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숙 바리스타 “아침에 눈 뜨면 일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나날”흔히 재래시장이라고 불리는 오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언제부터 오일장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전라도 지방에 기근이 심해 이를 극복하려고 ‘장문(場門)’이라는 향시가 열렸다는 신숙주(申叔舟)의 주장을 오일장의 시초로 본다면, 이는 대체로 15세기 중엽 이후가 된다. 목포대학교 고석규 교수에 따르면, 영산강이 흐르는 남도에서 최초로 장시(場市)가 섰다고 한다. 중종실록에 1470년(성종1년) 장문(場門)이라는 이름의 시포(市鋪)가 나주에서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나주와 무안의 장시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었다는 것. 면면히 내려오던 오일장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설시장이 생기면서 위축되기는 했으나, 오늘날까지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지난 2012년 나주 오일장과 매일시장이 합쳐져 만들어진 목사고을시장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라는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오랜 세월 남도의 물산과 경제, 서민들의 문화와 소통의 근거지였던 시장. 전남타임스와 나주목사고을시장 문화관광사업단(단장 조진상, 동신대 교수)이 공동기획으로, 서민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맡아왔던 목사고을시장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언젠가 목사고을시장 관계자와 얘기할 게 있어 약속시간과 장소를 잡는데 “시장커피 한번 마셔 보실라우?” 하며 알려준 커피숍이 ‘카페 마르쉐’였다.

프랑스말로 시장이라는 뜻의 ‘마르쉐(March?)’는 요즘 생산자와 소비자, 상인이 직접 만나 소소한 이야기와 정을 나누며 좋은 물건을 안심하고 사고 팔 수 있는 도시형 장터를 일컫기도 한다.

장이 서는 5일, 9일이 아닌 날은 새벽나절 잠깐 분주한 시간이 지나면 시장은 종일 한적하다.
지난 18일 시장광장을 아침햇살이 가득 메우고 있는 시각 카페 마르쉐를 찾았다.

머리가 반백을 넘어선 은발의 중년신사가 밀걸레질을 하며 손님 맞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사장님이시죠? 모닝커피 한 잔 하고 싶은데요?”

커피원두가 ‘드르르르...’ 갈리는 소리에 이어 커피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사이, 가게 안을 둘러보니 아기자기하면서도 섬세한 인테리어가 도시 변두리의 한적한 동네카페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인테리어가 꽤 앙징맞고 세련됐네요?”
“원래 이 카페 주인장인 딸과 딸친구가 손수 꾸민 겁니다.”

카페 주인장은 손님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것이 딱해 보였던지, 두 잔을 내와 함께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이어졌다.

반토막인생에서  새로운  삶찾아
은발의 바리스타 오승환 씨.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는 다소 저돌적인 질문에 “지금까지 64년 10개월 살았고 내년 2월 3일이면 반토막 인생이 된다”고 말한다.

그 말뜻을 한참 만에 이해했다. 그때가 되면 만 65세가 되기 때문에 대한민국 사회가 공인하는 노인이 되는 것이고, 그 때부터는 대중교통이며, 공연장, 관광지 등지에서 경로우대를 받아 요금의 절반만 내거나 무료가 되기 때문에 반토막 인생이 되는 것이란다.

1999년 12월말 나주 금성산 공군부대에서 기술 준위로 퇴역한 오승환 씨는 지난 14년 동안 연금으로 생활하며 민간인의 자유를 만끽해 왔다.

그러다 지난 5월 나주시 홈페이지에 목사고을시장 카페인수자 공고가 나자 나주시내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딸 윤정 씨가 응모를 해 당첨이 됐다고.

카페를 인수하고 두 곳에서 영업을 하던 딸이 힘에 부치자 카페 마르쉐 점장 겸 바리스타로 스카웃(?)한 주인공이 바로 친정부모인 오승환 씨와 박종숙 씨였던 것.

오승환 씨와 어느 정도 얘기가 끝나갈 즈음 부인 박종숙(62)씨가 자전거를 끌고 등장했다. 평소 부부가 자전거 하이킹을 즐겼으나 카페에 매인 몸이 된 뒤로 출퇴근용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고.

