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좋게 쓰면 좋은 직업이고, 나쁘게 쓰면 지랄 같은 직업이제”

나주장에서 보낸 40년 인생, 양은그릇 팔다 칼 갈아주던 일이 이제는 본업으로 굳어져

돈벌이 안 돼도 단골고객들 실망 끼치지 않기 위해 애써 목사고을시장 지키는 터줏대담

 

▲30년 칼갈이 인생 목사고을시장 방진안 할아버지
흔히 재래시장이라고 불리는 오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언제부터 오일장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전라도 지방에 기근이 심해 이를 극복하려고 ‘장문(場門)’이라는 향시가 열렸다는 신숙주(申叔舟)의 주장을 오일장의 시초로 본다면, 이는 대체로 15세기 중엽 이후가 된다. 목포대학교 고석규 교수에 따르면, 영산강이 흐르는 남도에서 최초로 장시(場市)가 섰다고 한다. 중종실록에 1470년(성종1년) 장문(場門)이라는 이름의 시포(市鋪)가 나주에서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나주와 무안의 장시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장문이었다는 것.면면히 내려오던 오일장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설시장이 생기면서 위축되기는 했으나, 오늘날까지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2년 전 나주 오일장과 매일시장이 합쳐져 만들어진 오늘의 목사고을시장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라는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오랜 세월 남도의 물산과 경제, 서민대중의 문화와 소통의 근거지였던 나주장, 전남타임스와 나주목사고을시장 문화관광사업단(단장 조진상, 동신대 교수)이 공동기획으로 서민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맡아왔던 목사고을시장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무더위와 한판 승부 여름장날

말복과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낮의 무더위에 아스팔트 도로가 녹아드는 것 같았던 지난 9일 장날 오후. 바람 한 점 없는 그 무더운 오후시간을 간이 가림막과 부채 하나로 견뎌내고 있는 목사고을시장 5일장 상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썩 개운치 않았다.

무더운 날씨에 마늘, 양파도 녹아드는지 매운 내가 훅 풍겨왔다. 물건도 사지 않으면서 말을 건네는 것이 결례일 것 같아 가만 가만 그늘을 찾아 지나가며 “많이 도우시죠? 고생하시네요.” 인사를 건네는데 “태풍 불어갖고 텐트 확 뒤집어 지는 것 보단 낫구만!” 양파장수 아주머니의 호방한 대답에 같이 따라 웃는다.
그렇게 한참 장 구경을 하고 있는데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다. 칼을 가는 아저씨(?)다.

30년 동안 칼만 갈아 온 방진안 할아버지

짙은 구릿빛 얼굴에 제법 주름이 진 칼갈이 아저씨는 옆에 누가 와 기웃거리는 것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숫돌에 물을 뿌려가며 칼을 열심히 갈고 있다.

▶칼을 갈 때는 그 어떤 잡념과 잡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칼날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양 손으로 칼의 손잡이와 끝을 각각 잡고 위 아래로 밀고 당기며 칼을 갈았다. 잠시 멈추어 칼날을 눈에 가까이 대고 살피거나 엄지손가락 피부 감각으로 날카로움의 정도를 가늠하곤 했다.

어릴 적에 동네 어귀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을 오랜만에 보았다. 숫돌 옆에는 십여 개의 칼들이 얌전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큰 칼, 작은 칼, 새 칼, 낡은 칼, 부엌칼, 과일칼...

한참 만에 갈던 칼을 지긋이 바라보던 아저씨는 그때서야 옆에서 말 걸기를 기다리던 기자에게 눈길을 준다.
“칼 가시게?”
“아뇨. 칼 가시는 것 구경 좀 할라고요.”
“칼 가는 것이 뭔 구경이라고... 일도 없소.”

이렇게 해서 알아낸 칼갈이 아저씨의 이름은 방진안(74·나주시 학생운동길)씨. 나이를 드셔봐야  환갑이나 지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칠순을 넘겼다니 아저씨라는 말이 무색했다.

방 할아버지는 나주장과 영산포장, 장흥장 등을 돌며 닷새 중 하루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오일장을 돌며 칼을 갈아 온 세월이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보다 10년쯤 전에는 양은그릇을 파는 양은전을 했는데, 칼을 사간 손님들이 칼이 안 든다고 가져오면 A/S차원에서 칼을 갈아주었는데, 어찌나 칼 가는 솜씨가 좋았던지 한번 칼을 사 간 사람들은 새 칼을 사갈 생각을 않고 늘 갈아가기만 하더라는 것. 그러다 보니 양은그릇 장사를 접고 전문 칼갈이로 전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

집안에 없어서는 안 될 칼 그러나...

방진안 할아버지는 칼에 대해서만큼은 철학자 이상의 식견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칼은 이기(利器)이면서 흉기도 된다. 요리를 할 때 그것은 이기이지만 범죄용으로 쓰인다면 흉기가 된다는 것. 또 마음으로 가는 말도 흉기가 된다고 했다. 마음속에서 날카로운 날을 세운 칼은 현실에서 흉기로 사용되어지기 십상이다. 칼 같은 말로 남을 함부로 찌르거나 때로는 실제 칼로 해치기도 한다.

