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시인, 나주 금안보건진료소장
마한을 보러가자.

마한을 즐기러 가자. 마한을 꿈꾸러 가자. 금과 은과 비단을 보배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물산이 풍족했던 마한, 나무로 만든 현악기를 뜯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술과 풍류를 즐기던 마한, 굳세고 용감했지만 이웃나라를 품으며 평화를 사랑했던 마한, 그래서 54개의 작은 나라로 나뉘어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 존중했던 마한, 피난 온 온조에게 식읍을 나누어주고 도와주었던 마한, 돌변한 백제의 위세에 무너져 내린 것 같지만, 마한은 오늘 우리 곁에 다시 부활한다.

마한의 문화는 개성화와 다양화다.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물처럼 소중한 오늘의 복지 사회에서 마한의 정신과 문화를 되살려볼 일이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웃음을 공유하는 일이야말로 박물관이 우리를 기다리는 이유이리라.

박물관의 오지랖 이밖에도 국립나주박물관은 캠핑카 등 여러 체험공간이 있어 가족나들이에 최적의 장소다.

이만여 평의 대지에 푸른 잔디와 어우러진 남천과 각종 나무들, 한창 꽃대를 밀어올리고 있는 해바라기, 코스모스들... 박넝쿨과 호박넝쿨이 기세 좋게 감아 오르고 있는 아치형 터널... 입장료 없이 누구나 마음껏 드나들며 역사유적과 자연을 향유할 수 있다.

그리고 시기별로 다양한 테마별 특별전이 열린다. 그 중에서도 ‘역사 속의 가족편지’ 특별전은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선비들이 소식을 주고받은 간찰, 정치와 학문을 논한 사대부의 편지, 존경과 우정을 담은 벗의 편지, 따뜻한 사랑을 품은 가족의 편지... 그 중에서도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우리에게 ‘그리움’이라는 의미를 되새겨준 편지도 전시되었다.

1998년의 일이다. 안동에서 묘 이장을 하다가 고성이씨 이응태의 무덤에서 그의 아내가 쓴 한글편지가 발견되었다.

31세의 나이에 요절한 남편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1586년) 유복자를 가진 아내의 남편사랑이 어찌나 애절한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철철 넘쳐흘렀다.

박물관이란 그런 것이다. 시공을 넘어 수만 년이든 수백 년이든 유적을 마주바라보고 우리는 그 시대와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감동을 받는다.

씨앗 한 알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강이 흐르듯 유적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강이 흐른다. 지금의 나는 구석기시대의 원시인류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기까지 그 강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음이다.

이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님과 서미라 선생님, 양성숙 문화관광해설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뗀석기를 들여다본다 낯선 혹성의 황야에 빈 몸으로 서있는 최초의 아버지 하늘에서, 땅에서 화살처럼 날아오는 수많은 적의敵意 생존을 위해 화산과 사막과 빙산을 헤매느라 발바닥이 터지고 너덜거려 화산과 사막과 빙산이 된 발바닥으로 달리고 또 달렸으리라

공포와 어둠만이 생을 끌고 가는 채찍이던 아버지는 처음으로 날카로운 돌칼을 쥐고 사냥감을 해체하던 날 아폴로11호 달 착륙의 환희로 심장이 고동쳤으리라 날것을 처음으로 불에 익힐 때 첫 움막집을 지을 때 최초의 토기를 만들 때 별 하나씩 아버지의 가슴에서 태어났으리라

그 별들이 은하수가 되어 콸콸콸 흐르는 동안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아들은 또 제 아들을 낳고 압박과 저항의 샅바가 한바탕 회오리 쳤다 벌거벗은 나무는 잎새를 내어 부끄러움을 덮고 자유가 목숨보다 더 아름다워진 세기에 돌도끼 대신 스마트폰을 쥐고 가는 아들은 별 같은 SNS를 별빛처럼 쏘아댄다

그 문자가 얼마나 높은 호모사피엔스의 눈물탑인 줄도 모르고. …졸시 ‘국립나주박물관에 가면 호모사피엔스의 눈물탑이 보인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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