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순
취재기획국장
네 모습은 숯처럼 검게 타
예전의 사랑스러운 얼굴 다시 볼 수 없구나
너의 어여쁜 얼굴은 황홀하여 기억조차 희미하니
우물 밑에서 별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구나
네 영혼은 눈처럼 맑고 깨끗하여
훨훨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들어갔구나
구름 속은 천리 만리 떨어져 있어
부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부모를 여읜 슬픔을 천붕(天崩), 하늘이 무너져 내림과 같다 했던가. 그런데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은 뒤 아비로서 찢어지는 심경을 기록한 다산의 글을 보니 이 역시 겪어보지 않고는 어림잡기 힘든 노릇인 듯하다.

다산은 모두 6남3여를 낳았다. 이중 무탈하게 장성한 자식은 2남1여. 무려 6명의 자녀를 병마에 잃어버렸다.

‘유자(幼子) 삼동(三童)의 예명시’로 불리는 위 시는 불과 세 살 때 천연두로 죽은 아들을 묻으며 비통했던 다산의 심경을 담은 글이다.

삼동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밀입국으로 천주교 문제가 다시 정치적 쟁점이 되는 바람에 다산이 충청도 금정찰방으로 좌천돼 있다가 1년 뒤(1796년) 돌아와 잉태한 아들. 다시 한양으로 귀경한 데다 아내가 임신하고 건강한 아들까지 태어나자, 다산은 세 가지 기쁨을 담아 삼동(三童)이라고 불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그만 천연두에 걸린다. 발진이 먼저 닥치고 이어 아이는 똥오줌도 제대로 누지 못한 채 끙끙 앓다가 급기야 입술과 잇몸까지 헐어 들어간다. 이를 지켜보는 다산은 “얼굴색이 숯처럼 검게 타버려 예전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다시 볼 수 없다”며 절규한다.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아들 얼굴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졌을까. 이런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삼동은 결국 숨을 거둔다. 그러자 다산은 하늘로 떠나는 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네 영혼은 눈처럼 맑고 깨끗하여 / 훨훨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들어갔구나”라고. 그러나 단장을 끊는 아픔은 가시지 않은 채 더 커지기만 한다.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세월호 참사를 지척에서 전해 들으며 창자가 도막도막 잘라지는 듯한 단장의 아픔을 느낀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엄마 말 못 할까 봐 미리 보내 놓는다. 사랑해.’

짧은 유언을 남기고 떠난 단원고 2학년 신영진 군의 문자 메시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목울대가 뜨거워지고 눈물이 솟구친다.

부인에게 “배가 기운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안심하라”고 말하며, “내가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많아 구해야 한다”며 통화하고 연락이 끊겼다는 승무원 이 모씨.

4년 연애 끝에 오는 9월 결혼을 약속했으나 사고로 함께 숨진 이벤트업체 종업원 김기웅 씨와 승무원 정현선 씨. 그 어느 누구 한 명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다.

이런 와중에 초등학생 작은딸이 학교에서 휴대폰 액정을 깨뜨렸다며 “엄마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집에 못 들어가겠어. 내가 안 태어났으면 엄마 힘든 일 없는데...난 진짜 불효녀 인가 봐” 이런 문자를 날려놓은 것을 보며 외쳤다.

“이 녀석아, 휴대폰 액정이 대수냐? 네가 지금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하다.”
내 아이,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을 위해 오늘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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