방 할아버지는 칼 주인에게 간 칼을 돌려주기 전에 칼로 종이를 잘라 보이며 칼날의 성능을 확인시켜 주었다.

날선 칼로  한손에 쥐어진 낱장의 종이를 세로로 단번에 잘라 버렸다. 그걸 본 주인들은 다들 만족한 표정으로 칼을 받아갔다.

방 씨 할아버지를 바라보면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흔히 다른 사람에게 복수심을 불태울 때 마음 속에 칼을 간다고 하지 않던가?

“칼은 숫돌로만 가나요? 마음으로 칼을 간 적은 없으세요?”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대꾸도 없이 또 칼 갈기에 전념하는 할아버지. 저렇게 잘 갈아진 칼로 악한 생각, 상한 마음, 썩은 마음을 베어 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답답하고 부패한 세상 단 칼에 단죄하는 방법을 없을까 혼자 생각에 빠져있는데 “칼로 장난하는 놈들 치고 잘 되는 놈들 하나도 못 봤어. 딱 보면 이게 어디 쓸 칼인지 알지. 그런 놈들 몇 봤는데 ‘아나, 이놈들아’ 하고 던져 불고 말지, 그런 놈들 칼은 안 갈아, 내가.”

칼 가는 법 영업비밀이지만...

방 할아버지에게 집에서 간단히 칼을 갈아 쓰는 방법을 묻자 “영업비밀!”이라며 딱 잘라 거절을 하신다. 그래도 긴히 칼을 쓰려는데 안 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조르자, “어허~ 그거 갈쳐주면 손님 떨어지는디...” 하면서 몇 마디 건네주신다.

좋은 칼은 자신에게 알맞은 칼이라고 한다. 그리고 잘 갈아 쓰는 칼이라야 한다. 세상에 그 어떤 칼이라도 쓰면 쓸수록 무뎌지기 때문에 칼은 만드는 재료의 성질, 두께, 열처리 한 강도에 따라서 차이가 나게 된다는 것.

가정에서 쓰는 칼 중 보편적인 일반 식도를 살펴보자. 음식을 조리할 때 야채, 과일 등과 육류, 어류, 패류 등을 주로 많이 다루기 때문에 칼에 녹이 안 나는 것은 기본이고, 적은 힘으로 썰려야한다는 것.

하지만 칼 한 자루로 만능으로 쓰고 싶은 것이 소비자의 욕심이다. 야채가 잘 썰리려면 칼이 얇아야 하고, 고기가 잘 썰리는 칼은 칼날이 예리하게 선 칼이다.

칼을 자루 쪽에서 날 쪽으로 뒤집어 보면 칼이 얼마나 얇게 갈려 있는지 알 수 있다. 수입 브랜드 칼이나 일부 자루를 칼에 접합해서 만든 칼은 접합부 때문에 칼날의 두께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칼날이 얇은 칼은 날 끝만 갈아주는 옥갈기로 갈아주어도 칼이 잘 들고, 칼날이 두꺼운 칼은 벗갈기로 칼을 갈아 주어야 칼이 잘 든다.

옥갈기란 숫돌과 칼날이 이루는 각이 30도 이상 되게 해 칼을 가는 방법, 벗갈기란 각도가 5도 이하로 하여 칼을 가는 방법이다.

일반 가정에서 칼이 잘 안 갈린다고 하는 이유는 숫돌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다. 칼을 갈 때 힘을 주는 방향이 잘못 된 경우엔 쇠만 닳아지고 날이 서지 않는다.

숫돌의 거친 정도는 숫자로 나타낸다. 800방, 1000방, 1200방 등등 숫돌이나 사포(샌드페이퍼) 등의 거친 정도를 표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칼갈이는 연마제가 거칠어 숫돌보다 갈기 편하고 잘 갈리는 것 같아서 주부들이 선호 한다. 그러나 칼갈이는 숫돌만큼 예리하게 날이 서지 않고 끝날만 갈아주게 되어서 칼이 점점 두꺼워진다는 것.

그러므로 칼을 좀 갈아 본 사람들은 숫돌에 갈아 쓰는 것이 훨씬 잘 들고 좋다고 말한다.

돈 안 되도 찾는 사람 있으니 평생직업

손재주가 많아 젊었을 때는 면사무소 호적서기도 해봤고, 새마을지도자도 해봤지만 진짜 해보고 싶었던 일은 자동차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카센터를 운영해보고 싶었다는 방 할아버지.

하지만 지금은 이미 때가 늦었고, 하루하루 몇 만 원 벌이가 고작이지만 칼을 갈아 쓰기 위해 장을 찾는 단골손님들을 기다리는 것이 평생직업으로 굳어졌다고 말한다.

평생 칼을 만지며 살았지만 절대 마음으로 칼을 가는 일이 없어야 하고, 칼 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혀로써 내뱉는 말이라고 말하는 방진안 할아버지.

그가 갈아주는 칼은 어찌 보면 날카로운 비수이기는 하지만, 가족에게 기쁨과 건강을 주고자 하는 알뜰한 주부의 맛있는 요리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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