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처럼 불을 켜는 꼿꼿한 사랑

▲김진수 회장 /전남들꽃연구회
학명:  Lycoris sanguinea var, koreana & 외떡잎식물 백합목 수선화과 꽃무릇속의 여러해살이풀

전남 장성 백양산에서 처음 발견하여 『백양꽃』이 된 상사화. 잎도 없이 외꽃대로 서서 꼭대기에 희거나 붉고 노란 꽃들을 빙 둘러(산형화서) 사방을 희번덕거리는 ‘등대’를 닮은 꽃.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이라... 꽃이 필 동안에는 잎이 없고, 잎이 돋아날 즈음 꽃은 사라져 일생 서로 바라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이 쓸쓸한 인연의 모양을 따라 「상사화(相思花)」라 호명하였으니 이로써 상사화는 인간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메타포가 아로새겨진 기이한 꽃으로 살아가게 된다.

상사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안타깝지만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이 병 같지 않은 병은 현대의학기술로도 고칠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병이라 하지 않은가.

사즉기결(思卽氣結), 생각이 지나치면 기가 뭉쳐서 순환이 되지 않는다. 소화도 안 되고 밤잠을 잘 수가 없다. 기쁘다가도 불안하며, 벅차다가도 졸이고, 우울하며 기가 막히고, 애간장이 타들어가 숯검정이 된다.

▲장성 백양산에서 처음 발견돼 ‘백양꽃’이 된 상사화. 꽃이 필 동안에는 잎이 없고, 잎이 돋아날 즈음 꽃은 사라져 일생 서로 바라볼 수가 없다.

花看半開(화간반개)
꽃은 반쯤 핀 것을 보고
酒飮微醉(주음미취)          
술은 약간 취기가 오른 정도로 마시면
此中大有佳趣(차중대유가취)  
참다운 아름다움이 그 속에 있다.
채근담(菜根譚) 중에서

그러매 사랑도 꽃을 기르는 햇살이나 비바람처럼 철따라 어지간해야지 불꽃같은 사랑에 시달리면 식기도 쉽게 식는 법이다.

몸은 사위어도 따스함이 그득하다면 이는 ‘반개’이고, 뜻은 말술이더라도 낱잔 술에 달빛으로 마시면 ‘미취’이니 인생이 어찌 참답고 아름답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말은 원래 생각의 양을 의미하는 사량(思量)에서 나왔다고 한다. 상사병(想思病)은 말 그대로 생각이 넘쳐서 생겨난 병이다.

『백양꽃』의 생약명은 「석구사(石球砂)」이다. 성은 뜨겁고 독성이 있다. 맛은 달고 매우며 쓰다. 위궤양, 간암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비늘줄기 속에는 라이코린(Lycorin)과 알칼로이드(alkaloid)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체내 수분의 흐름을 다스리며 응어리를 푸는 효능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강 상사병에 대응하는 약성들이다.

‘상사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들은 중국 원산의 「꽃무릇(석산)」이나 일본원산의 「상사화」, 남미원산의 「개꽃무릇」들이다.

『백양꽃』은 타래꽃무릇, 고려상사화, 조선상사화라 하듯 귀한 한국특산식물이다. 백양산을 비롯하여 거제도의 가라산과 부안, 임실, 신안, 영광, 산청 등지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에는 위도에서 자생하는「위도상사화」를 비롯하여 제주 특산의 「제주상사화」, 그리고 지역에 따라 「노랑개상사화」, 「붉노랑상사화」, 「흰상사화」 등이 자란다. 상사화가 8월 초에 피면, 백양꽃은 8월 말에 개화하고, 꽃무릇은 9월 말경부터 만개한다.

상사화 무리들을 보통‘무릇’이라 하는데, 한글명 무릇은 ‘무룻’에서 유래하였다. ‘물웃’이 그 옛말이라 하는데, 땅 속에 부추처럼 모두 동그란 알줄기를 달고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위도에서 자생하는 위도상사화

반하를 끼무릇이라 하고, 산자고를 까치무릇, 개감채를 두메무릇, 얼레지를 가재무릇, 개상사화를 달래꽃무릇이라 하는 것도 모두 같다.

백양꽃처럼 알줄기식 든든한 곳간을 가진 식물로서야 할 수만 있다면, 일반 풀 경쟁이 사라지는 가을에서 이듬해 오월까지 맘껏 잎을 내었다가 꽃을 피워야 할 여름에 다다라서는 쌓았던 알줄기의 힘을 꽃대 끝으로 집중하여 한번쯤 높이 고개를 치켜드는 일이 생의 목표요 보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리움’이란, 푸르게 애태우고, 붉게 참아내어 죽어도 꽃으로 사는 자들의 고적한 항해요 먼 등댓불은 아닐까. 그러므로 이승의 사랑이 포구처럼 완성될 때까지는 누구든 땅속 알줄기의 외로움 따윈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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