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만병의 묘약

학명: Albizia julibrissin Durazz.
쌍떡잎식물강 콩목 콩과 자귀나무속의 낙엽아교목

▲김진수/들꽃연구회장
『자귀나무』는 금슬을 상징하는 나무다. ‘거문고와 비파의 음률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의 한자‘금슬(琴瑟)’은 부부간의 정을 이르는 원말이다.

낮에는 펼친 잎새 위에 정염의 꽃불을 놓다가 저물면 속눈썹을 씀벅이듯 잎을 접고 잠에 든다.

마치 금슬 좋은 부부가 꼭 껴안고 자는 그림을 연상하여 자귀나무를 「합환목(合歡木)」,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라 부른다.

하나 같이 일주기(日週期)의 수면운동(睡眠運動)에서 비롯된 이름들이다.

꽃말도 사랑, 환희, 가슴 두근거림으로 동서양을 망라하여 남녀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희락의 뜻을 실었다.

또 바짝 마른 콩꼬투리 열매가 바람을 흔들어 서걱대는 소리를 ‘여자들의 수다’에 비유하여 「여설목(女舌木)」이라고도 한다.

또 소가 잎을 잘 먹는다 해서 「소쌀밥나무」라고도 하는데, 새벽 같이 일어나 소를 몰고 밭에 나갔다가 돌아와 묵묵히 사립을 닫는 농사꾼부부처럼 귀가길 저물녘의 자귀꽃은 더욱 붉고 아름답다.

나무는 속성수로서 수명은 그만큼 짧고 꽃은 두어 달 오래 피는 편이다. 예로부터 자귀나무에 움이 트면 파종을 했고 첫 꽃이 필 때 팥을 심었다한다.

『자귀나무』는 봄꽃이 사라진 6월에서 시작하여 8월까지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여름나무다.

꽃은 활짝 편 후투티의 모관이나 공작의 꼬리 같다.

긴 잎줄기는 툭 꺾어 통째로 떨구는데 한겨울 앙상한 가지의 허전함이란 빈집 같다. 대체로 추위에 약해서 중부 이남에서 많이 자란다.

『자귀나무』는 무릇 사람을 따르는 식물이다. 어둡고 서늘한 깊은 숲에서는 살지 않고 인간들의 마을, 바람이 잘 통하는 탁 트인 논이나 밭 주변에서 흔하다.

층층나무나 산딸나무처럼 잎과 가지를 우산처럼 펴들고 그 위로 솜털 같은 분홍 꽃을 쉬지 않고 터트리는데, 편평하여 융단을 깔아놓은 듯 곱다.

종명 율리브리신(julibrissin)은 페르시아어로‘비단꽃(Silk flower)’인바 역시 잘 어울린다.

속명 알비지아(Albizzia)는 18세기경 자귀나무를 유럽에 처음 소개한 이탈리아 귀족 아인슬리에(Whitelaw Ainslie)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이 원산지이고, 우리나라 남부와 제주에는 한국 특산의 「왕자귀나무(잎이 훨씬 크고 수술이 많으며 꽃이 흰 것이 특징)」가 자생한다.


우리 이름 『자귀나무』의 유래는 확실치 않다. 다만 ‘자귀’는 ‘까뀌’라고도 부르는, 원래 나무를 깎고 다듬는데 쓰이는 연장에 잇닿은 것으로 본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줄기가 미끈하며 곧은데다 가공이 용이하다.

전라도지방에서는 흔히 도끼나 농기구 같은 작은 연장의 손잡이를 만들어 썼으며 이 나무를 노인들은 ‘자귀대’, ‘짜구대’라 부른다.

『자귀나무』는 분명 ‘애정목(愛情木)의 상징’이 강하다.

그렇지만 싫을 때도 있다. 꽃이 만발한 날 사랑하는 남녀가 나란히 나무 아래 앉기라도 하면 사랑은커녕 곧 진득거리는 ‘꿀비’와 곤충들의 ‘똥비’를 맞는 낭패를 보게 된다.

연인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공원의 주차장이나 너럭바위 곁에 정자나무로 심는 것은 모름지기 사려 깊은 조경은 아니다.

『자귀나무』의 생약명은 「합환피(合歡皮)」이다. 맛은 달며 떫고 향긋하다. 어린잎과 꽃은 차로 마시고, 줄기나 뿌리껍질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채취하여 쪄서 말려두었다가 다른 약재와 함께 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합환피는 성질은 한열에 치우치지 않고 평하며 맛은 달고 독이 없다.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과 뜻(心志)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고 즐겁게 한다’고 적었다.

「합환피」는 간경, 심경, 비장경에 작용하여 울결을 풀어주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경맥을 잘 통하게 한다. 사랑은 만병통치의 묘약이라 했다.

슬픔과 분노의 자귀나무 한 그루 꺼내어 달콤한 줄기에 포근한 잎을 달고 환상의 꽃대에 설레는 열매를 매달아 지난날 내 앓던 이를 모두 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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