커피제조법 사위에게 배워
 
오승환 씨는 사위 범철 씨에게 커피제조법을 배웠다. 범철 씨는 나주에 다방은 있었지만 카페가 없던 시절 나주시 중앙로에 ‘어린왕자’라는 카페를 최초로 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직접 해외 커피시장을 섭렵해 커피를 구입하고 여러 나라 커피를 배합하고 볶아 손님들 입맛에 가장 적합한 커피를 제조해 냈다.

지금도 주말이면 서울로 한 시간에 10만원씩 지불하는 수강료를 내고 커피공부를 하러 다닌다 한다. 그런 베테랑 사위에게 밤낮으로 커피제조법을 배웠다는 오승환 씨와 박종숙 씨.

만반의 준비를 하고 카페에 나섰지만 처음 몇 달 동안은 초보바리스타로서 진땀을 흘리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손님이 주문한 커피가 냉커피였는데 뜨거운 커피를 내기도 하고, 주문한 메뉴를 뒤바꿔 내놓기도 하고, 한꺼번에 손님이 몰릴 때면 당황을 해서 딸에게 'SOS'를 청하기 일쑤였다는 부부. 그런 부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사람들이 바로 목사고을시장 상인들이었다.

“그동안 나주에서 살아오면서 나주인심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못 느끼고 살아왔는데 시장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참 나주사람들이 따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일부러 이런 저런 메뉴를 주문해 주면서 손에 익도록 코치를 해준 덕분에 적응을 할 수 있었죠 하하...”

아침에 눈 뜨면 일터가 있어 뿌듯

반평생을 군에서 직업군인으로 보낸 오승환 씨, 그리고 한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박종숙 씨에게 카페 마르쉐는 매일 아침 눈을 뜨게 하는 삶의 지향점이 되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두 부부가 서둘러 출근을 해서 가게 안팎을 쓸고 닦고 밤늦도록 함께 하느라 집안 살림이 예전 같지 않았는데, 지금은 남편 오승환 씨가 먼저 출근해 오전 근무를 하고, 점심나절 박종숙 씨가 출근을 하면 자연스럽게 교대근무가 가능해졌다.

물론 두 부부가 함께 카페를 지키는 날이 대부분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짐을 벗은 두 내외에게 카페 마르쉐는 한여름 바쁜철을 보내고 맞이하는 한가로움이 썩 나쁜 것만도 아니라 한다.

찾아오는 손님과 얘기를 주고받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두 부부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또 무료해지면 성경쓰기를 하면서 빈 시간을 보낸다.

무엇보다 일의 보람을 느꼈던 것은 두 부부가 나이가 많다고 손님들이 꺼리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두 분이 참 어울려요!” 하는 손님들의 한 마디에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오승환 바리스타가 박종숙 바리스타에게 “과일이라도 좀 깎아내지?” 하자 “당신도 참, 인터뷰하고 있는 거 안 보이요?” 하는 박종숙 씨의 한 마디에 “당신이 진정한 목사고을시장 주인장”이라는 위엄이 느껴졌다.

맛 좋고 값 싼 시장커피 드세요!

카페 카운터에는 다른 여느 카페처럼 ‘SELF'라는 푯말이 달려있다. 하지만 부부는 손이 뜸한 날은 직접 손님에게 차를 대접한다.

손님들의 얘기가 길어지고 차가 식을 즈음이면 과일도 깎아 내 놓는다.

영업전략으로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놓고 싶은 주인장의 푸근한 마음의 표현이다. 다른 목사고을시장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덤과 에누리가 남아있는 전통시장만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렇게 손님을 맞이했더니 그 손님이 단골이 되어 다시 찾아오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카페 마르쉐를 찾는 손님들의 취향도 제각각이다.

“서울이나 도시에서 오신 분들이 커피 맛이 좋다고 그러고, 가까이서 오신 분들이 값이 싸니까 좋다고 그러더군요. 맛도 좋고 값도 싼 시장커피 많이 애용해주세요.”

카페 마르쉐의 오승환 바리스타와 박종숙 바리스타의 포근한 미소가 곁들여진 커피 한 잔이 금새 그리워질 것 같은 날이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