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라면 질색이던 까칠한 도시처녀 서세경 씨 “나주·영산포 통틀어 홍어썰기 달인”

흔히 재래시장이라고 불리는 오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언제부터 오일장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전라도 지방에 기근이 심해 이를 극복하려고 ‘장문(場門)’이라는 향시가 열렸다는 신숙주(申叔舟)의 주장을 오일장의 시초로 본다면, 이는 대체로 15세기 중엽 이후가 된다. 목포대학교 고석규 교수에 따르면, 영산강이 흐르는 남도에서 최초로 장시(場市)가 섰다고 한다. 중종실록에 1470년(성종1년) 장문(場門)이라는 이름의 시포(市鋪)가 나주에서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나주와 무안의 장시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장문이었다는 것.면면히 내려오던 오일장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설시장이 생기면서 위축되기는 했으나, 오늘날까지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2년 전 나주 오일장과 매일시장이 합쳐져 만들어진 오늘의 목사고을시장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라는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오랜 세월 남도의 물산과 경제, 서민대중의 문화와 소통의 근거지였던 나주장, 전남타임스와 나주목사고을시장 문화관광사업단(단장 조진상, 동신대 교수)이 공동기획으로 서민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맡아왔던 목사고을시장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맛없는 홍어는 홍어 아닙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해 겨울, 나주 매일시장 홍어장수 아들 박제민 씨는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모임을 갖고 있었다.

그때 울리는 전화 벨소리, 어머니 김옥금 여사로부터 긴급호출이다.

“아야, 먼 데서 손님이 일부러 찾아 왔다는디, 홍어를 마리로 산다고 하니까 네가 언능 와야 쓰겄다.”
때마침 흥이 올라있던 제민 씨는 “엄니, 나 중요한 모임이라 지금 못간께, 빨간 다라이(대야)에 있는 놈 챙겨주쇼잉.”

말귀를 제대로 못 알아들은 제민 씨 어머니는 색깔이 빨간 홍어를 달라는 줄 알고 손님에게 엉뚱한 홍어를 내주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자초지종을 알게 된 제민 씨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생면부지의 손님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제민 씨가 팔라고 한 홍어는 숙성이 잘 돼 있던 홍어였고, 어머니가 내 준 홍어는 미처 숙성이 덜 된 홍어여서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것.

“기왕 팔아분 홍언디 그냥 냅두지, 뭘 또 바꿔준다고 호들갑이냐?”
“그러면 그 손님이 두 번 다시 우리 가게 안 오지라우. 아직 맛도 안든 홍어를 파는 건 막보기 장사밖에 안 된당께요.”

제민 씨는 어머니가 손님과 나눈 몇 마디 대화를 실마리로 삼아 나주 사는 사돈네 팔촌까지 물어물어 손님을 찾아 나섰다.

이윽고 엄동설한에 홍어를 바꿔주겠다고 찾아 온 홍어장수 제민 씨에게 손님은 “그냥 먹어도 될 것인디,
뭔 이런 수고를 다 한다요?”라며 오히려 민망해 했다.

하지만 그 손님은 그 이후 지금까지 제민 씨와 가장 절친한 단골손님이 됐다. 그가 바로 장성에 사는 김평수 씨였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홍어장사

나주 목사고을시장의 신세대 상인으로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박제민(41)씨와 서세경(41)씨 부부. 어린 나이에 친구로 만났다가 제민 씨의 잘 생긴 외모에 푹 빠져(?)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세경 씨의 고백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두 부부는 시장 내 소문난 ‘닭살커플’이다.

패기와 배짱 하나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던 청년시절, 제민 씨는 옛 금계동 매일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사업만큼은 절대 따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군 제대 후 먹고 살 일을 생각하자 막막했다는 것.

더구나 제민 씨에게는 당시 지켜줘야 할 여자 세경 씨가 있었고, 2000년도에 밀레니엄베이비로 아들까지 태어나면서 어깨가 무거워졌다.

마지 못해 부모님을 거들어 홍어장사를 시작하게 된 제민 씨. 하지만 한 달 월급이 50만원이었던 것에 비해 아버지 박연호(77)씨의 후계작업은 호되기만 했다.

그때 제민 씨는 부모님께 두 가지 제안을 하게 됐다.

다른 생선과 젓갈은 취급하지 말고 홍어만 팔자, 홍어도 칠레산 홍어만 팔자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홍어사업에 매진하게 된 제민 씨는 홍어 중간상인들에게 납품을 받던 홍어를 광주 수입상에게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갔다.

