체질환에 현저한

▲변산 바람꽃
치료효과를 보인다고 하였다.

식물 스트레스 1위는 저온이라 한다. 첫봄으로 피기 시작하는 복수초 같은 키 작은 친구는 다발성 수염뿌리를 땅속에 잔뜩 틀어쥐고 있으며 깽깽이, 처녀치마, 노루귀도 마찬가지이다.

현호색은 땅속 깊이 은행 알 만한 괴경을 감추고 있어 이 힘으로 바람받이 차디찬 숲속에서도 여린 꽃모가지들을 싱그럽게 흔들어댄다. 이처럼 일부 키가 작은 식물들은 곧 무성해질 둘레의 키 큰 식물들의 시간대를 벗어나 일찌감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존전략을 펼친다.

사람으로 치면 높고 고독하고 외딴 데서 얻은 지혜로움에 선구자적 어진 삶의 자세는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으로 약점을 극복하는 역사는 인류나 자연이 매한가지다. 찬바람 속에서 일찌감치 다녀가는 바람꽃의 생리가 번듯하고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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