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것은 50년 가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예의였죠”

오일장 건어물유통사업의 큰손 임선택 사장의 선택 “재래시장의 가치는 우리 전통의 가치”

목사고을시장 활성화 위해 주차장 추가 확보, 닭전머리 이전 등 현안 해결 약속 지켜져야

흔히 재래시장이라고 불리는 오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언제부터 오일장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전라도 지방에 기근이 심해 이를 극복하려고 ‘장문(場門)’이라는 향시가 열렸다는 신숙주(申叔舟)의 주장을 오일장의 시초로 본다면, 이는 대체로 15세기 중엽 이후

▲나주목사고을시장 해룡유통 임선택 사장
가 된다.
목포대학교 고석규 교수에 따르면, 영산강이 흐르는 남도에서 최초로 장시(場市)가 섰다고 한다. 중종실록에 1470년(성종1년) 장문(場門)이라는 이름의 시포(市鋪)가 나주에서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나주와 무안의 장시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었다는 것.면면히 내려오던 오일장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설시장이 생기면서 위축되기는 했으나, 오늘날까지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지난 2012년 나주 오일장과 매일시장이 합쳐져 만들어진 목사고을시장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라는 역사를 읽을 수 있다.오랜 세월 남도의 물산과 경제, 서민들의 문화와 소통의 근거지였던 시장. 전남타임스와 나주목사고을시장 문화관광사업단(단장 조진상, 동신대 교수)이 공동기획으로, 서민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맡아왔던 목사고을시장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열무쌈 한볼테기에 웃음꽃피는 목사고을시장
 
10월의 첫 주말, 오일장(4일, 9일)과 주말이 만나는 나주목사고을시장은 ‘고양이 뿔만 없지 이 세상에 있는 물건치고 없는 것이 없다’는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시장 광장에서는 전통 남도김치 담그기 체험행사가 펼쳐지고 있고, 오후부터 이어질 들썩들썩 남도문화장터 공연준비가 한창이다.

시장 곳곳에 개설된 스피커에서는 장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목사고을시장 상인방송 진행자 이재석·배현숙 명콤비의 명쾌하면서도 재치있는 진행이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진 틈을 타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는 상인들, 집에서 싸 온 도시락에 야채가게서 얻어 온 열무쌈이 오늘의 특별메뉴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언능 와서 한 볼테기 하셔!” 하는 목청 큰 아주머니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아주머니들이 찾아와 진짜 주먹만한 크기의 쌈 한 볼테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각자의 점포로 돌아간다.

주전자 뚜껑에 따라 마시는 물도 맛있어 보이는 목사고을시장의 점심시간, “사진 한 장 찍을게요.” 하는 기자의 요청에 “못 생긴 얼굴 찍어서 엇다 쓸라고..." 하며 호탕하게 웃어주는 상인들의 모습이 진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살아있는 모습이다!

건어물유통만 50년째 해룡유통 임선택 사장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중에 만난 해룡유통 임선택(56·나주시 문평면)사장. 벌써 오일장을 돌며 사업을 한 지 30년차 베테랑상인이다.

초당대학교 교직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와 함께 건어물가게를 운영해오던 아버지가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시면서 고민에 빠졌다.

어머니 혼자 시장을 꾸려가며 버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고심 끝에 직장생활을 접고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경력이 됐다.

“한창 젊은 나이에 번듯한 직장을 그만 두고 시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결단은 아니었죠.
하지만 50평생을 시장에서 일을 해 오신 어머니가 못내 일을 접지 못하고 아버지 없이 혼자 고생하시는 모습을 아들로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죠.”

그렇게 시작된 임 사장의 시장 생활은 나주장(목사고을시장)과 영산포장, 다시장, 함평장을 돌며 오일장을 따라 나흘은 장사를 하고, 하루는 물건을 장만하는 5일 단위 인생으로 바뀌게 됐다.

청년시절 시작해 이제 중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으니 이골이 날만도 하지만 그에게 시장은 늘 세상의 중심이자 새로움을 추구하는 치열한 경쟁사회의 한복판인 셈이다.

“재래시장 시세가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죠. 그런데 건어물 가게는 진짜 시대에 민감한 업종이죠.
 

▲목사고을시장 상인들의 점심시간, 열무쌈 한 볼테기도 서로 나눠먹는 모습이 훈훈한 시장상인들의 인심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관혼상제를 치르거나 환갑잔치, 칠순, 팔순잔치를 동네잔치로 치를 때만해도 건어물상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는데 지금은 다들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사를 이용하거나 이벤트업체와 전속으로 잔치를 치르다 보니 지금은 장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요즘은 다들 시제도 안 지내는 분위기고...”