처음엔 중간상인들에 가져다주는 홍어만 받아 팔아왔지만 홍어에도 품질의 차이가 크다는 것과, 어떻게 숙성시키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홍어장수 아들에서 홍어장인으로

제민 씨에게 홍어장수로서 일대 전환기를 가져온 계기가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홍어를 납품하게 된 제민 씨. 신경 써서 최상급 홍어를 납품했지만 친구의 반응은 “문상객들이 다들 홍어가 맛이 없다고 하더라”하는 말을 듣는 순간 충격에 휩싸이게 됐다는 것.

그 뒤 5년 동안 홍어창고에 살다시피 하면서 홍어의 맛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고수하는 숙성방식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홍어를 그대로 두고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숙성된 홍어는 색깔도 선명하지 않은데다 맛도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됐다.

그래서 제민 씨는 정기적으로 홍어를 뒤집어 자리를 바꿔가면서 고기의 탄력과 풍미를 느껴 나갔다.

그렇게 해서 제민 씨가 만들어 낸 홍어맛은 첫맛은 심심하지만 씹을수록 알싸한 맛이 감도는 제대로 된 홍어였다.

대게 첫맛부터 톡 쏘는 맛이 나는 홍어는 몇 점 먹다가 질리게 되고 남도 특유의 음식맛인 게미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홍어의 껍질을 벗기는 것도 나름대로 비결을 터득했다. 기계를 사용해서 껍질을 벗기게 되면 쉽고 간편할 수는 있지만 물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맛이 싱거워 진다는 것. 그래서 제민 씨는 손으로 직접 홍어껍질을 벗기고 있다.

한두 마리 벗기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라고 하지만, 명절을 앞두고 하룻동안 200마리까지 벗긴 적이 있다니, 그런 날은 며칠 동안 젓가락을 집지 못할 정도로 손이 마비되는 직업병을 앓기도 했다.

그렇게 몸으로, 감각으로 홍어와 친하게 된 제민 씨는 사업을 도맡아 한 지 5년 만에 비로소 나주특산품으로서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매일홍어’를 브랜드화 할 수 있게 됐다.   
   
홍어숙성의 비결은 원초적 감각으로

홍어의 참맛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흑산도 홍어를 최고로 치지만 국내시장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귀하고 그나마 좋은 홍어가 칠레산 홍어다.

칠레산 홍어의 특징은 수분이 많고 찰지며 목에 넘어 가면서 박하향이 나기 때문에 홍어맛을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쉬운 대로 홍어의 2인자로 취급받고 있다.

그런데 올해부터 칠레산 홍어수업이 전면 중단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칠레산 홍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대게 7~8년생 홍어를 잡아야 하지만, 3~4년 된 어린 홍어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르자 칠레 정부에서 조업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매일홍어에서는 작년에 쿼터제로 주문해 놓은 홍어가 일부 조달되고 있어 내년 설 대목까지는 판매를 할 수 있지만, 올 추석이 지난 뒤에는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칠세산만을 고집해 온 제민 씨에게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궁여지책으로 우루과이산 홍어를 들일 수밖에 없게 됐지만 또 나름대로의 숙성기술을 개발해 칠레산 못지 않은 맛에 도전한다는 결심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홍어의 달인 “큰소리 뻥뻥”

광주가 고향인 세경 씨는 처녀시절 양동시장을 갈 때면 홍어전 옆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홍어냄새를 싫어했다.

그러다 제민 씨와 결혼을 하게 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홍어장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홍어를 썰게 됐고, 홍어의 색깔과 맛을 감별할 수 있어야만 했다.

서당개 10년이면 풍월을 읊듯 홍어장수 마누라로 15년을 지내오면서 이제는 나주와 영산포 통틀어 홍어썰기의 달인으로 손꼽히고 있고, 색깔과 모양을 맞춰 포장으로 담아내는 솜씨가 남다르다.

한때 국악을 꿈꾸는 까칠한 도시처녀가 나주로 시집 와 홍어장사를 하게 되면서 꿈을 접게 됐지만,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사회를 보는 송해에게 나주홍어의 진수를 맛보여줄 정도로 당찬 홍어아줌마가 된 것.
제민 씨도 홍어장사만큼은 하지 않겠다던 젊은 날의 다짐을 뒤로한 채, 이제는 홍어의 참맛을 개발해 가는 홍어장인으로서 2남1녀의 자녀 중 원하는 자녀가 있다는 함께 홍어가업을 일궈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매일홍어가 지향하는 신조 “홍어에 대한 믿음·소망·사랑은 항상 있을진대 그중에 제일은 청결”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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