시제(時祭)라는 말이 나오자 임 사장의 설명이 길어졌다.

그만큼 각별하다는 것일터...

시제는 오대조(五代祖) 이상의 조상에게 일 년에 한번, 합동으로 모시는 제사로 문중의 대표적인 제례이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형식만 갖추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전통 시제상은 크게 다섯줄 차림으로 진설(陳設)을 하는데, 첫 줄에는 좌반우갱(左飯右羹)으로 메·국(갱)·술잔·시접(수저)·국수·떡·촛대를 진설하고, 둘째줄에는 어동육서(魚東肉西)라 하여 회·적·전을, 셋째줄은 탕(육탕-계탕-소탕-조개탕-어탕 순)을, 넷째줄은 생동숙서(生東熟西),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채소·침채·간장·식혜·포 또는 자반을 놓는다.

그리고 다섯째 줄은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에 따라 과일·과자를 갖추는 것이 기본 시제상차림이라는 것.

물론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는 없는 처지지만 적어도 조상에 대해 후손으로서 예의를 갖추는 것만큼은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될 우리의 근본이라고 강조하는 임 사장, 임 사장의 표정이 왠지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음력 시월이면 시제를 지내는 시기라 장 보러들 나오셔야 하는데, 시제를 지내는 집들도 많지 않고, 시제를 모시는 집들도 열 분 조상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합동제사로 모시다 보니 규모가 많이 줄었죠.”

물건을 많이 팔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뜻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요즘 풍토가 조상을 섬기는 제례의식이 자꾸만 축소되고 있고, 이러다 영영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부창부수 ‘이혜진’이라 부르는 내조자

임선택 사장과 얘기를 나누는 내내 점포관리에 여념이 없는 부인 이혜진(52·예명)씨. 남편과 네 살 차이가 나는 동업자이자 동반자로서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이름이 예쁘지 않아 그냥 전주이씨 라고만 알고 있으라는데, 아무리 이름이 예쁘지 않기로서니  ‘김양순’ 보다 더 촌스럽겠냐며 거듭 캐묻자 “이혜진이라 불러주오”라며 극구 실명을 밝히기를 거절한다.
진짜 궁금하다. *사모님 성함을 알려주시는 분께 후사함.

세지가 친정인 이 씨는 문평 고막원으로 시집을 와서 매일 새벽바람에 장을 나서는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것으로 본분을 다하려 했다. 임 씨의 어머니 양연례(85)씨는 50년 남짓 오일장을 돌며 건어물장사를 해온 베테랑이다.

지금은 임 씨 부부가 가업을 이어 건어물장사를 하고 있지만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줄 지는 아직 결심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경제적인 소비풍조도 바뀌고, 무엇보다 전통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사업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목사고을시장 더 활성화 되려면

2012년 나주장과 나주매일시장이 통합해 나주목사고을시장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다른 재래시장에 비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점포로 구성돼 있는 것은 좋은 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시가지에서 동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기존의 단골손님들과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찾아오기에는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하는 임 사장. “주거지에서 떨어져 있다고 해도 시장이 활성화 되고 손님들이 찾아올만한 충분한 콘텐츠만 갖춰져 있다면 문제 될 게 없겠죠.

하지만 현재 목사고을시장은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차장도 협소해 손님들이 시장을 몇 바퀴 돌아야 겨우 장을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 얼마 전까지 목사고을시장상인회 오일장 총무로 활동해 온 임 사장은 목사고을시장 활성화 방안에 대해 전임 민선5기 임성훈 시장 때 상인들의 건의로 주차장을 확장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시장이 바뀌면서 유야무야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어머니가 50년 인생을 바쳐 일궈온 사업체이니 만큼 단골 역시 대를 이어 찾아온다는 해룡유통 건어물상회. 무엇 보다 사람이 중심인 사업을 해야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오늘도 임선택 사장 부부가 가장 최선의 방안으로 내세우는 영업전략이다.

상인회 총무를 맡다 보니 밖으로 나다니는 일이 많아서 부인 혼자 가게를 꾸려나가다 보니 ‘부부금슬’에 빨간불이 들어올 즈음, 과감하게 총무 자리를 내놓고 본업에만 충실하겠다는 임 사장. 하지만 여전히 목사고을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인들을 독려하고 점포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목사고을시장의 미래를 밝게 보여준다.
/  김양순 기자

전남타임스 후원

저작권자 © 전남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